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새들의 아침식사> 혹은 <아침식사, 새들>

가브리엘 뮌터 Gabriele Münter)

     

Gabriele Münter (1877.2 ~ 1962.5)     

아침식사, 새들

자줏빛 커튼이 드리워진 실내. 비교적 짧은 머리의 여인이 창밖을 보고 있다 치즈와 빵, 뜨거운 차가 든 도기, 여인은 아침 식사를 위해 테이블에 앉아 있다.

창밖, 한 겨울의 나뭇가지에 새들이 앉아있다. 새들도 아침식사를 하려는 것인지. 창 안의 그녀를 들여다보는 것인지 알 수없다. 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새들은 그녀를 보고 그녀는 새를 본다. 같은 공간이 창 하나로 격리되어 있다.  등을 돌리고 있는 그녀는 혼자이고 새들은 여럿이다. 새들은 또 어디론가 날아가고 또 다른 새들이 날아와 그녀의 창을 들여다볼 것이다.

     


그녀는 화가로서 이름을 날리기 전 칸딘스키의 연인으로 더 알려졌다. 약혼을 하고 15년간을 스승과 제자, 혹은 연인, 혹은 동지로서.....

어떤 이들은 그녀를 가리켜 칸딘스키의 영원한 연인이라는 칭하고 또 어떤 이들은 버림받은 여인이라 칭한다. ‘영원한’ 연인과 ‘버림받은’ 연인.... 연인이란 단어 앞에 붙은 수식어는 극과 극이다.  뮌터는 버려진 것인가? 영원한 연인으로 남은 것인가?  

1902년 뮌터가 칸딘스키를 처음 만나던 때, 36세의 칸딘스키는 6세 연상의 사촌과 결혼한 상태였지만 두 사람은 독일의 무르나우에 정착하여 청기사파를 결성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 1911년 부인과 정식으로 이혼하고 뮌터와 정식 결혼을 앞두고 있었지만 시민권 문제로 러시아로 떠난 51세의 그는 결국 러시아 장군의 딸인 24세 여인과 결혼한다. 결혼 사실을 알지 못하는 뮌터는 답장도 오지 않는 편지를 칸딘스키에게 계속 보낸다.     

두 사람의 사랑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두 사람 사이에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남겨진 혹은 버려진 혹은 영원한.... 등등의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어쩌면 폭력적인지도 모른다. 너무도 당연스럽게 ‘버려진’ 연인이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뮌터에게 모독일지도 모른다.     


칸딘스키는 “색채는 건반, 눈은 망치, 영혼은 줄이 많은 피아노, 아티스트는 건반을 하나 둘 두드리며 영혼을 진동하는 손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예술가의 진정성에 대해 고민해 본다. 

영혼을 두드린다느니... 진동하는 손이라느니.. 그의 현란한 표현은 그의 현란한 마음을 포장하는 것들일까. 그는 사람마저도 순간순간 즉흥적으로 떠오른 감흥처럼 느끼는 것일까.

사촌누이가, 뮌터가, 그리고 젊은 아내가.     

무르나우의 집에서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뮌터. 행복과 불행, 고독과 환희... 외로움과 따뜻함이 동시에 담긴 그녀의 그림.

그녀의 고독한 등을 보며 겨울을 관통하고 있다.

나무들은 나무들은 채로, 새들은 새들인 채로..... 

끝없이 새하얀 것들이 하늘 저 멀리서 쏟아져 내리고 있다. 마음이 스산하지만 뮌터의 등 혹은 여인의 등을 보며 위로받는 12월이다.     


브런치북 발표가 있었다. 해마다 브런치북을 만들고 응모를 하긴 하지만 결과는 늘 빗나간다.

처음 브런치북 공모전의 멘트는 “크리스마스에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당신만의 책을 만날 수 있다.”는 마법 같은 멘트였다. 문구 만으로도 무언가 될 것 같은 기대감을 주는..

수많은 브런치 작가들이 있고 그들이 생산해내는 브런치북은 날마다 쏟아진다.

그중에서 대상작 몇 편과 이번 2022에 새로 신설된 중소 출판사들의 특별상. 총 50편의 브런치 북이 선정의 기쁨을 누렸다. 

마치 신데렐라 유리구두 신을 기회처럼 희소한 기회는 선정된 이들에게는 책을 발간할 기쁨의 순간이 되었고 선정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더 열심히 쓰라는 죽비가 되었다.


최근 브런치 홈이 개편되고 사실 나는 좀 불편한 생각이 든다. 원래도 길들여지고 정형화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편이긴 하지만 브런치 메인에 들어가자마자 요즘 뜨는 브런치북이니  꼭 읽어야 할 브런치 글이니, 이런저런 작가들 소개니 하는 것들이 불편하다. 설령 나와 내 글이 메인에 소개된다 해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도 참여와 소통의 네트워크를 더 강화하려는 듯싶지만 자꾸만 ‘이런 글이 뜬다’는 식의 정형화된 주입은 글 쓰는 이들의 사고를 획일화시키는 것 같아서다. 자기만의 말투가 있듯 자기만의 글투가 있다.  

은연중 어떤 식의 글을 써야 먹힌다(?)를 주입시키는 것 같은 불편함이 드는 건 어쩌면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이라는 브런치의 문구를 좋아한다.

나는 쓰는 것을 좋아한다. 씀으로써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말도.     

문학에도 상업적인 콘텐츠가 필요한 건 맞지만.... 콕 집어주는 친절함이 불편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브런치는 역시나 순수한 글쓰기의 공간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자꾸만 브런치 작가를 양산하려는 실적주의인지도....     

어려운 기회를 뚫고 선정된 이들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눈 내리는 창밖 장미 넝쿨의 몸부림이 알려주는 교훈이다.

자신의 글투, 자신이 가려는 길을 충실히 가라는..

여전히 쓰는 인간으로 남고 싶은  겨울 오후다./ 려원        



작가의 이전글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모지스 할머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