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소리와 고대의 소리. 어딘가. 멈추고 싶은 날
나는 이 세상의 언어만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죽은 자와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와도 행복하게 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보다 창조의 핵심에 가까워지긴 했으나 아직 충분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 폴 클레(Paul Klee)의 묘비명 중에서
파울클레의 작품 < ANCIENT SOUND>
한국의 조각보 같은 그의 작품을 바라본다
'고대의 소리'라고 해야 할까? '오래된 소리'라고 해야 할까?
시각적인 것에서 청각적인 흐름을 느낀다.
클레 그림의 기묘한 매력이기도 하다. 평면의 색채들이 꿈틀거리며 일어나 말을 하기 시작한다
제각각의 언어로.. 이미 소멸해 버린 고대의 언어들로..
아주 어릴 적 나는 사라진 언어를 복원하는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런 꿈을 가졌을까... 의문이 들곤 한다. 친구들이 의사나 간호사나 선생님이나 이런 꿈을 이야기할 때... 고대의 언어를 복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나이에...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신비롭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으리라.
오래된 소리, 고대의 소리 앞에 서 있다
나는 무슨 소리를 듣고 있는가?
들을 수 있는가?
들으려 하는가?
오래전 목소리를 찾고 있는 것일까? 저 네모난 색채들 사이 어딘가에 있을..
어둠에 반쯤 가려진 네모들
가려졌다 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잠시 가려져있는 네모일까?
그 어둠 한 자락 속에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사람은 때론 생각의 무덤에 매몰되기도 한다
생각이 많다는 것이..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현재에서 현재로 달려가고
현재에서 현재를 건너가는 일
조각보위의 한 색깔에서 다른 색깔로 줄달음치듯 달려왔다.
현재.... 오직 현재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가를 문득 생각한다.
나른한 폭염......... 지속되는 더위 속 삶의 나사가 하나 풀린 듯한 느낌이다.
기계적으로 일어나 아침 수업을 하러 갔고 강의실 입구에 있는 수호신 같은
두 그루 나무에 물을 주었다.
진종일 견디고 있는 것들... 나도 나무도... 사람들도 여름을, 폭염을, 삶을 견디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젤처럼 생긴 푸른 나무 칠판에 그때그때 문구를 바꿔놓는 일
강의실 바로 옆에는 미술 학원과 한의원 그리고 가정의학과가 있다. 그곳을 지나는 이들은 내 강의실 입구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파란 칠판에 적힌 글들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처방전을 손에 든 어떤 여인이 칠판 앞에 적힌 문구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의 문구는 무엇이었던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폴 발레리의 시구였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를 읊조린다
현재에서 오직 현재로
카르페 디엠이 무슨 인생 처방전처럼
그 한 마디에 빠질 나이는 어쩌면 이미 지나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를 보낸 끝......... 발걸음은 저녁미사가 있는 성당으로 향한다
마음이 넝마가 된 기분...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한 것이란 생각을 한다
오직 현재에서 현재로 정신없이 살아가는데..... 삶의 보상을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성당 전면에 거대한 십자고상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무엇을 바라는가.
그냥 살아가고 있음에
네모에서 네모로
현재에서 현재로
길을 잃지 않고
길을 놓치지 않고 걸어가면 그뿐이지..
‘오래된 소리’ 그리고 ‘고대의 소리’들이 한 평면 위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제각각 제 목소리를 잃지 않고
바라보는 이의 눈에는 비슷비슷한 네모.... 비슷비슷한 색조....
색의 소리를 듣는 능력을 망각해 가는 것일까? 나는 내 가슴의 오래된 소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또 하루가 주어졌다.
7 월이 간다. 내 감정이 얼마나 취약하고 빈약한가를
이 뜨거운 여름에 생각한다. 세상의 질서 속에........... 내 오래된 소리를 놓쳐버리고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
흔들리는 것
흐느적거리는 것
끝없이 갈등하는 것
그리고 또다시 계절이 바뀌면
이 여름의 뜨거움과 혼돈을 그리워할 것이다.... 아주 오래전 고대의 언어를 복원하고 싶은 꿈을 꾸었던 어린 소녀의 마음으로 /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