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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지는 소리를 듣고 찬란한 날개를 접기 시작하는

11월 나무는 날개를 버리기 시작한다.


마음이 지는 소리를 듣는다     

...

나무가 씨앗의 기억으로 자란다면

나는 떠날 수 있기만을 꿈꾸었다

뿌리를 뻗어 이동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잎을 통해 햇살을 열망했던 나무가

셀 수 없는 잎사귀들을 멀리 보낸다     

추락하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

처음 날아본다 나무는

낙엽의 형식으로

자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갈 수 있다

환희와 슬픔이 섞인 모순적인 마음으로     

                     김이듬 < 11월 > 부분     


나무와 나무 사이, 틈이 넓어진다. 듬성듬성한 숲 길

햇살이 질주하는 도로가 눈부시다. 떠날 수 없다는 천형 같은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나무가 택한 방법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만들어내는 것이었으리라.

연초록 날개, 진초록 날개... 오렌지색 날개...

날개가 아무리 늘어나도 어느 순간 나무는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날개로는... 수천수만의 날개가 있다 하여도 삶의 중력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리 몸을 바스락 거리는 것들로 채워도 이길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11월은 그 찬란한 날개를 자르는 시기다.

밤새 부는 바람에 부대낀 얼굴. 여전히 남아있는 초록빛과 갈색, 오렌지, 빨강이 뒤섞인 세네치오 같은 얼굴의 잎사귀들... 나무는 날개를 서서히 정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날개들의 덧없는 부스럭거림, 소곤거림, 언제 떠나느냐는 질문 속에 고민은 깊어진다.

나무는 날 수 없음을 알기에 날개를 잘라내야 한다.


11월이다. 고민이 깊어지는 나무처럼

고민이 깊어지는 달이다. 내 안에 찬란함이 남아있을까

올해 초 잉크냄새나는 빳빳한 다이어리를 펼치고 찬란하기를 바랐지만 

나의 날개는 자라지도... 펼쳐지지도 않았다

그때 그때 한숨과 후회. 나지막한 절망 같은 것이... 가끔의 희열과 기쁨 속에 감춰지긴 하였지만..

문득 두려워진다. 11월. 11월의 표정. 나를 닮았다.


언제부터인가 11월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직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좋아지는 것의 이면에는 잠복된 두려움이 있다.

이대로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싶은 염려... 이미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마음이 텅 비어버릴 때가 있다.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어느 쪽이 옳은가. 니체의 영원한 재귀는  무거움이지만 실재여, 진실이다. 반면 우리의 삶은 단 한 번이기에 비교도 반복도 되지 않아 깃털처럼 가볍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발췌


11월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혹은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납덩이같은 무거움과 깃털 같음 가벼움사이... 우리는 삶의 저울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11월... 모처럼 일기장을 펼쳐 무언가를 적고 싶었다.

그러나 11월이란 단어에서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무언가를 더 쓸 수 없는 11월인 것이다.

그런 11월....... 햇살은 듬성해진 머리카락 사이를 달리지만,

바람은 한바탕 머리카락을 뒤흔들어 놓고 달아나지만

나는 생각의 무게로 날지 못한다. 

햇살 좋은 아침...... 안티구아 원액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나마 위로가 된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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