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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처음처럼, 다시 신인이 되는 기쁨

(한국예총) 신인상 시상식에 다녀왔다.

예술시대작가회는 종합예술지 『예술계』와 『예술세계』에서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등단작가들의 모임으로  1987년 <예술세계 동인회>로부터 시작하여 1990년 <예술시대 작가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시, 시조, 수필, 평론, 희곡, 수필 분야에서 200여 명의 작가들이 한국 문단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등단'. 등단이란 사전적 의미로 ‘어떤 사회적 분야에 처음으로 등장함’을 의미한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문단에 정식 등단하는 것은 공식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일종의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이들은 많다. 왜 쓰는가는 저마다 다른 목적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이유 중 하나가 ‘그냥’이라고 해도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아주 어릴 때부터, 아마도 대여섯 살 때부터 나는 내가 커서 작가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스물네 살까지는 그 생각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그게 내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며 조만간 차분히 앉아 책 쓰는 일을 해야 하리란 의식을 갖고 있었다.

(...)

말하자면 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몇 분씩 굴려보곤 했던 것이다.

‘그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노란 햇살이 모슬린 커튼을 투과해 들어와, 잉크병 옆에 반쯤 열린 성냥갑이 놓여있는 테이블 위에 내리 비꼈다. 그는 오른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창가로 가로질러 갔다. 거리에는 거북등 무늬 고양이가 떨어지는 낙엽 하나를 쫓고 있었다.’ 등등..(중략)


대부분 작가들이 글을 쓰는 동기는 크게 네 가지라고 생각한다

1. 순전한 이기심 :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누군가에게 복수 등등의 동기,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하는 건 허위다.

2.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기도 하다.

3. 역사적 충동 :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 여기서 ‘정치적’이란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조지 오웰이 무언가를 쓰고 있는 사진은 울림을 준다. 1938년 말 모로코에서 집필 중이라 적혀있으니 지금으로부터  대략 84년 전의  모습이다. 조지 오웰이 살아있다면 지금도 어디선가 저 모습 그대로 집필 중일 것만 같다. 

조지 오웰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 쓰는 동기의 4가지로 꼽은 것 중 그  어느 것도 내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물론 자기 확인, 자기 검증, 배설, 갈증과 허기, 성장, 만족 등등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이유를 하나 고른다면 결핍과 허기를 견딜 수 없어서 일 것이다.

갈증이 쉽게 채워지지 않는 것은  채워야 하는 것들의 역치가 다른 이보다 높아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것들에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남들처럼 쉽게 얻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였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떤 상을 받아도 받아도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검증으로서의 의미를 지닐 뿐.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 수확의 결과를 확인하려는 욕구, 그러나 그 또한 온전히 노력이라고 보기 어렵고 좋은 운이 작용했을 수도 있으니까.    


어찌 되었건 신인상은 참 신선한 느낌을 준다.

다시 신인이 된다는 것.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기회를 얻는 것처럼.

욕망과 이기심이 스멀거리는 마음들을 다시 비우고 처음 글을 쓰던 날의 나로 돌아가는 기쁨.

글 쓰는 이에게  가장 좋은 상이 있다면 바로 ‘신인상’이 아닐까.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멀어져 버린 것들로부터 다시 돌아가게 하는 힘, 동력, 기회...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이 생각난다.          

처음처럼 / 신영복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을 하는 겨울이다. 

어떤 결핍과 어떤 허기를 충족시키기 위해 끝없이 써야 함을 다시 생각하는 겨울이다. 

다시 신인이 되는 즐거움도...../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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