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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김훈 <하얼빈>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인간적인 단어... 그러나 아쉬운 점도...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     

“ 철도는 눈과 어둠 속으로 뻗어있었다. 그 먼 끝에서 이토가 오고 있었다. 멀리서 반딧불처럼 깜박이는 작은 빛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었다.  빛이라기보다는 거역할 수 없이 강렬한 끌림 같은 것이었다. 두 박자로 쿵쾅거리는 열차의 리듬에 실려서 그것은 다가오고 있었다. 문득 빌렘에게 영세를 받을 때 느꼈던 빛이 생각났다. 두 개의 빛이 동시에 떠올라서 안중근은 이토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눈을 감았다. ”  

        

포수 무직 담배팔이          

안중근은 체포된 후 일본인 검찰관이 진행한 첫 신문에서 자신의 직업이 ‘포수’라고 말했다. 기소된 후 재판정에서는 ‘무직’이라고 말했다. 안중근이 동지이며 공범인 우덕순은 직업이 ‘담배팔이’라고 일관되게 말했다.

  포수, 무직, 담배팔이, 이 세 단어의 순수성이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등대처럼 나를 인도해 주었다. 이 세 단어는 생명의 육질로 살아있었고 세상의 그 어떤 위력에도 기대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청춘의 언어였다, 이 청년들의 청춘은 그다음 단계에서의 완성을 도모하는 기다림의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창조하는 에너지로 폭발했다.(....)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 놓을 수는 없다. ‘무직’이며 ‘포수’인 안중근은 약육강식 하는 인간새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안중근은 말하고 또 말한다.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

                                                                                                             2022년 여름 김훈  

  


김훈의 작품 『하얼빈』은 제목부터 명징하다. 이순신에 대한 작품의 제목이 명량이나, 노량이나 울돌목이 아니고 『칼의 노래』처럼  은유적인데 비해 안중근의 거사를 다룬 이 작품의 제목은 이토 히로부미 저격의 장소였던 ‘하얼빈’이다.

위인전이나 전기의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면 인물을 미화하거나 과장하는 것인데 『하얼빈』에서 는 영웅 안중근으로서가 아닌 무직자이며 포수로서의 안중근에 대해 다룬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포수 안중근의 사냥감은 이토였고 사냥터는 하얼빈이었다.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

살아있는 자가 살아있는 무언가를 겨냥한다. 총구를 목표물에 일치시키는 일은 늘 어려운 일이다. 감정이 실리게 마련이고 미묘한 흔들림이 사냥감을 놓치게 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항일 투쟁의 선봉, 독립운동가로서가 아닌 인간 사냥꾼으로서의 안중근.


사실 나는 너무도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장치를 곁들여 한 권의 책이 탄생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작품의 내용보다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세 단어가 나를 붙잡았다.

 내용은 너무도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이었기에 박진감이 넘친다거나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하다거나 그런 것은 없었다. 포수 안중근의 심리에 중점을 두고, 당시 대한 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이 책을 좋아하는 어떤 이들은 ‘칼의 노래’에 이어 ‘총의 노래’라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포수, 무직, 담배팔이가 주는 그 이상의 신선함을 이 책 본분에서 찾지 못하였다.      

이토를 저격한 후 체포되는 순간 안중근의 마음이 드러나는 페이지에는 공감이 갔다.


p137

열차는 어둠 속을 달렸다. 차창에 물방울이 달렸고 먼 들의 가장자리로 불 빛 몇 개가 흘러갔다. 열차 안에서 안중근과 우덕순은 이토를 쏘는 일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안중근은 열차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여러 갈래의 철길이 망막 안쪽에 떠올랐다. 권총은 외투의 왼쪽 안주머니 속에 있었다. 안중근은 심장을 누르는 권총의 무게를 느꼈다. 권총은 묵직했는데 너무 무겁지는 않았다.     

P 192~193

열차는 남쪽으로 달렸다. 안중근은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고 눈꺼풀 안쪽에 붉은 반점들이 떠다녔다.

비틀거리는 이토의 모습이 떠올랐다. 총알 세 발이 명중한 것은 확실했다. 이토의 몸속에 총알이 박할 때, 총알이 안중근의 몸에 신호를 보내오는 듯했다. 안중근은 그 신호를 믿었다. 그리고 조준선 너머에서 이토가 비틀거렸고 키 작은 일본인이 이토를 부축했다. (...)

이토는 죽었는가? 이토가 죽었다면 나의 목숨이 이토의 목숨 속에 들어가서 박힌 것이다. 그러나 이토가 죽었다면 일본 영사관 직원들과 헌병들이 이토록 조용할 수 있는가

이토를 살려놓고 이토를 죽이는 이유를 이토에게 말해주었으면 좋았겠는데 이토가 죽었다면 이토를 죽인 이유를 이토에게 말해줄 수가 없겠구나... 이토가 죽었다면 이토 없는 세상에서 이토를 죽인 이유를 말해야 하지만 그 세상은 이토가 만들어놓은 세상이므로 그 말을 알아듣기가 어렵겠구나. 이토가 죽었다면  총알을 맞고 나서 숨이 붙어있는 동안에 왜 총에 맞는지를 알았을까?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더라도  총을 쏜 자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알고 죽었을까, 이토가 죽었다면 그것을 물어볼 길이 없겠구나... 세 발은 정확히 들어갔는데 이토는 죽었는가, 살아나는 중인가, 죽어가는 중인가.        


이토는 죽었는가. 그러나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고 죽었다면 그 또한 잘못이다는 안중근의 독백.

포수로서 사냥감을 저격한 후 그 사냥감에 대한 생각들. 이미 사형은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었고... 더 바랄 게 없었으리라.  사냥감을 확실히 저격하였으므로 목숨을 구걸할 이유도 없었으리라.          

 


이 책 첫 문장은

1908년 1월 7일, 일본 제국 천황 메이지는 도쿄의 황궁에서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을 접견했다.

이렇게 시작된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빌렘은 신자들과 함께 기도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망자에게 평안을 주소서     

빌렘의 기도로 끝을 낸 저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광복절 무렵 출간되어  지금도 여전히 서점 베스트리스트에  올라있고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하였지만 『하얼빈』의 인기몰이의 힘을 잘 모르겠다.

저자의 손을 떠난 책이란 결국 독자의 해석에 달려있다.

『칼의 노래』이후 자전거 여행, 라면을 끓이며, 공터에서 등등 많은 책이 출간되었지만 예전만큼 흥행몰이를 하지 못하였는데 『하얼빈』은 광복절이라는 시기에 맞추어 출간하였고 신문사나 출판사들은 광고를 위한 광고에 경쟁적으로 열을 올렸다. 안중근의『하얼빈』 아닌 김훈의『하얼빈』.....

출판 시장에서 김훈은 포수가 되었다. 독자들의 마음을 겨냥한.

그의 잠재적인, 혹은 고정적인 마니아 니들이 『하얼빈』의 판매 실적을 가파르게 이끌어나갔다.     

모든 책이 누구에게나 같은 질감의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이 내게 그다지 공명하지 못한 것은 책의 절반이 ‘이토 히로부미’에 할애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포수의 서사에 리얼리티를 부여하자면 사냥감의 서사도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이토의 인간적인  측면이나 이토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 같아 불편한 부분들이 있었다. 물론 소설적인 장치겠지만.

실제 이토는 그 시대 뛰어난 외교관이고 오직 일본을 위해 일하다 목숨까지 잃었으니 일본에서는 대단한 영웅일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안중근을 추앙하듯...


 

이 책의 서술 중 조선 기생을 이토가 농락하는 장면이라거나 일본 교토와 동경의 게이샤들이 이토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장면은 읽기에 불편하였다.

예를 들면 굳이 “너는 말을 하지 마라”라는 표현이나 “ 저희들을 간지럼 태우며 노셨다” “ 공작 각하께서 저희들의 교태에 눈길을 주지 않으시고, 깊은 시름에 잠겨서...”등의 표현이다.     

당시의 시대 상황은 당연히 여성에 대한 인식이 책에 서술된 것보다 더 좋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식민지 조선의 기생정도는 최고 권력자 이토에게는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소설의 무대는 일제강점기이고, 그 시대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야 하는 것은 맞지만 소설을 읽는 이들은 2022년 8월 이후에 출간되었으니 그 시기 이후의 독자들이다. 굳이 '쓰러뜨려서 끌어안았다'

는 표현을 반복해서 서술할 이유가 있을까.

                  

P 48

이토는 남산 아래 요정 천 진루에서 기생을 앉혀놓고 술을 마셨다. 기생은 조선여자 였는데 옆구리가 터진 기모노 차림이었다.

-너와 둘이 있겠다. 아무도 들이지 마라

-내가 여기 있는 동안 너는  말을 하지 마라. 위스키를 다오- (...)

이토를 기생을 쓰러뜨려서 끌어안았다. 초저녁이었다.

 P 86

이토는 크게 소리 내서 웃었다. 웃음이 칼로 끊듯이 사라지고 이토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이토는 기생을 끌어안고 쓰러졌다.     

p207

일본 신문들은  이토의 죽음을 맞은 도쿄 화류계의 슬픔을 소상히 보도했다. 슬픔은 고요하고 단정했다. (..) 어른의 식성은 늘 깔끔했다. 요란한 상차림을 싫어하셨다.

긴자의 게이샤 하나코는 술 드시면서 늘 서화와 문장을 말씀하셨다. 많이 취하시면 야한 말씀도 잘하시고 저를 간지럼 태우면서 노셨다.     

교토 화류계의 슬픔은 더 깊고 우아했다.

... 이토 공작 각하께서는 국사로 바빠서 주로 도쿄에 계셨지만 공작 각하의 마음은 늘 교토의 풍류를 그리워하셨고 틈만 나면 교토에 오셔서 저희들을 사랑해 주시었다. 공작 각하께서는 저희들 앞에서 국사를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나라의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때는 포도주를 드시고, 나라의 일이 어렵게 꼬일 때는 위스키를 드신다는 것을 저희들은 눈치로 알고 있습니다.

... 공작 각하께서 저희들의 교태에 눈길을 주지 않으시고, 깊은 시름에 잠겨서 독한 위스키를 거푸 드시면 저희들은 마음이 아팠다.. 기온의 늙은 게이샤가 말했다고 지방신문이...     


다음은 이토의 능력을 비범하게 부각하는 문장들이다.


P. 40

쇠가 이 세상에 길을 내고 있습니다. 길이 열리면 이 세계는 그 길 위로 계속해서 움직입니다. 한번 길을 내면, 길이 또 길을 만들어내서 누구도 길을 거역하지 못합니다. 힘이 길을 만들고 길은 힘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번 길들이면 어느 누구도 감히 거절 혹은 저항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로 읽히는 부분이다. 길을 낸다는 것은 좋은 의미지만 침략자가 낸 길, 그 길은 식민지 백성들을 길들이려 할 것이다. '누구도 거역하지 못합니다.'

힘이 곧 길입니다..... 책 속 이토의 목소리가 섬찟하게 들려온다.


P 16

조선의 항구들은 어업부두와 상업 부두가 구분되지 않았고 집안 시설이 허술했다. 조선 반도의 연안을 돌아서 대륙으로 건너가는 항로에 등대를 설치해야 한다고 그때 이토는 판단했다.

등대를 설치할 거점 항구도 이미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신호로 명멸하는 빛의 힘을 이토는 아름답게 여겼다. 몇 년 전에 러시아에 대한 전쟁을 기획할 때도 이토는 조선 반도의 남해안과 서해안 인천 월미도에 등대를 세우라고 해군성에 명령했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조선의 발전에 기여? 했다는 식민사관의 반영처럼 느껴진다.

이토 입장에서 서술된 부분이라 하더라도.....        


P 17 러시아를 도모할 때까지도 이토는 그것이 도장으로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나 그 후 조선 사대부들과 자주 상종할수록 이토의 뜻은 도장 쪽으로 기울었다. 왕권의 지근거리에서  세습되는 복락을 누린 자들일수록 왕조가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갈 때는 새롭게 다가오는 권력에 빌붙으려 한다는 사실을 이토는 점차 알게 되었다. 도장의 힘은 거기서 발생하고 있었다. 도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살육을 피할 수 있고, 조선에서 밀려나는 서양 여러 나라들의 간섭을 막을 수 있고 사후 처리가 원만할 것이었다. 도장을 찍어서 한 나라의 통치권을 스스로 넘긴다는 것은 보도 듣지도 못한 일이었으나, 조선의 대신들은 국권을 포기하는 문서에 직함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도장의 힘은 작동되고 있었으나 조약 체결을 공포한 후 분노하는 조선 민심의 폭발을 이토는 예상하지 못하였다. (...) 이토는 조선 사대부들의 자결이 아닌 무지렁이 백성들의 저항에 경악했다. 왕권이 이미 무너지고 사대부들이 국권을 넘겼는데도 조선의 면면 촌촌에서 백성들이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일파가 흔들리니 만파가 일어선다. 산촌에서 고함치면 어촌에서 화답한다.     


 전쟁으로 인해 강제로 나라를 뺏긴 것이 아니라 소위 지식인이라는 고위 관료들이 ‘도장’ 하나로 나라를 넘겼다. 나라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이미 망해가는 나라에서 자신들만은 살아남기 위해....      

도장의 힘에 저장하는 세력은 늘 민초들이었다...

 역사는 늘 반복된다는 사실을.

민초들은 몸으로 운다. 그 몸에는 자유가 각인되어 있다. 태생적으로....


『하얼빈』. 김훈의 작품은 선이 굵고 강하다. 다만 『하얼빈』을 읽는 동안 포수 안중근은 보이지 않고 사냥감 이토와 저자 김훈만이 보인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어찌 되었건 엄청난 판매 실적을 올렸고 역사적 장소로서의 ‘하얼빈’을 다시 사람들의 가슴에 상기시켜 주었다. 인간 안중근의 심리를 살펴볼 수 있었고 누군가가 대의를 위해 나서는 동안, 그 누군가의 가족들은 더 힘들다는 사실을....  누군가의 희생이 오늘의 우리를 살게 해 준다는 사실을.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는 책이 분명하지만 역사에 기반을 둔 소설은 베스트셀러 유무와는 무관하게 내게는 늘 불편하다.

역사란  뒤에 남은 이들의 해석일뿐이니까...


중요한 것은 읽는 일보다 쓰는 일은 몇 만 배는 더 힘들다는 사실이다.

독자는 쉽게 아무 말이나 던질 수 있지만 문장 한 줄을 쓰기 위해 저자는 여러 차례 코피를 쏟았을 테니까.

공감하면서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다.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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