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수집가의 시간>.....
2024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2024년의 마지막 토요일
토요일이 주는 묘한 안도를 느낀다.
모처럼 눈이 내려 도로를 덮었고,
모처럼 한 겨울의 복판에 서 보았다.
무엇을 하며 지나온 시간인가...
당신이 꼭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참회를 하며 무릎으로 기어 사막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당신 육체 안에 있는 그 연약한 동물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라.
내게 당신의 상처에 대해 말하라, 그러면
나의 상처에 대해 말하리라.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간다.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비는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풀밭과 우거진 나무들 위로
산과 강 위로
당신이 누구이든, 얼마나 외롭든
매 순간 세상은 당신을 초대하고 있다
- 메리 올리버 < 기러기 >
메리 올리버는 그녀의 시 <기러기>에서
당신이 꼭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참회를 하며 무릎으로 기어 사막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당신 육체 안에 있는 그 연약한 동물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라고 이야기한다.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본질적으로 좋은 사람이기도 어렵지만
좋은 사람 연기를 하는 것도 어렵다. 다만 내 안에 있는 그 연약한 동물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라고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안에 살고 있는 연약한 동물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살이에 있어 ‘연약함’이란 얼마나 취약한 어리석음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참회를 하며 무릎으로 기어 사막을 통과할 필요도
오체투지를 하며 라싸에 가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안의 연약한 동물 혹은 짐승의 목소리, 호소를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당신과 나의 상처를 말하면
그러는 사이 세상은 돌아가고 태양과 비는 풍경을 가로질러 간다고..
“당신이 누구이든, 얼마나 외롭든
매 순간 세상은 당신을 초대하고 있다고... "
2024년 마지막 토요일... 당신이 누구이든, 얼마나 외롭든..
매 순간 세상이 나를 초대하고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아직 시들지 않은, 조금씩 시들어가는 빨강 장미 한 송이 들고 눈 밭으로 걸어간다.
내 안의 붉음을 토해낸 책 <빨강 수집가의 시간>을 들고...
눈 위에 내려놓는다. 그 서늘함에 장미는 몸을 움츠린다.
나는 나대로, 내 방식대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에세이라고 하며 꼭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만을 써야 감동을 준다라고 생각하는 이는 더더욱 아니다. 내가 걸어온 방식대로, 내가 살아온 방식대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방식대로........ 다만 한 권의 책에 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선의지.... 이 한 권의 책이 당신이 누구이든, 얼마나 외롭든 매 순간 당신을 초대하는 초대장이 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이 있을까...
깊고 짙은 외로움을 안다. 내가 누구인지를 수없이 자문하던 시간을 지나왔다. 물론 지금도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도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읽고 쓰는 사람' 혹은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
2024년의 마지막 토요일 늦은 오후를 지나고 있다. 창밖이 어두워진다./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8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