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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한적 환대 앞에 내가 여기 있다를 확인하는 일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예술가가 여기 있다>       

 유고슬라비아 태생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Marina Abramovic          

<예술가가 여기 있다〉(The Artist Is Present)〉: 2010년 3월~5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the Artist is present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여기 있다'라는 제목으로 삼 개월간 전시한 작업. 주변의 어느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 앞에 마주 앉은 이만을 바라본다. 대부분의 방문객은 5분 이내로 예술가와 앉아있었고, 몇몇은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이들도 있었다.

마리나의 작업은 단순하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리나가 의자에 앉아 맞은편에 앉는 사람(관객)의 눈을 바라본다. 착석자는 예술가를 만지거나 말을 걸지 말아야 하는 원칙이 있다. 착석자를 대상으로 작가가 변화를 보인 때는 착석자가 울자 따라 울었을 때와 전시 첫날 방문자 중 한 명인 울라이(마리나의 예술적 동료이자 연인이었던)와 손을 맞잡은  순간뿐이었다.     

마리나는 자신의 옛사랑 ‘울라이’와 마주 보고 앉아있다. 긴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리나와 울라이는 함께한 시간을, 지난 흔적을 더듬고 있다.  


전시 도중 마리나는 자신과 관객사이의 책상을 치웠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마주 앉기도 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 테이블이 있을 때와 테이블이 없을 때 어떤 미묘한 차이가 있을까.

테이블은 아마도 같은 거리일지라도 공간적 거리감을 더 느끼게 할 것이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누군가와 단 1분의 눈 맞춤도 견디지 못한다. 마주 보고 눈을 맞추는 것도 어렵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더 어렵다. 우리가 어떤 형태로든 대화를 시도하려는 이유는 그 불편한 침묵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붉은 드레스를 입은 마리나가 이런 퍼포먼스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마리나는 관객에게 눈으로 무슨 말을 전하는 것일까? 관객은 마리나와의 눈 맞춤을  통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마리나와 마주 앉은 어떤 이가 울음을 터뜨리자 마리나도 따라 울었다고 한다.     

만일 내가 마리나의 퍼포먼스에 참여하여 그녀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하게 될까? 마리나의 두 눈을 아무 동요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침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착석자의 대부분이 평균 5분 정도 자리에 앉아있었다는 것을 보면 그 이상은 버티기 어려운 모양이다.    

                                


마리나의 퍼포먼스는 일종의 ‘환대’ 같은 것일까


“환대 행위는 시(詩)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의 침묵, 침묵을 에워싸고 담화가 배치되어 있는 그런 침묵에 접근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침묵은 이방인으로부터 온 하나의 물음(이방인의 하나의 물음)이며, 이방인을 향하는 하나의 물음(이방인에게 건네는 하나의 물음)이다.

 데리다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말이나 할 수 없는 말, 하지-않은 말, 금지된 말, 침묵 속에 지나간 말, 끼어든 말 등을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절대적 환대는 절대적인, 미지의, 익명의 타자에게도 향할 것을, 그리고 그에게 장소를 제공할 것을, 그를 오게 내버려 둘 것을, 그가 도착하도록 내버려 둘 것을, 내가 그에게 제공하는 장소에다 자리를 가지게 될 것을 요구한다.     

환대는 도착한 자에 대한 심문에서 성립하는가? 오고 있는 자에게 건네는 물음에서 시작하는가? 아니면 차라리 환대는 이중의 소거, 즉 물음 및 이름의 소거로 이루어진 물음 없는 환영(맞아들임)에서 시작될까? 무엇이 더 정당하고 더 애정 어린것일까? 묻는 것일까? 아니면 묻지 않는 것일까? 이름으로 부르는 것일까? 이름 없이 부르는 것일까?

이름을 주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주어진 이름을 배우는 것일까? 우리가 환대를 제공하는 자는 한 명의 주체, 법 권리의 주체일까? 아니면 차라리 환대는 타자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타자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것일까?

 자크 데리다 『환대에 대하여』인용    

 


묻는다는 것은 이름을 묻고, 신원을 파악하는 행위다. 외국의 낯선 공항에서 우리는 이름과 국적, 방문 목적을 묻는 해당 국가 관리의 질문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질문을 통해 우리가 그들에게 위험한 존재가 아님을 드러내고 그로 인해 입국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은 무조건적인 환대일 것이다. 데리다는 그렇다고 무조건적 환대를 추종하지도 않는다. 데리다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을 뿐이다.

“무조건적 환대와 조건적 환대, 또는 법 자체와 법들이라는 이 두 개의 법 체제는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이면서도 분리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서로를 함축하는 동시에 하나와 다른 하나 간에 서로를 배제한다. 그것들은 서로를 배제하는 순간 서로 합체되며, 하나와 다른 하나 간에 서로를 에워싸는 순간 서로 분리된다.”      


어떤 이에게는 무조건적 환대를 적용하고 어떤 이는 환대로부터의 배제가 적용될 때의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가 누군가에게 무조건적 환대를 베풀 때는 배제되는 타자들이 생길 수 있다.    

 


마리나는 그녀의 테이블에 무조건적 환대를 적용하고 있다

그녀는 그녀 앞에 앉은 사람에게 이름, 직업, 성장배경, 경제적 상태, 교육정도, 국적, 거주지 등을 묻지 않는다. 그녀와 마주한 그 사람은 그녀와 마주하고 있는 그 순간에만 의미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익명의 타자와 테이블을 공유하는 것은 일종의 받아들임의 행위지만 그와 그녀 안에서 일어나는 진정한 받아들임은 그들 자신만이 알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은 음성 언어 이상의 모든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그녀 앞에 앉았을 때 그녀는 일관되게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 침묵하고 있어도 이미 눈빛으로 수많은 말들을 건네고 있다. 사전에 알고 있는 그 모든 것을 토대로.... 그녀 앞에 미주 앉은 이가 오랜 동료이자 연인이었다면 더욱.. 결국 그녀는 팔을 뻗어 그녀 앞에 앉은 올라바의 손을 마주 잡았다.      


마리나와 마주 않은 이는 누구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으리라

그녀 앞에서  

        

< 나에게 던진 질문 >

         

미소 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 무엇일까?

....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듯

....

과연 내가 타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펼쳤을 때 활자나 삽화가 아닌

그 내용에 진정 공감하듯이

과연 내가 사람들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면서

정작 답변은 회피하고

.....

참다운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세상을 탓하기만 할 뿐

...

공공의 의무를 강조하는 동안

단 일 분이면 충분할 순간의 눈물을

지나쳐버리진 않았는지?

....

탁자 위에 놓인 유리컵 따위엔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법,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기 전까지는     

사람에게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

과연 생각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려나?

-비스와봐 쉼보르스카-

     


누군가의 눈물을 지나친 순간을 떠올리고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느라 정작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한 순간을 떠올리고

나를 돌아보지 못한 순간을 떠올린다.


언제나 상황에 밀려... 늘 뒤로 밀려나곤 하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생각한다.   

마리나의 붉은 드레스는 내 안의 식어버린 빨강을 다시 타오르게 한다. 

마리나 앞에서 마리나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아마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으리라.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는 무제한적 환대 앞에서

자기 안에 고갈된 힘을 다시 얻으리라

< 예술가가 여기 있다 >라는 프로젝트는 결국 < 내가 여기 있다 >를 확인하는 프로젝트일 것이다.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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