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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산자여 따르라

수많은 무명용사 '김 군'을 기억하며

우리들의 5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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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18일...

고립된 섬이 되어버린 도시... 광주가 있었다.

도로에는 군인을 가득 태운 트럭이 달렸다.

휴교령이 내린 학교. 침묵과 분노의 함성이 공존하는 도시

쓰러지는 시민군들... 폭도 혹은 간첩이 되어버린 평범한 이웃들.

도로 위에 흩어진 신발들..... 행방불명된 가족을 부르는 외침들.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 아들, 딸, 어머니, 누이, 오빠들이 있다. 어디에 묻혀있는지 그마저도 확인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일들이 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졌다. 주먹밥을 나르며 하나가 된 사람들이 그 도시에 있었다.


경향신문에 80년 5월에 송암동 양민 학살 사건에서 숨진 ‘김 군’에 대한 최진수 씨의 기사가 실렸다. 광주 송암동에서 발생한 계엄군 양민학살 생존자인 최진수 씨가 학살 현장에 함께 있다 숨진 무명 시민군 ‘김 군’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직접 ‘김 군’ 동상을 세웠다.

“나 대신 죽은 ‘김 군’ 시신 찾아야… 계엄군 증언이 가장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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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현장을 직접 보게 된 최 씨는 시민군이 됐다. 5월 23일 최 씨는 도청에서 20대 무명 시민군 한 명을 봤다. 최 씨는 5월 24일 이 시민군과 광주 남구 송암동으로 향했다.

화물칸에 탔던 최 씨가 트럭을 세웠다. 삼거리에서 동구 지원동 주남마을을 출발한 11 공수부대 행렬을 이끌던 장갑차가 방향을 틀고 있었다. 트럭에서 내린 최 씨와 무명 시민군, 박 모 씨 등 세 명은 인근 민가로 급히 몸을 숨겼다. 트럭은 다시 시내 쪽으로 돌아갔다. 얼마 뒤 집 밖에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격렬한 총격 소리가 40여 분간 이어졌다. 광주 봉쇄를 위해 송암동 인근에 매복해 있던 전투병과 교육사령부(전교사) 교도대가 주남마을에서 광주비행장으로 철수하던 11 공수 병력을 시민군으로 오인해 서로 교전을 벌였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오인사격으로 수십 명 사상 후 군인들, 마을서 ‘화풀이 처형’

이날 오인사격으로 11 공수부대원 9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흥분한 공수부대는 화풀이로 마을을 수색해 젊은 사람들을 끌어내 처형하기 시작했다. 최 씨 일행이 숨은 집도 공수부대원이 에워쌌다. 그때 무명 시민군이 부엌과 방으로 연결된 문을 통해 최 씨가 숨은 안방으로 들어왔다.

밖에서 공수부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빨리 나와.”

무명 시민군과 최 씨, 박 씨가 마루에 섰다. 총을 겨눈 30여 명의 눈동자가 일제히 그들에게 꽂혔다. 살기등등한 계엄군을 보며 누구도 마당에 발을 내딛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무명 시민군이 먼저 내려섰다. 공수부대 부사관 한 명이 “뭐야 이 새끼”라고 하며 그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알을 박았다.

최 씨는 이 총알이 관통해 1m쯤 뒤에 선 자신도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총알은 시민군의 머리에 박혔고 부사관은 다시 최 씨에게 총구를 들이댔다. 하지만 이를 목격한 한 장교의 제지로 그는 목숨을 건졌다. 그날 송암동 지역에서 11 공수에 학살된 시민은 최소 7명이다.

최 씨는 2019년 다큐멘터리 영화 <김 군>을 통해 자신이 머뭇거릴 때 먼저 마당에 내려섰던 이가 아직도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무명 시민군 ‘김 군’ 임을 알게 됐다. 최 씨는 “그때 내가 먼저 마당에 나갔다면 처형된 사람은 나였을 것”이라면서 “김 군이 대신 죽은 것”이라고 했다. 계엄군에 붙잡힌 뒤 수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최 씨의 머리 위로 그날 오후 늦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경향신문 5. 18 ‘김 군’ 관련 기사 발췌 >



2021년 5월이다. 또다시 5월...

1980년 5월 18일... 그 밤이 지고 있다.

진종일 무엇을 하느라 분주했는지 이제야 자판을 두드린다.

그냥 넘겨서는 안 될 것 같은 어떤 사명감이 드는 밤이다.

무명용사... 이름 없는 시민군들... 대한민국에서 흔한 성씨 중의 하나인 ‘김“ ‘김 군’의 죽음.... 자신이 죽었을지도 모르는 데.. 김 군에게 목숨을 빚진 한 사내의 기사가 마음을 후벼 판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들. 이름 한 줄 묘비에 새겨보지도 못하고 여전히 시신조차 찾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죽음 앞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수많은 ‘김 군’...... 그해 5월... 광주를 애써 떠올려본다. 아득한 슬픔이 밀려온다. 그런 '김 군'들의 피가 이루어낸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밤이다./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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