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닥 실이 있다.그 실을 붙잡고 있는 한 너는 길을

잃지 않는다. 그 실을 절대 놓지 말라.

네가 따르는 한 가닥 실이 있다. 그 실은

변화하는 것들 사이로 지나간다.

하지만 그 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따라가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너는 그 실에 대해 설명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실을 붙잡고 있는 한 너는 길을 잃지 않는다

비극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사람들은 상처 입거나

죽는다. 그리고 너는 고통받고 늙어간다.

시간이 하는 일을 너는 어떻게도 막을 수 없다.

그래도 그 실을 절대 놓지 말라.

윌리엄 스테포드


내가 따르는 한 가닥 실이 있다. 그 실을 따라왔다.

실의 끝을 붙잡고 이리저리 방해물을 피하며 때로는 그 실을 붙잡고도 다른 실을 탐하느라 허둥대며........

세상은 변해가고.... 시간과 공간은 달라져도 실은 오직 실일 뿐... 실은 실의 길을 가고 있다.

나는 그 실을 온전히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실이 나를 데려온 방향을, 데리고 갈 방향을....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실을 따라 걷고 있다.

오직 자신들의 눈에만 보이는........

색깔도 굵기도 길이도 제각각인 자기만의 실을 따라가는

우리는 모두 ‘실 따라가기’ 게임의 참가자들....

중간에 실을 잃어버리거나 놓쳐버리거나 실이 끊어져버리면 자동으로 탈락되는.......

한번 선택한 실을 교체도 리필도 불가능한......... 대역을 쓸 수도 남의 실을 빌릴 수도 없는

인색하고 답답한 게임의 룰.

오직 자신의 실패에 감겨있는 길이만큼 실의 길을 만들 수 있다.


나의 실은 어느 정도 남아있을까?

내 실의 길을 가면서도 자꾸 초조해지는 것은 그만큼 실 따라가기 게임에 자신이 없다는 뜻일까?

어디가 게임의 분기점인지, 게임의 종점인지 알 수 없다.

저마다 목적지가 다르니까... 저마다 만들어내는 실의 길이 다르니까...


여름..... 한바탕 광란의 폭우가 도시를 덮쳤다.

지난 토요일 저녁이던가.. 모처럼 소강상태이던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더니 엄청난 속도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침 저녁미사 중이었다. 미사음악을 덮을 정도로 성당을 천장과 벽을 두드리는 빗소리... 자연의 반주였다.

이 안에 있는 동안은 안전한 것인가.

노아의 방주 생각을 했다.

성전이 하나의 거대한 배가 되는 생각을..........

미사가 끝나고 그 폭우를 헤치고 돌아가는 길.......... 앞은 보이지 않고 자동차의 브러시만 맹렬하게 움직일 뿐...... 가슴 졸이는 귀가.

거대한 비구름이 북상한 탓에 이곳은 다시 폭염의 절정이다.

곳곳에 피해를 주고.... 곳곳에 상흔을 남기고...........

폭우가 덮친 마을.......... 엉겨버린 실들과 놓쳐버린 실들과 주인을 잃어버린 실들과

끝내 돌아오지 않는 주인들이 있다...........


이 혼돈 속에 자신만의 실을 꼭 붙잡고 오직 자신만의 길을 헤쳐가기란 쉽지 않다.

각자의 실을 따라가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결코 혼자로는 존재할 수 없다

옥타비오 빠스의 장시 <태양의 돌>에 나오듯


나의 행동은 나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고

내가 존재하기 위하여 나는 남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삶이라는 것이 언제 정말 우리의 것인 일이 있는가

언제 우리는 정말 우리 자신인가.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되어본 일이 없다.

삶은 한 번도 우리 것인 적이 없다. 그건 언제나 남의 것.

삶은 아무의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삶이고, 남을 위해 태양으로 빚은 빵

우리 모두 남인 우리라는 존재

내가 존재할 때 나는 남이다. 나의 행동은

나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내가 존재하기 위하여 나는 남이 되어야 한다.

내게서 떠나와 남들 사이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남들이란 결국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

그 남들이 나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없다, 항상 우리다.

삶은 항상 다른 것, 항상 거기 있는 것, 멀리 있는 것,

너를 떠나 나를 떠나 항상 지평선으로 남아 있는 것.

우리의 삶을 앗아가고 우리를 타인으로 남겨 놓는 삶

우리에게 얼굴을 만들어 주고 그 얼굴들 마모시키는 삶

옥타비오 빠스 <태양의 돌 > 부분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없다, 항상 우리다.

삶은 항상 다른 것, 항상 거기 있는 것, 멀리 있는 것,

너를 떠나 나를 떠나 항상 지평선으로 남아 있는 것.

우리의 삶을 앗아가고 우리를 타인으로 남겨 놓는 삶

우리에게 얼굴을 만들어 주고 그 얼굴들 마모시키는 삶


신은 우리에게 실을 따라가도록

얼굴을 만들어주고 실을 볼 수 있는 두 개의 눈을 주었다.

그러나 한편 여전히 실을 따라가는 우리는

평생을 그 실을 붙잡기 위해

우리에게 부여된 얼굴을 마모시키며 살아가야 하는 것....

양면성................ 하늘의 두 얼굴 같은

7월도 종반을 향해 간다.

오늘도 나의 실을 따라가야 한다. 실의 길이는 알 수 없지만

그 실의 색깔을 나는 알고 있다.

붉은 장미의 색깔이라는 것을........./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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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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