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지휘봉 끝에서 연주가 시작되듯....
클라우디오 아바도
클라우디오 아바도... 옥탑방에 자리 잡은 액자 속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연주를 하고 있다. 꿈꾸는 듯한 표정, 선한 미소, 그의 손 끝에 자리 잡은 지휘봉...
강력하고 열정적인 지휘자로 알려진 헤르베르트 폰 카라안과 달리 아바도의 지휘는 부드럽다. 그 부드러움 속에 숨어있는 카리스마.
음악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것 외에는...
매일 액자 속의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얼굴을 바라본다.
커피를 마시면서도 바라보고. 책을 보면서도 바라보고 키보드를 두드리다가도 바라본다.
그는 늘 선한 눈매와 부드러움 가득한 미소롤 나를 바라보고 있다.
꿈꾸는 듯한.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되어버린 듯한....
지휘자. 가는 막대 하나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간다는 것...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무슨 큰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니고 오직 지휘봉 끝에서 이루어지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그러나 엄청나게 폭발적인 마법을...
20대에 ‘베토벤’이라는 고전 음악 감상실이 있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곳.
나는 가끔 그 시절이 얼마나 문화적으로 충족했던 때인가를 생각해보곤 한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라 시내에서 약속을 잡으면 대개는 ‘서점’ 앞이었다. 상대가 늦게 오든 일찍 오든 서점 안에 들어가 신간도서들을 살펴보며 기다림을 대신하던 시절...
서점 안에는 책을 사려는 이들보다 약속을 기다리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 서점에서 느껴지던 온기를 기억한다. 눈발이 날리던 때 서점 안 유리창에 뽀얗게 스며있던 사람들의 입김 자국을....
레코드 가게 앞을 지나면 클래식 음악이 늘 흘러나오곤 했다. 그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무언가를 하나 사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던 시절... 보물이나 얻은 듯 가슴에 안고 충만한 기분으로 총총거리며 달려가던...
고전 음악 감상실 '베토벤'은 밖에는 차를 마시는 테이블이 있고 감상실 안은 영화관처럼 암막으로 꾸며져 있었다. 외롭고 고독하고 슬프고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이 밀려오거나, 스스로에게 절망한 날... 나는 마치 엄마의 자궁으로 되돌아가듯.... 그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한두 시간을 보내고 나면.... 무언가 내 안에 가득 채워진 느낌이 들곤 하였다.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내게 베토벤 감상실은 영혼의 충전소였다
지금은 갈 수 없는 곳. 그 시대의 젊은이들은 서점에서 음악 카페에서... 영혼의 결핍과 허기를 채워가곤 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지극히 선한 얼굴을 바라보며...
지금은 세상에 없는... 그러나 지극히 화려했고 아름다웠던 그의 삶을 생각한다.
사람의 생이란 결국 유한한 것이어서.... 어떤 형태로든 끝이 있게 마련 인다.
그 끝을 향해 걷고 있다... 다만 그 끝이 언제인지 알지 못한다.
오늘의 걸음이 헛된 것이 아니길 바라며 부단히 걸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늘 깨달으면서....
지휘봉 끝에서 시작되던 음악처럼.... 무언가의 시작은 누구나 자신의 지휘봉 끝에 있음을 기억하라고 액자 속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음악에 대한 열정의 발자취
누군가 클라우디오 아바도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일흔이 넘어서도 지치지 않고 그 많은 일을 다 해내는 비결이 뭔가요?” 아바도는 이렇게 말했다. “일이라뇨, 저는 제 열정을 따라갈 뿐입니다. 일곱 살 때부터 늘 그래 왔는 걸요.”
20세기 최고의 마에스트로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평생 음악에 대한 열정을 따라 살았고, 그 열정은 7세부터 시작되었다.
12세에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의 리허설 현장을 본 후 지휘자의 꿈을 꾼 아바도는 베르디 음악원에 진학했고 유럽 곳곳의 페스티벌과 마스터클래스를 다니며 유명한 지휘자들에게 레슨을 받았다. 이 시절 주빈 메타(Zubin Mehta)와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을 만나 마스터클래스를 함께 다니기도 했다.
1958년 쿠세비츠키 콩쿠르, 1963년 뉴욕 미트로풀로스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아바도는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에게 발탁되어 뉴욕 필의 부지휘자로 일했으며 이어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의 초청을 받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무대에서 빈 필하모닉을 이끌고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연주하면서 당당히 마에스트로로 이름을 알렸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1990년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의 수장이 되면서 그의 경력은 정점에 달했다. 강력한 권위를 행사했던 카라얀과는 반대로 온화하고 개방적인 성품으로 단원들을 아울렀고, 지휘자의 손짓과 표정으로 단원들을 이끌어갔다.
한창 활동 중이던 시절 암 진단을 받은 아바도는 2002년 4월 베를린 필과의 고별 연주를 끝으로 베를린 필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암 투병 중에도 2003년 여름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일흔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다. 젊은 인재를 약성 하기 위해 유럽 연합 청소년 관현악단, 구스타브 말러 청소년 관현악단을 창단하는 등 의욕적으로 이끌어가며 민주적인 지휘자를 표방했던 그는 2014년 1월 20일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일이라뇨. 저는 제 열정을 따라갈 뿐입니다."
인생에 대한 그의 조언이다.
"삶에 대해 고민하지 마세요. 그냥 열정을 따라가세요.".... 나는 그의 말을 그렇게 해석한다
열정을 따라가는 일... 그것은 20대에만 한정된 말이 아니다.
그 어떤 나이에 머물러있더라도 열정이 있는 한 삶은 여전히 20대다./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