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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모지스 할머니

삶은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에요.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사람들은 늘 내게 늦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이야 말로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에요. 진정으로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 “ 

          

미국의 국민 화가로 불리는 모지스 할머니. 그녀의 본명은 애너 메리 로버트슨 Anna Mary Robertson, 1860-1961이지만 모두가 그녀를 모지스 할머니 Grandma Moses라고 부른다.     

모두가 인생을 정리할 시기라고 부르는 75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세상을 떠나는 101세까지 총 1600점의 작품을 남겼다.

“ 이제라도 그림을 그려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내 경우에 일흔 살이 넘어 선택한 새로운 삶이 그 후 30년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었습니다. ”          

          


 미국 뉴욕주 그리니치의 가난한 농장에서 태어난 그녀는 10명 중 셋째 딸이었다. 1870년대 대부분의 딸들이 그러하듯 그녀도 12세 때부터 다른 부유한 집의 가정부로 일해야 했다. 그 집의 자녀들과 같이 학교를 다니기도 했지만 14세 이후로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고 27세 때 농장에서 같이 일하던 토머스와 결혼하기 전까지도 가정부 일을 계속했다. 결혼 후 토머스가 농장을 임대해 삶의 터전을 함께 일구며 살아갈 수 있었고 낮에는 함께 일하고 저녁에는 자수를 놓았다.  열 명의 자녀 가운데 다섯 아이를 하늘로 보내고 자수를 낙으로 살던 그녀에게 관절염이 찾아오자 비로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의 소재는 농장의 모습,  사람들의 일상, 마을 풍경 등이었다. 소소한 일상을 그린 그림들을 마을 프리마켓에 엽서로 내놓거나 마을 상점에 걸어두고 사려는 사람이 있으면 2,3 달러 정도의 돈을 받고 팔았는데 우연히 뉴욕에서 미술품을 거래하는 수집가 루이스 칼더의 눈에 띄게 되고, 큐레이터 오토 칼리어는 뉴욕 전시장에 그녀의 그림을 대대적으로 소개한다. 

원근법도 없이, 가장 기본에 천착한 그녀의 그림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100번째 생일에는 당시 뉴욕 주지사였던 넬슨 록펠러가 ‘그랜마 모지스의 날’을 선포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열네 번째 생일을 며칠 앞두고 맞은 졸업식에서 남긴 졸업 문구는 

“우리 가정이 행복하기를 ”이었다고 한다.   가사도우미 일을 병행하던 소녀 모지스가 스케치를 할 때면 엄마는 그녀에게 무엇보다 집안일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시절 가난한 집안 딸들의  직업은 당연히 ‘가정부’였던 시대였으니까.          

    

모지스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흰색이라 한다. 흰색은 순수의 색이라고.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낸 북부는 춥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어서 일까?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시계 없이도 살 수 없는 시절의 정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들을 그림에 정감 있게 그려내었다.         

“삶은 일상의 과정이었습니다. 월요일은 빨래하는 날, 화요일은 다림질과 수선, 수요일은 빵을 굽고 청소하는 날, 목요일은 바느질, 금요일은 정원일과 잡다한 일들... 이런 일들은 우리 집에서도 이웃의 집에서도 반복되었어요. ”     

“슈거링 오프는 버몬트에서의 즐거운 행사였어요. 마을 사람들 모두가 달콤한 시럽을 먹고 달콤한 기억을 품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접시 위에 눈을 올려놓고 잔뜩 졸여낸 단풍나무 시럽을 뿌리면 눈은 과자가 된다.      

“ 기억과 희망이란 정말 이상한 것입니다. 하나는 뒤를 돌아보고, 다른 하나는 앞을 내다봅니다. 전자는 오늘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내일에 관한 것이죠. 기억은 뇌에 기록된 역사입니다, 또한 기억은 화가입니다. 그것은 과거와 오늘의 모습을 그리죠.”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좋은 하루였던 것 같아요. 이제 끝났고 나는 내 삶에 만족합니다.

저는 누구보다 행복했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어요. 나는 삶의 역경을 만날 때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요. 삶은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에요.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1961년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그림이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어떤 유명 화가의 그림보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에서 온기를 느끼는 것.

특히나 그녀가 좋아하는 흰색 투성이의 계절인 겨울. 겨울이어서 일까. 그녀의 그림들을 들여다본다.

가정부 일에 적합한 일들을 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자란 소녀. 학력은 14살에서 중단된다.

화가가 되는 일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을 법한데 75세의 나이에 꿈을 그리기 시작한다.

인생에서 늦은 때란 없다는 말에 위로를 받는 요즘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인데도. 

속도 중심의 사회에서 제자리에서라도 걷지 않으면 뒤로 밀려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일까.

빵 반죽 같은 젊음이 싫었던 기억이 난다. 젊음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동시에 그 무엇도 될 수 없다는 불안감을 품는 야누스적 시기였으니까. 규격화된 삶이 싫어서 평생 연금을 받을 직장을 아무런 미련 없이 내려놓고 늦은 밤 학원 강사를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돈벌이 수단으로 따지면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지만 조직 사회에 길들지 못하는 것은 내 천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장례식 날이었을 것이다. 직장에 사표를 내겠다고 결심한 것은.

어머니가 아끼던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고, 그녀가 남긴 것들은 처치 곤란한 짐이 되고 말았다. 날마다 광을 내며 닦던 짙은 초록색 양가죽 소파는  가져갈 이가 아무도 없었다.... 삶이 참 덧없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또 하나는 당시의 직장 문화였다.(지금보다 훨씬 경직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이면서 누구보다 먼저 출근을 해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렇다고 내가 하는 일이 어머어마한 프로젝트를 짜서 승승장구할 일도 아니었거니와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상사의 눈치를 보며 일찍 나가는 날들... 가슴이 시렸었다.

그래서일까. 

오늘처럼 눈이 내리던 날... 나는 만삭인 몸으로 베스트 드라이버도 운전을 안 한다는 그 무시무시한 폭설에

시속 20으로 운전을 해서 대학원 수업을 갔었다. 택시를 잡기도 힘든 날이었다. 눈보라가 치던 날. 

가지 않아도 되고, 하루 쉰다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무엇이 그토록 간절하게 나를 내몰았을까.

그 시절, 나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았다. 조직의 부품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돈 버는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고... 


눈 내리던 겨울밤, 창밖엔 눈이 내리고, 이불속으로 몸을 밀어 넣고 책을 읽던 어린 소녀인 채로 영원히 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질식할 것 같은 반복이 견디기 어려웠고 나는 그런 것들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렇게 시간들을  통과하면서...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마음이 허해서 견딜 수 없던 시간들을 지나왔다. 

무언가를 쓴다고 해서 베스트셀러 작가 혹은 베스트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하얀 눈으로 덮인 창밖을 보며 모처럼 무언가를 쓰고 있다. 모지스 할머니의 말 "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라는 말에 위로를 받으면서...

오래전 그날.... 미끄러운 눈길을 뚫고 대학원 수업을 들으러 다녔을까. 무엇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만 했기에. 조직 사회에 잘 길들여진 부품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눈 내리는 날, 모처럼 큰 눈이 내렸다.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17cm 적설량을 기록했다.

사람들이 모두 무언가를 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단정 지을 나이에 모지스 할머니는 새로운 인생을 그렸다.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그녀의 그림 속 사람들도 그녀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녀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늦지 않았다고. 삶을 무언가로 단정 지으려 하지 말라고........ 모지스 할머니가 말하고 있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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