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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 자기 생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생의 한가운데 / 루이제 린저

생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사귀어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내 생각인데, 거짓말하지 않고도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본인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면서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오. 재미있지요. 그러나 어려운 거죠. 아무 데서나 충돌하고, 구설수에 오르고, 항상 극단으로 치닫는 당돌한 존재요.           

     

자매는 서로에 관해서 전부를 알고 있거나 또는 조금도 모른다. 나는 내 동생 니나에 관해서 최근까지 아무것도 몰랐었다. 니나는 나보다 열두 살 아래다.../첫 문장

...

언니, 인간은 왜 고통을 통해서만 지혜에 도달할 수 있는 거야? 니나는 나지막이 말을 계속했다. 소리는 작았지만 완강한 어투였다. 그리고 전혀 원하지 않는데도 왜 현명해져야 하는 거야?     


P120 

고통의 한가운데에는 아무리 심한 고통도 닿지 않는 보호 구역이 있어. 그리고 그곳에는 일종의 기쁨이 있어. 나는 그것을 용납이 가져다준 승리의 구역이라고 이름 붙이겠어.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1950년)는 그녀의 <도덕의 모험>(1957년)과 함께 '니나 소설'이라고 불린다. 작가는 '니나'를 통해서 전후 독일의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참된 삶을 추구하는 여성의 한 전형을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침체되어 있던 독일 문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가 되었다. 이 소설은 니나를 사랑하는 닥터 슈타인의 일기 및 편지, 그리고 니나와 언니가 함께 보낸 며칠 간의 짧은 만남과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이 풍요와 포식을 견딜 수 없습니다. 지금 자연 속에는 아무런 그리움도 없는 정지의 상태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회색인 이른 새벽에 잠이 깹니다. 그러면 나는 공포를, 목을 죄는 공포를 느낍니다. 삶에 대한 공포.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공포입니다... 내가 이 생에서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리라는, 아무것도 훌륭한 것을 이룰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내 생명을 그저 아무렇게나 흘려보내고 참으로 살지 않았으리라는 공포입니다....     

나는 이것을 당신한테만은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무언가가 하고 나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이 무엇인지 모릅니다만 그것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또 나는 그 무언가를 상실할까 봐 불안합니다. 영원히 말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불안의 가장자리, 아직 포착 가능한 불안의 제일 바깥 가장자리에 불과합니다. 실체는 뭔지 모릅니다. 그런데 내가 이 상태를 거의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극단의 한계에 도달하지 않으면 실망을 느낍니다. 나는 극단을 원합니다.

1930. 6.29N.B     


이른 새벽잠을 깨면 삶이 말을 걸어온다.

1930년의 니나 붓슈만처럼... 삶에 대한 공포.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공포입니다... 내가 이 생에서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리라는, 아무것도 훌륭한 것을 이룰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내 생명을 그저 아무렇게나 흘려보내고 참으로 살지 않았으리라는 공포입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삶, 내가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어 진다, 그녀처럼..

내 안의 무언가가, 아직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

여전히 들뜨게 하면서도 여전히 불안하게 한다.

‘그것’ 수시로 나를 뒤흔드는 ‘그것’을 나는 무엇이라 명확하게 말할 수 있을까...

혼돈스러움...

어떤 한계를 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과 어떤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강박 사이에서 2024년

생의 한가운데 서 있다.     

나는 니나 붓슈만이 되었다가 닥터 슈타인이 되었다가 수시로 역할을 바꾸어본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생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면 그는 그 의미를 결코 알게 되지 못할 거예요. 그것을 묻지 않는 자만이 해답을 알아요.  삶의 의의를 묻는 사람은 그것을 결코 알 수 없고 그것을 한 번도 묻지 않는 사람은 그 대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인생의 의미에 대해 자주 묻는 자는 결코 의미를 알게 되지 못할 거라고...

그러하다면... 나는 결코 인생의 의미를 알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답을 알 수 없는 끝없는 질문...               


1929년 9월 15일

새로 여자 환자가 한 명 생겼다.... 자기는 의식하지 않고 나를 이상하고 거북하고 피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귀찮게 만드는 여자다... 드디어 그 여자가 방문턱을 짚고 들어섰을 때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 내 속에 있는 무엇이 변화했다. 아니 나는 변했다. 

.... 그 여자 나이 또래 부드러움과 귀여움이 없는 거의 슬라브식 얼굴을 가진 말라빠진 갈색몸과 관자놀이에 달라붙어 있는 헝클어지고 먼지에 덮인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였다. 마치 황원의 바람에 휘몰려 온 것같이 그 여자는 마르고 갈색 모습을 하고 거기 누워있었다.     

새벽이다. 지금 막 집에 돌아왔다. 니나의 집 앞에 갔었다. 다섯 시간 동안 담장에 기대서 숲 뒤에 숨어 그 집을 바라보았다. 별이 가득 찬 맑고 추운 가을밤이었다. 내가 이 도시에서 아직 한 번도 겪어본 일이 없을 만큼 조용한 유리같이 투명한 밤이었다... 마치 니나의 목숨이 내가 꼼짝도 안 하고 서있는데 달려있기라도 한 듯, 니나의 목숨을 파수 보듯 지키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새벽 공기 속에서 내가 밤을  기대서 보낸 감옥소 담장에서 죽음을 본 것 같이 생각되었다.    

  

닥터 슈타인은 니나가 자살을 했을지 몰라 그녀의 집 앞을 서성이고 니나는 다시 살아난 것에 대해 분노한다. 생의 한가운데 내던져졌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죽음의 편에서 생의 편으로 건너온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맹렬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생 가운데 다시 내던져졌어. 위대한 기회가 지나가버렸다는 것을 알았고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야. 나는 울었어. 유리창에 기대서서. 창문은 열려있었고 이른 아침이었어. 슈타인이 담에 기대어 서 있는 걸 보았어야 했는데.... 가을 낙엽의 냄새가 났고.. 몹시 슬픈 아침이었어.     

죽음이 나를 가져가려 하지 않았으니까. 이제 나는 생의 편으로 돌아섰던 거야. 당시의 나에게 산다는 것은 아는 것, 무섭게 많이 아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파고드는 것이었어.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언니도 알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전날과 아주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는 거야. 갑자기 다르게 걷고, 다른 글을 쓰고, 다르게 말을 하는 거야.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지만 자기 자신은 잘 알고 있지. 우리는 이렇게도 될 수 있고, 혹은 전혀 다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거야.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고 자기 자신과 게임을 할 수 있어.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있는 이런저런 인물과 자기가 비슷하다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있잖아? 다른 책을 읽으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이고, 끝없이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거야. 자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보여. 어느 것도 진정한 자아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백 개의 자아를 다 합친 것이 진정한 자아인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게 미정이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사실은 이 여러 자아 가운데 하나의 자아만을, 미리 정해져 있는 특정한 하나의 자아만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만.      

수백 개의 얼굴... 수백 개의 자아. 

파울클레의 자화상 생각이 난다. 조각조각난 얼굴. 밝고 그늘지고, 웃음과 슬픔이 뒤섞인

빨간 눈동자의 세네치오.

모든 게 미정인 세네치오의 얼굴....

우리는 수많은 얼굴 중 어떤 얼굴로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이 나라고 믿으며, 그것이 나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니나가 이 도시에서 사라진 것 같을 때.. 내 산책길은 언제나 같다. 공원을 통해 대학을 돌고 튜르겐 가를 지나서 윌헬름 가에 있는 니나의 집 앞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우리는 내맡겨져 있는 거야. 누구에게 내맡겨지는 것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90퍼센트가 주어져있는 사람.. 거의 다 주어진 셈이지만 제일 중요한 10퍼센트가 빠져있는 ㄱ사람이 바로 나입니다... 지금은 밤이고 나는 혼자다. 나는 내 나이의 남자가 ‘생의 의의’를 한 소녀 속에서 찾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스스로 물었다. 갑자기 원시민족 사이에 있었던, 그리고 농부들 간에도 간혹 있는 신앙이 생각났다. 힘찬 어린애를 노인이 이부자리에 넣어놓으면 그 아이의 힘이 노인에게로 옮겨져서 목숨을 연장하고 강화한다는 것.... 이런 것을 기억하는 것은 불쾌한 암시다. 전보다 더 나는 니나와 결혼하고 싶다... 


생의 90퍼센트가 갖추어진 남자. 단 10퍼센트로 불행한 남자 슈타인. 그는 니나와의 결혼을 강렬히 원하지만 강렬히 원하는 만큼 행동을 자제한다.          


내 말은 우리는 조심스럽게 살아야 하고 어디서도 안전하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거야. 모든 피조물들이 그렇게 살지. 언니는 혹시 한 마리 새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고양이, 말똥가리, 담비, 어린 학생들, 겨울 추위, 이 모두가 그를 쫓고 있어. 새는 이런 한가운데에 살면서 새끼들을 키우고 있어. 한순간도 나뭇가지에서 마음 놓고 앉아 있지 못하지. 그래, 새를 봐, 새가 어떻게 앉아 있는지를 봐. 달아날 준비를 하고, 경계를 하면서, 불안해하면서 나뭇가지에 앉아 있잖아. 그리고 온 세상이 그를 적으로 보는데 노래 부르는 거야.

            


꽃 파는 여자가 장미를 내밀었다. 나는 10년 넘게 아무에게도 꽃을 선사하지 않았으므로 꽃을 사는데 결단이 필요했다. 나는 부끄러우면서 묘한 쾌감을 느꼈다. 아름다운 장미였다. 니나는 

내가 꽃을 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보고 있다가 내가 그 꽃을 주자 몹시 놀란 듯했다.     

니나 나도 고독이 필요해요. 그러나 나는 그걸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요. 너무너무 많이,. 너무도 오랫동안

... 니나는 엘베강과 같은 존재다, 유혹적이고 순진하며 도덕에 얽매여 있지 않고 본능적으로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멀고 낯설게 느껴져 붙잡을 수 없다,... 나는 니나가 언젠가 여자가 되었을 때 가지게 될 얼굴을 이미 보았다.     



나는 텅 빈 방과 천천히 죽어가는 수종증을 앓는 노파, 작은 가게, 그리고 파리들을 쳐다보았다. 여기에서 니나는 거의 일 년을 보냈다. 왜인가?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서? 나의 도움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그러나 사실은 <생>이 그녀에게 부과한 모든 과제를 자신이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였다. 이런 망명지와 같은 곳에서 니나는 불행하지 않았을까? 아니, 하나의 난관을 극복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과연 불행할까?      

니나는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제 와서 도망을 친다면 저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으로 생각될 거예요.

.. 운명에 대한 니나의 믿음은 요지부동이었다. 이것이 그녀의 강점이며 그녀를 보호하고 지탱해 주는 것이었다.           


1933년 10월 5일

나는 니나한테 갔다. 그녀는 그것을 모른다. 기차를 타고 벤하임에서 두 정거장 전에 내렸다. 들판을 걸어갔다. 언제나처럼 가게 안에 니나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사탕병, 커피상자,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아 올린 구두약 뒤에.. 나는 비에 젖은 유리창 앞에 오래 서 있을 수 없었다.

니나와 이야기도 하지 않고 떠나기가 몹시 힘들었지만 지체하지 않고 떠났다. 길을 잃고 헤매었다....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지쳐있었다.           


1933년 10월 18일

노파는 10월 6일에 죽었다고 했다.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았어요. 다만 하나의 종결점일 뿐이었어요. 

다란 저항감을 갖고 시작한 일에 마침내 적웅해 버리는 것.. 아니죠 적응한 것은 아니죠. 받아들인 거죠. 인간이 순응만 하면 참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요. 예를 들어 이 가게도 처음에는 싸구려 냄새 때문에 끔찍하게 싫었어요. 그러나 나는 이 가게에도 어두컴컴함. 서늘함, 나름대로 갖춘 질서들로 해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고모할머니조차도 나를 끌어당기는 매력을 갖고 계세요. 서서히 찾아오는 죽음, 누런 살이 부어오르는 모습, 끔찍한 붕괴의 과정,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는 육체의 자기주장...     

저녁때쯤이었죠. 할머니는 안락의자에 앉아있었고 나는 아주 오래된 사진들을 찾아냈어요. 그 사진 속 고모는 예쁘고 젊은 처녀였어요. 아름다운 신부. 그런데 지금 저기에 늙고 추악한 여자가 있는 거예요. 구역질이 날 정도의... 나는 할머니를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인간이 정신적으로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면 삶은 끔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여기 있는 이 늙은 여자만 그러는 게 아니니까요. 할머니의 파멸은 할머니의 파멸만은 아니죠. 

늙고 부어오른 몸은 반송장 같았어요. 불안을 느끼고 빨리 밖으로 나갔어요. 집 뒤 정원에는 과꽃과 달리아를 심은 적이 있었죠. 꽃을 피우고 있었죠. 그때 나는 생각했어요. 봐라. 너는 중요한 인식의 순간에, 적나라한 진실 앞에서 도망치고 있다. 다시 들어가라. 노인을 보고 너 자신을 보라. 이것도 삶의 일부일 뿐. 모든 것을 경험해야 한다. 추악한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것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할머니가 막 운명하시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마치 종을 치다가 갑자기 중단한 시계처럼 기침이 딱 멈추고 축 늘어졌어요. 죽음이 찾아온 거예요.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아버지의 임종, 어머니의 임종, 할머니의 임종, 시어머니의 임종...

내가 직접 바라본 임종, 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갑자기 생의 마침표가 찍혔다.

너무도 당혹스럽게

그 마지막 순간,,, 그들의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오는지 남은 자는 전혀 알지 못한다.

질병과 늙음, 생의 당연한 코스처럼 여겨지는 마지막 순간.

나도 니나처럼 호스피스 병동에서 스멀거리며 풍겨 나는 죽음의 냄새가 싫어 장미정원을 향해 달렸었다... 

살아있는 걸 보아야겠다고... 질식할 것 같은 죽음의 느낌을 견딜 수 없었다.

병실 안의 사람들... 이미 죽어가는 사람들... 죽음의 번호표를 받은 이들처럼...

어쩌면 당연한 마지막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이었다.

그들의 죽음은 어쩌면 내 죽음의 일부를 미리 보는 것 같은 고통으로 느껴졌다.          


1933년 10월 28일

우리의 짧은 여정의 마지막 날이다. 나는 너무도 아름다운 날들을, 너무도 깨끗한 날들을, 나무도 완전한 날들을 경험했으며 숨도 마음대로 쉴 수 없다.... 오랫동안 맛보지 못한 생의 냄새가 난다. 니나의 가벼운 걸음걸이를 사랑했으며 나에게 버섯을 보여주려고 재빨리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사랑했으며, 니나의 검은 머리에 얹힌 바늘 같은 전나무 잎들과 니나의 치마에 감긴 거미줄을 사랑했다....


니나가 했던 말 <그러면 당신이 될 거예요> 이 말은 많은 것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1934년 2월 28일     

당신은 오직 위험을 사랑할 뿐이야. 모험을, 그리고 인생을.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야. 니나는 나를 쳐다보았다.

인생.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그러나 나는 당신을 통해서 그 인생을 사랑해요. 

그러나 알 수 없는 고통과 열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신 안에 있는 인생을 사랑해요. 오직 안에 있는 것 말이오.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나는 그 인생까지 사랑하는 거요. 이것이 차이요, 엄청난 차이요. 그래서

당신은 나를 떠날 수 있는 거요.      

당신은 다시 나에게서 떠나려고 하고 있어요. 당신은 지조가 없고, 당신이 그것을 알리가 없죠, 나의 사랑에는 마치 열매 속에 씨가 담겨 있듯 지조가 담겨 있소. 당신은, 당신은, 사랑하다가, 떠나고, 또 사랑하다가, 또 떠날 수 있는 사람이오. 나를 지나가고, 다른 사람을 지나가고, 모든 이들을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이오.


생을 통해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한 사람을 통해 생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다르다.

슈타인은 니나를 통해, 니나 안에 있는 생을 사랑한다. 그로 인해 자신의 생을 사랑한다

니나는 생을 사랑한다. 그 생 안에 수많은 이들을 사랑하다, 슈타인, 알렉산더, 퍼시 할, 브라운 박사 등등...

생을 사랑하기에 니나는 그때그때 그 생의 분위기에 맞게 자신을 던진다. 사람이든 일이든..

닥터 슈타인은 니나를 통해서만 생의 환희를 맛보고 생의 냄새를 맡는다. 

니나를 사랑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을, 자신의 생을 사랑한다.     


당신은 사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나만큼 잘 알고 있어요. 우리는 생의 의미를 알려고 했어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죠. 만약 의미를 묻게 되면 그 의미는 결코 체험할 수 없게 돼요. 의미에 대해 묻지 않는 자만이 그 의미가 뭔지 알아요. 

나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해요. 그러나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은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삶을 비켜갔어요. 한 번도 모험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도 못했고 잃지도 않았어요. -니나     

니나는 정말 흥분했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그렇지 않아요. 행복이 무엇인지 당신은 전혀 몰라요. 그러나 나는 행복해요. 나는 당신이 나의 인생을 당신 인생처럼 만들려고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요. 당신의 인생은 마치 일요일을 망쳐버리는 재미없고 어려운 학교 숙제 같아요. 얼마든지 나를 부박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마 삶에 대한 당신의 불안이 삶을 사랑하는 내 방식보다 더 부박할지 몰라요.     

나도 이제 화가 났다.

아, 그 인생, 인생. 나는 소리쳤다. 그게 도대체 뭐요?! 모든 인생이 인간적 삶은 아닌 거요. 당신은 오직 인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열광해서, 선택도 않고 그 앞에 서 있는 거요. 한 번은 이 남자 팔에, 한 번은 저 남자 팔에 안겨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거요  


니나는 일요일을 망쳐버리는 재미없고 어려운 학교 숙제 같은 슈타인의 인생을 비난한다

자신을 이미 정해진 틀에 맞추어 두려는 슈타인에게

한 번도 제대로 된 모험을 하지 않은 당신은 행복하지 않았을 거라고... 

슈타인은 인생이라는 것에 열광한 당신이 고작 한다는 것은 파트너를 수시로 바꾸는 것이었느냐고 분노한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실망은 속 마음과 정반대로 작동한다.   

  

    

1947 9월 7일에서 8일에 걸친 밤 동안에
 

사랑하는 니나.. 오늘이 바로 우리가 처음으로 만난 지 18년이 되는 날이다...

18년 동안 너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했고 수집했다. 헬레네에게 소포로 보낼 것을.. 너의 38회 생일날 보낼 것을... 나의 생시의 죄란 결단을 회피했다는 것이다.

의식이 끊임없이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소박한 박력을 빼앗고 지식의 우울 속에 몸을 맡기게 만들어버린 남자가 어떻게 결단을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오늘 새벽녘에 나는 나의 일생에 처음으로 진짜 결단을 내리겠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의 명령에 의해서.. 진정으로 살아보지 않은 채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9월 8일을 죽음의 날로 선택했다. 니나를 처음 만난 지 꼭 18년이 되는 날.

    

니나가 꽃을 가져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나는 언제나 어두운 강변에 남아 있었고 니나는 더 밝은 반대편에 있었다. 그 사이에는 다리가 없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부르면 다른 사람을 알아들었다. 니나가 돌아가기 전 우리가 나눈 마지막 말들 뒤에 남은 측량할 길 없는 침묵의 시공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 밀착해 있다고 느꼈다. 내가 어둡고 출구가 없어 보이는 낭하를 끝없이 가고 있을 때마다 나에게 문을 열어준 것은 당신이었다고, 당신은 왔으며 당신과 함께 양지바르고 확 트인 대지가 펼쳐져 있었소. 나는 비록 이 대지에 발을 들여놓지는 못했지만 그 대지를 본 것으로 나의 지난 암담함은 구제될 수 있었소.     

니나는 부드럽고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왜 당신은 당신의 문을 항상 닫아버린 것도 다름 아닌 나였다고 말하지 않는 거죠?

아니오. 당신이 그 문을 열어두었다 하더라도 나는 그쪽으로 갈 힘이 없었을 것이오... 우리는 서로 만나긴 했지만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문지방을 넘어서지 못한 거요. 문지방 너머 다른 사람의 왕국이 있는 그곳으로 말이오. 당신은 나의 생을 인정할 수 없었소.

니나는 물었다. 왜 당신은 <할 수 있었다> <이었다> < 하려고 했다>라고 말하는 거죠? <할 수 있다> <이다> <하려고 한다>라고 하지 않고?

이 질문에 대해서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침묵했다.

니나는 길모퉁이를 돌아가다가 바로 직전 뒤를 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지상에서의 이별의 고통이 엄습해 왔다... 니나의 음성이 내가 들은 마지막 음성이고 니나의 눈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눈이 되리라.      

아침 무렵 내 양심은 인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을 강요한다. 많은 죄를 본다. 인생의 죄, 더 이상 바뀔 수 없는 순간에 이런 통찰이 주는 고통은 컸다. 니나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동이 터온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고통이 나의 의식을 덮고 있다.     


진정으로 생을 살아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슈타인은 스스로 생을 결정하기로 한다.

이제야.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생의 한가운데에서 기꺼이 생의 한가운데를 달아날 결심을 한다.    

 

죽음 후 소포로 니나에게 배달된 일기장, 18년에 걸친 방대한 기록들.

니나는 영국으로 떠나고 빈집에 남은 언니는

또 다른 누군가... 니나를 애타게 보고 싶어 하는 한 남자의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그의 방문을 기다린다.

니나의 영국 주소를 전해주지만....... 니나는 오직 니나의 삶을 살 뿐

니나는 언제나 생의 한가운데 서 있을 뿐... 생의 배경에는 무관심하다.         


12월이다. 이제 한 해의 끝을 향해간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연례행사처럼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다시 읽는다.

그 책을 읽음으로써 나의 어정쩡한 한 해의 마침표가 되는 것처럼.     

아주 오래전 내게도 슈타인 같은 친구가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니나 붓슈만의 캐릭터에 열광해 있을 때였다.

그는 기꺼이 슈타인이 되어주었고 수없이 흔들리는 것들을 붙잡아주곤 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생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오래전 그날을 그리워한다

그 흔한 절교니 이별선언이니 그런 과정조차 없이 제각각 자신의 길을 갔다.

지금 어디선가. 여전히 그렇게.... 맹렬하게...

생의 한가운데에 서 있을 것이다.

후회도 미련도 없이     

12월이다. 강렬한 생의 냄새를 맡는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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