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울음소리, 매미의 꿈... 태양이 삼킨 여름 ..릴케의 시를 읽는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 마치 이별이
네 뒤에 있는 것처럼, 막 지나가는 겨울처럼.
겨울 중 어떤 것은 끝없는 겨울이라서
겨울을 나며 네 마음은 그냥 견뎌야 하리니.
언제나 에우리디케 안에 죽어 있어라, 더 노래하며 올라가라,
더 칭송하며 순수한 연관 속으로 돌아가라.
이곳, 사라지는 것들과 함께, 쇠락의 왕국 속에 있어라,
울리는 유리잔이 되어라, 울림 속에 이미 깨져버린
존재하라 – 그리고 동시에 비존재가 그 조건임을 알아라,
너의 내밀한 진동의 무한한 근거를 알아라,
그리하여 네 진동을 이번 한 번에 완수할 수 있도록.
충만한 자연에서 써버린 것과 묵묵히 말없는
비축분,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총합에
환호하며 너를 더하고 숫자는 없애버려라.
모든 이별에 앞서가는 일...
이별을 거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별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 마치 이별이
네 뒤에 있는 것처럼, 막 지나가는 겨울처럼.
겨울 중 어떤 것은 끝없는 겨울이라서
겨울을 나며 네 마음은 그냥 견뎌야 하리니.
이별이 내 뒤에 있는 것처럼... 겨울을 견디는 것.. 어떤 겨울은 끝없는 겨울 같은 것이어서.
우리에겐 늘 겨울이란 게 있다.
그 겨울은 계절로서의 겨울만은 아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힘든 것, 삶의 민낯 같은 것일 수도 있고. 낯선 것일 수도 있고.......... 통과의례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이 한 여름의 절정.... 나는 말없이 모니터에 겨울의 명령어를 받아 적고 있다.
앞서가라.
올라가라.
있어라
되어라.
존재하라
없애버려라.
겨울의 명령어 이면서 한 여름의 명령어 이기도 한...
“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모으는 벌꿀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들을 모아서 보이지 않는 거대한 황금 벌통에 저장합니다.” -릴케
너의 내밀한 진동의 무한한 근거를 알아라,
그리하여 네 진동을 이번 한 번에 완수할 수 있도록.
내밀한 진동의 무한한 근거는 인간을 비롯하여 지상의 만물에게 무상의 선물을 아낌없이 선사하는 대지다.
‘진동’을 ‘이번 한 번에 완수’하라는 말은 지상의 삶을 온전히 바쳐 ‘존재’의 완성에 이르라는 말이다.
충만한 자연에서 써버린 것과 묵묵히 말없는
비축분,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총합에
환호하며 너를 더하고 숫자는 없애버려라.
자연의 순환, 이루 말할 수 없는 총합에 환호하며 ‘너’를 더하고 너는 사리지고 마침내 생의 숫자를 없애버리는 일..
대지를 달구는 엄청난 폭염. 땅에 떨어진 죽음을 보았다.
7년 지하세계의 꿈이 한 여름의 태양아래 말라간다.
꿈을 이루었을까?
매미는 한때 존재하였고 그와 동시에 비존재가 그 조건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내밀한 진동의 무한한 근거를 알고.... 그 진동을 짧고 굶게 한 번에 완수해 버린...
그리하여 매미는 죽음으로 환호한다.
숫자는 사라지고.
껍질만 남았다. 꿈의 허무. 그림자 같은..
매미소리 마저 집어삼킨 태양,
칠월의 태양... 여름의 얼굴.
존재한다는 것. 조건은 비존재가 되는 것
모든 여름에 앞서가고 싶은 여름이다.... /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