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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류장은 어디인가요?

-위안의 여정 - 유동키의 동선을 따라서

위안의 여정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위안받길 원한다.  위안받길 원하는 것은 원시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로부터 위안을 기대할 수 없다면 스스로를 위안해야 한다.     


'유동키(donkey)' 작가라는 닉네임을 지닌 유소연 작가의 전시회에서 스스로를 위안하는 방법을 발견한다

작년 겨울 무렵이었을 것이다.

12월의 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 그녀의 첫 개인전이 금호아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었다.

전시회의 메인타이틀은 <위안의 여정>이었다. '13월의 어느 날'이라는 부제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늘 불안하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도 불안하고  열심히, 끝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도 불안하다,  긴장과 압박과 두려움으로 소진된 우리에게 젊은 그녀가 말한다. 12월이 끝은 아니잖아요. 13월도 14월도 있을 것이라고          

현대인의 불안한 마음을 어루만지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건네기 위한 끝없는 작업 끝에 ’ 유동키‘를 탄생시켰다. ’ 유동키'는 어릴 적 읽은 동화책 속의 당나귀 모습에서 착안한 캐릭터라고 한다.

동화책 속 당나귀는 지친 표정으로 주인의 일을 돕는다. 주인이 휘두르는 채찍을 온몸으로 감수하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당나귀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유소연 작가의 작품 속 유동키는 어둡고 각박한 현실에서 치유의 힘을 보여준다.      

    



13월의 어느 날     

별빛 같은 산수유 꽃 피어있다. 잉크빛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동키들... 연두색 갈기, 노란 갈기를 휘날리며 페달을 밟는다.  어둠을 딛고, 어둠을 헤치고, 어둠을 뚫고...

옆으로 멘 빨강 가방이 걱정을 날려 보낸다.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것이 안개인가 꽃인가 궁금해하는 우리에게 유소연 작가는 뜻밖에도 ‘불안’을 형상화한 것이라 말한다. 빨간 크로스 가방을 멘 동키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 샛노란 산수유로 가득한 들판에 도사리고 있던, 잠재되어 있던 불안들이 날아간다.

밤하늘로 흩어진다. 페달을 힘껏 밟을 때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불안들...

12월 전시회의 메인 그림이었던 <13월의 어느 날> 앞에서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빨간 크로스벡을 매고 달리고 싶었던 시간이 있었다.

불안도 두려움도... 달려가면 사라질 것 같은 젊음이 만개하던 시절을 생각한다.    

      


6월 '민 아트 갤러리'에서 유동키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위안의 여정 - 두 번째 프로젝트 < 이번 정류장은 >이다.

‘이번 정류장은’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마음속 정류장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작품들은 저마다의 마음속 정류장을 떠올려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첫 번째 정류장은 ‘초록 통로’다. 초록 통로를 지나 풀멍과 물멍.. 풀내음, 햇살 가득한 정류장을 지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는 동키, 서로의 마음에 가닿기를 바라는 동키, 빛조각을 품은 동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다리가 아닌 두 다리로 일어선 동키에서 멈춘다.

동키의 동선을 따라 관람객도 정류장을 찾아 움직인다. 

어떤 정류장에서는 내려야 할지, 내리지 말아야 할지는 관람객의 몫이다.

버스나 지하철, 기차를 타면 너무도 당연하게 들리는 ‘이번 정류장은’이란 말이 이렇게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니....     

이번 정류장엔 무엇이 있을까?

내 인생 여정에서 정류장마다 늘 기쁨과 행복, 즐거움만 가득하길 바랐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때론 슬픔역에서 내려야 했고. 때론 분노의 역에서 환승을 해야 했고 때론 두려움과 불안 역에서 때론 흔들림의 역에서 내려야 했다. 원하지 않는 역에 내려서 원하지 않았던 일들을 마주하면서 나는 얼마나, 어떻게 변했을까... 성장이라고 해야 할지, 단단해짐이라 해야 할지 무덤덤 혹은 체념, 적응이라 해야 할지 퇴보라고 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지금 내가 내려야 할 ‘이번 정류장은’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젊은 작가들의 개인전을 좋아한다. 억지와 가식, 위선이 없는 그 풋풋함이 사람을 설레게 한다. 20대라는 특권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동키의 맑고 선한 눈동자에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유소연 작가는 “초록빛 자연이 전해주는 부드러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어느새 내면의 소용돌이가 잦아든다고... 전시를 통해  각자의 마음 정류장을 찾는 의미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영과 보여주기식 전시가 넘치는 요즘 신선한 충격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초록이 있었다. 내가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초록에 웅크리고 앉은 동키.

그 동키가  손을 잡아끌었다. 수령이 꽤 오래된 플라타너스 초록잎이 갤러리의 통유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꽤나 비싼 명품 아파트를 짓는다고.... 멀리서 크레인이 올라가고... 공사장의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었지만... 그 순간 그래도 나는 숲 속에 있었다. 숲에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가만가만 듣고 있었다. 

초록 통로로 시작되어 끝없이 길을 찾는 여정. <이번 정류장은> 기쁨 역이기를 바랐다.

간절히........ /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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