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로부터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영화와 소설 < 아웃 오브 아프리카> 우리는 온다. 심장의 울림 속에

아프리카로부터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카렌과 데니스를 기억하며

로마 시대 작가 플리니우스의 글 <Ex Africa semper aliquid novi(Out of Africa always something new)>에서 제목을 따온 이 작품은 카렌 블릭센이 17년간 아프리카 생활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회고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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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블릭센(Karen Blixen | Karen von Blixen Finecke 1885 ∼ 1962) 덴마크 출신 작가. 코펜하겐, 파리, 로마에서 미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1913년 케냐로 이주해 커피 농장을 시작했고 커피 농장이 파산하자 덴마크로 돌아가 평생을 그곳에서 보냈다. 1954년과 1957년 두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며 1962년 영양실조로 고향에서 운명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아웃 오브 아프리카’ ‘풀 위의 그림자’ 등이 있다.


Equitare, arcum tendere, veritatem dicere.

말을 타고, 총을 쏘고, 진실을 말하다

1, 숲으로부터, 고원으로부터 우리는 온다. 우리는 온다.

은공농장

"I had a farm in Africa, at the foot of the Ngong Hills."

나는 아프리카 은공 언덕 기슭에 농장을 갖고 있었다.... 마치 아프리카 대륙이 1천8백 미터 높이를 통해 증류되어 정련된 독한 정수만이 남아있는 듯했다. 그곳의 색은 도기처럼 건조하고 탄 색깔들이었다... 그곳의 풍경과 삶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바로 공기였다... 하늘은 연푸른색이나 보랏빛을 벗어날 때가 거의 없었으며 강력하고 무게 없고 끝없이 변화하는 구름 떼가 하늘 높이 솟아 유유히 흘러갔다. 한낮에는 땅 위의 공기가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살아 있었다.... 이런 높은 곳의 공기 속에서 편안히 숨 쉬다 보면 어느새 기운찬 자신감과 상쾌한 기분이 가슴 가득 차오른다. 고원 지대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 내가 있다. 내가 있어야만 하는 곳에”


일단 아프리카의 리듬을 파악하면 아프리카의 모든 음악이 그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밭에서 일하거나 소 떼를 몰거나 춤판을 벌이거나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할 때 아프리카의 모습으로 움직이고 춤추고 우리를 대접한다..

키큐유족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그런 일에 익숙하다. 백인들 대다수가 미지의 것이나 운명이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흑인은 운명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며 운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운명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집과도 같다. 오두막의 친숙한 어둠, 자신의 뿌리를 감싼 땅속 깊은 곳의 흙이다. 그들은 인생의 어떤 변화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숱한 시련을 겪으며 운명과 피를 섞은 원주민 노파들은 운명의 장난과 마주할 때마다 그것이 자매의 장난인양 너그러이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긴 풀이 초원을 내달리고 바람이 그 뒤를 쫓는다.

외로움에 지친 초원과 바람과 마음이 한데 어울려 노닌다.



아프리카로부터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야생과 불규칙성의 땅. 회녹색 땅 사이로 보이는 선명한 녹색. 커피 재배는 길고 지루한 일이다. 하지만 희망에 찬 농장주는 세찬 비를 맞으며 반짝이는 어린 커피나무 묘목이 든 상자들을 실어 오고 가려줄 빽빽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4~5년이 되어야 나무들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어떤 나무들은 원뿌리가 구부러져 꽃이 피자마자 바로 죽는다. 커피 농장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때가 있다. 우기가 시작되면서 커피나무에 꽃이 피면 6백 에이커가 넘는 땅 위에 안개와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마치 분필가루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듯한 화사한 광경이 연출된다. 커피 꽃은 블랙손 꽃처럼 쌉싸래한 향이 난다. 잘 익은 커피 열매가 밭을 붉게 물들이면 사람들은 모두 커피 열매를 땄고 우마차와 수레가 열매를 강 근처 공장으로 실어 날랐다. 대형 커피 건조기가 무쇠 배 속에 커피 열매를 담고 해변의 조약돌이 파도에 씻기는 듯한 소리를 내며 덜거덕덜거덕 돌아갔다. 어떤 때는 한밤 중에 열매껍질들 천지인 캄캄하고 넓은 공장에 등불이 무수히 걸리고 건조기를 둘러싼 열성적인 검은 얼굴들이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림 같은 장면이 펼쳐졌으며 공장이 마치 에티오피아인의 귀에 걸린 반짝이는 보석처럼 거대한 아프리카의 밤 한가운데에 빛을 발하며 걸려 있는 것 같았다. 건조된 커피 열매는 껍질을 벗기고 등급을 매기고 손으로 골라내는 작업을 거쳐 자루에 담는다. 그 모든 작업이 끝나면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에 커피 자루들을 우마차에 실었고 우마차 한 대당 열여섯 마리의 황소가 배치되어 공장이 있는 긴 언덕길을 올라 나이로비 기차역으로 갔다. 저녁이 되면 지친 황소들이 빈 우마차를 끌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터벅터벅 걸어왔다. 커피는 하루 이틀이면 배에 실려 바다를 건널 것이고 런던 경매 시장에서 행운이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비를 기다리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 만물의 색이 바랬으며 들판과 숲의 냄새도 사라졌다. 날이 갈수록 농장의 미래와 희망은 빛을 잃어버렸다. 농장 일은 속도가 느려지더니 결국 멈춰버렸다. 시들어 가는 열매를 전부 따내어 나무라도 살려야 할지, 그대로 두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서리가 내리는 추운 계절에는 커피나무의 새 가지와 그 위의 어린 열매가 모두 갈색으로 시들어있었다. 은공 지역은 비도 부족해서 세 차례나 극심한 가뭄을 겪었고 해마다 수확량은 바닥을 쳤다. 건조한 날씨와 초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커피나무가 시들고 잎은 노랗게 변했다. 언덕과 숲, 초원, 강, 바람까지 작별의 시간을 암시하고 있었다. 빛과 그림자가 은공 언덕의 풍경을 공유하고 있었다.

카렌 블릭센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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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수집가의 시간> 제3부 빨강의 흔적 : 커피가 위장에 들어가면 기억은 힘차게 뛰어오르고 글자들은 춤을 춘다. 부분


<날개>

데니스핀치해턴은 긴 탐험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말에 굶주려있었고 나 또한 농장에서 말에 굶주려 있었기에 둘이 식탁에 마주 않아 새벽이 올 때까지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실컷 웃고 떠들었다.


은고마

농장에서 열리는 대대적 사교행사는 원주민의 춤 잔치 은고마였다.
축제의 영광과 화려함은 진정한 공연자들인 지칠 줄 모르는 젊은 춤꾼들에게서 나왔다. 그들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자신들 안의 달콤함과 불꽃에만 집중했다. 그들이 외부 세계에 요구하는 건 단 하나, 춤을 출 수 있는 평평한 공간이었다. 은고마는 낮에도 밤에도 열렸다. 낮의 은고마는 잔디밭에 불에 탄 자리 같은 크고 작은 갈색 동그라미 모양의 흔적을 남겼는데 춤꾼들의 발에 짓밟혀 생긴 그 마법의 동그라미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밤의 은고마의 중심은 불이었다. 불은 춤추는 곳을 최고의 무대로 만들어 주고 그 안의 모든 색과 움직임을 하나로 통합해 주는 역할을 했다. 그들은 자연과 연결된 탯줄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듯했다. 보름달이 떴을 때만 은고마를 했다.


데니스 핀치해턴은 우리 농장 말고는 집이 없었다. 사파리를 나가지 않을 때에는 우리 집에 묵었고 책과 축음기고 우리 집에 보관했다. 그가 농장으로 돌아올 때면 농장은 자신이 지닌 매력을 발산했다. 우기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커피 플랜테이션이 자욱한 분필 가루 같은 꽃을 피우고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로 이야기하듯 농장도 말을 했다. 나는 데니스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의 차가 진입로를 달려 올라오는 소리가 들릴 때 농장의 모든 것이 일제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소리를 듣곤 했다. 데니스는 농장에서 행복하게 지냈고 스스로 오고 싶을 때만 농장에 왔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절대 하지 않았으며...

데니스는 귀에 의존하여 살았기에 책을 읽는 것보다 듣는 걸 좋아했으며 농장에 찾아와

이렇게 묻곤 했다. “이야기 들려줄 수 있어요?”

그래서 나는 그가 사파리를 나간 동안 이야기를 많이 지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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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고원 지대 새벽 공기 속에 있으면 차가움과 신선함이 손에 만져질 듯 생생하여 땅 위에 있는 것이 아니고 검고 깊은 물속에서, 바다 밑바닥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

다음날이 데니스의 생일이었는데 그는 저녁을 먹을 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별로 이룬 게 없다고 우울해했다. 나는 그의 생일 아침이 밝아오기 전에 근사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그를 위로했다.... 계속 사자들을 생각했다. 천천히 조용히 강을 건너고 강의 완만하고 차가운 물살이 사자들의 가슴과 옆구리를 돌아 흐르고 있을까?...

카렌브릭슨.jpg 카렌 블릭센과 데니스 핀치해턴 실제 모습

아프리카에서의 마지막 몇 개월을 돌아보면 풍경조차 나보다 훨씬 먼저 깨달은 듯하다. 언덕가 숲, 초원, 강, 바람까지 모두 우리의 작별을 알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운명과 타협하고 농장 매각에 나선 때부터 나를 대하는 풍경의 태도는 변했다. 그때까지 나는 그것이 일부여서 가뭄이 들면 내가 열병을 앓는 것 같았고 초원에 꽃이 피면 새 외투를 입은 듯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풍경은 내게서 분리되어 조금 물러서 있었고 나는 그것을 분명하게 그리고 전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언덕 지대의 무덤

데니스 핀치해턴은 사파리에서 돌아오면 우리 농장에 머물렀으나 내가 집을 처분하고 짐을 처리하자 나이로비에 있는 휴 마틴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나이로비에서 매일 농장으로 차를 몰고 와서 나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떠날 때가 가까워지자 가구를 팔기 시작했고 짐짝을 식탁과 의자 삼아 식사했다.

... 우리는 함께 있을 때 대개는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데니스는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미지의 힘을 끌어 모을 수 있음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내게 시 한 편을 들려주었다


그대의 슬픈 노래를 즐거운 가락으로 바꾸라

나는 연민이 아닌 쾌락을 위해 찾아갈 것이니..


데니스는 몸바사에서 북쪽으로 5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타가웅가만에 땅이 조금 있었다. 보잘것없는 첨탑하나, 비바람에 시달린 잿빛 돌로 된 우물. 늙은 망고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그 땅에 작은 집을 지어놓았다.... 내가 농장을 떠나야 한다는 말을 하자 해안가 타카 웅가네 있는 집을 쓰라고 했다. 내가 아프리카를 떠나던 해 5월에 일주일 간격으로 타카웅가에 내려가 더 큰 집을 짓고 망고나무도 더 심을 계획이었다. 데니스는 대단히 합리적인 인물임을 자처했지만 특별한 기분이나 예감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고 그런 감정에 빠져 며칠 혹은 일주일씩 침묵을 지키기도 했다.


...나는 그가 비행기로 아프리카 횡단을 시켜주기로 약속한 것을 상기시켰다... 내가 데니스에게 비행기를 태워달라고 했을 때 그가 거절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8일 금요일에 출발했다. 목요일에 돌아오겠어요. 당신과 점심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차를 몰고 나이로비의 비행장을 향해 출발해서 진입로를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내게 줬던 시집 한 권을 여행에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는 한 발을 자동차 발판에 올려놓고 한 손으로 책의 시 한 편을 짚었다.


<여기 당싱의 회색기러기들이 있어요> 그가 시를 읽어주었다.

평원 위로 날아가는 회색기러기들을 보았네

높은 공중에서 약동하며

지평선에서 지평선으로 흔들림 없이 나는 야생 기러기들

목구멍에서 빳빳이 굳은 기러기들의 영혼

기러기들이 거대한 하늘을 회백색 리본으로 장식하고

태양의 수레바퀴가 주름진 언덕들 위에 걸려 있었네.

그러곤 손을 흔들며 영원히 떠나버렸다.


나중에 나이로비에서 파라를 만나 아야기를 나누면서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1백 루피를 준다고 했어도 그때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거예요.”

데니스 자신이 은공에서의 마지막 며칠 동안 예감했던 운명의 그림자가 원주민 청년에게는 더욱 분명하게 보였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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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이 되자 데니스가 보이에서 헤 뜰 무렵에 출발하여 은공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릴 거라는 계산으로 그를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는 오지 않았다.

...

비행기가 60미터 고도로 낮게 날면서 바로 되돌아왔다. 흔들리더니 급강하하는 새처럼 떨어졌다. 땅에 떨어지면서 불길에 휩싸였고 데니스와 하인 카마우는 이미 죽어있었다.


문득 데니스가 은공 언덕에 묻히고 싶어 했던 걸 떠올렸다.

은공 언덕의 야생 동물 보호 구역 내에 있는 첫 번째 산등성이에 내가 아프리카에서 살다가 죽으리라 생각했던 시절, 데니스에게 내가 묻힐 곳이라 말했던 장소가 있었다.

데니스도 자기도 그곳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우리들의 무덤..

전망이 탁 트여서 케냐산과 킬리만자로를 볼 수 있는 곳, 데니스는 오렌지를 먹으며 그곳에 머물고 싶다 했고 내가 묻힐 장소는 좀 더 위쪽에 있었다. 나는 내일이면 저 집으로 돌아가겠지..

이른 오후 데니스를 실은 차가 나이로비를 출발하여 탕가니카로 사파리를 떠날 때 다니던 길을 따라 젖은 도로를 천천히 달려왔다. 가파른 길에서 좁다란 관을 사람들이 들고 올라왔다.

관이 무덤에 도착하자 풍경은 그 자신을 고요한 관을 위한 배경으로 탈바꿈했다.

우리는 거대한 풍경 속 보잘것없이 작은 구경꾼들이 되어버렸다.

데니스는 아프리카 고원 지대가 돌아가는 모든 방식을 지켜보고 그것을 따랐기에 그 어떤 백인보다 토양과 계절, 식물, 야생동물, 바람과 냄새에 대해 잘 알았다. 밤의 별들. 사람..

바로 얼마 전에도 오후의 따가운 햇살 아래 모자도 쓰지 않고 쌍안경을 쓰고 언덕지대를 둘러보았다. 아프리카를 눈과 마음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개성에 맞게 변화시켜 자신의 일부로 만들었다. 이젠 아프리카가 그를 받아들이고 변화시켜 자신의 일부로 만들 작정이었다.



자주 차를 몰고 데니스의 무덤을 찾았다. 데니스의 무덤은 집보다 3백 미터쯤 고도가 놏아서 공기가 달랐다. 공기가 유리잔 속 물처럼 맑았다. 원주민들이 <아메리카니>라고 부르는 흰 천을 1미터 정도 사서 높은기둥을 박고 고정했다. 우리 집에서도 정확히 무덤 위치를 알 수 있게... 마치 초록언덕의 흰 점처럼 보였다.

휴 마틴은 데니스에게 어울리는 묘비명을 말해주었다.

‘나 죽어 불길이 내 시신을 덮는다 해도 상관없으리, 나 이제 모든 것이 평안하리니’


아프리카를 떠난 후 데니스의 무덤 근처에서 이상한 일이 목격되었다는 구스타브 모로의 편지를 받았다. 그의 편지 내용은

‘ 마사이족이 은공 판무관에게 보고하기를 일출과 일몰 때 핀치해턴의 무덤가에서 사자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합니다. 암수 두 마리가 무덤에 찾아와 오래도록 서 있거나 누워 있었다는군요. "


작별

아프리카에서 내가 할 일은 모두 끝났으니 이제 떠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장의 커피 수확도 끝나고 커피 공장은 멈춰 섰고 집은 텅 비었고 소작농들도 새 터전을 얻었다.

애초에 내 계획은 사소한 것은 모두 포기하고 아주 중요한 것만 지키자는 것이었지만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내 인생에 대한 일종이 몸값으로 소유물을 하나씩 버리는 것에 동의했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자 나 자신이 운명이 버릴 것 중에서 가장 가벼운 것이 되어있었다...


인근 노인들이 나를 위해 은고마를 열기로 했다.

노장들의 은고마 장소가 되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정부가 은고마를 금지했는데 키쿠유족은 금지 명령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강행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농장에 도착한 늙은 춤꾼들이 연출한 광경은 진기하고도 숭고했다. 백여 명의 늙은 춤꾼들

비뚤어진 사지를 따라 이어진 분필로 그린 줄무늬들이 살가죽 밑의 뻣뻣하고 연약한 뼈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서 있노라니 떠나는 건 내가 아닌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내겐 아프리카를 떠날 힘이 없으며 아프리카 자체가 마치 썰물처럼 서서히, 장중하게 내게서 물러나는 듯했다. 이곳을 지나고 있는 행렬은 사실 어제의 강하고 유연하고 젊은 춤꾼들로 그들은 내 눈앞에서 시들며 영원한 행렬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춤을 추며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있었고 나는 만족감에 젖어 그들과 함께 있었다.


춤꾼들이 대형을 이루어 막 춤을 시작하려는 찰나 나이로비에서 온 원주민 병사가 은고마 금지 편지를 건넸다.

키쿠유족 노인들은 늙은 양 떼처럼 서서 주름진 눈꺼풀 밑의 눈을 내 얼굴에 박고 있었다. 그들은 춤을 추러 왔기에 춤을 추어야만 했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의 은고마가 끝났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들은 은고마가 완전히 끝났음을 즉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삼부루 역에서 기차가 엔진에 물을 넣느라 정차하자 나는 기차에서 내려 파라와 함께 풀랫폼을 걸었다. 그곳에서 남서쪽으로 은공 언덕이 보였다. 온통 푸르른 풍경 속에서 주위의 평평한 땅 위로 은공 산이 장엄하게 솟아 있었다. 그러나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네 봉우리는 거의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미미한 것이 농장에서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거리의 손이 산의 윤곽을 서서히 평평하고 반드럽게 다듬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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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소유자가 아니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지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

아프리카 은공 언덕에 터를 잡은 카렌... 그녀가 브로르 남작부인이 되어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처음엔 그녀도 유럽인의 시각으로 가르치고 싶어 했고 소유하고 그 소유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그렇게 쉬운 대상이 아니었다.

소유할 수 없는 존재, 소유당하지 않는 존재

그 자체의 리듬과 그 자체의 숙명과 운명이 있는...... 낮과 밤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은고마를 추기 위해 24km을 걸어온다. 동그란 원을 그리고 대지 위에 존재위 발자국을 남긴다.


데니슨은 아프리카를 알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소유할 수 없는 곳임을.

그는 아프리카를 자기 안에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

대지의 일부, 그에게 카렌도 아프리카와 마찬가지였기에 ’ 결혼‘이라는 굴레로 서로를 가두고 싶지 않았다.

가장 그 다운 죽음이었으며 가장 그 다운 작별의 방식이었다.

아프리카의 창공에서 활공하는 새가 아프리카의 대지로 추락하는 것처럼

그리고 마침내 케냐와 킬리만자로 산이 보이는 곳에 누웠다.

카렌이 떠난 뒤 그의 무덤은 점점 평평해져서 사자들의 휴식처가 되었고

진정으로 아프리카의 대지로 스며들었다.


‘나 죽어 불길이 내 시신을 덮는다 해도 상관없으리, 나 이제 모든 것이 평안하리니’

시드니 폴락 감독의 영화는 모차르트의 음악과 메릴스트립, 로버트 레드포드의 연기가 어우러져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카렌브릭센의 원작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영화의 ‘결’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영화가 압도적 영상미, 러브스토리를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소설은 담백하고 잔잔하다. 마치 입안에 소중한 것들을 담아두고 있다가 어쩔 수 없이 하나씩 고백하는 것처럼... 17년 동안 대지의 뜨거운 심장 같은 아프리카에서 살아온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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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가진 채로 시작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잃었다. 데니스와 커피농장과. 이혼, 경제.. 질병... 그러나 한편 그녀는 아프리카를 얻었디.

은공 언덕 고원 지대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여기 내가 있다. 내가 있어야만 하는 곳에”라는 생각을 했듯

나이로비의 은고마 금지령애도 불구하고

떠나는 카렌을 위해 100여 명의 늙은 춤꿈들이 은고마를 하기 위해 느릿느릿 모여든다

춤을 추기 위해선 걷는 에너지까지 아껴두어야 할 그들..

그들의 느린 걸음, 그들이 춤을 추기 위한 대형을 이룰 때 은고마는 중지된다.

작별의식이면서..... 진심 어린 환대 같은 늙은 춤꾼들의 은고마.


아프리카로부터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것이 분명하다

가장 뜨거운 근원. 이글거림, 끝없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원초적 태생적 리듬감...

암사자와 수사자의 나른한 휴식... 데니스가 카렌의 엉겨 붙은 머리를 감겨둘 때... 흐르던 음악 모차르트의 클라리넷협주곡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아있다.

“여기 내가 있다. 내가 있어야만 하는 곳에”라는 카렌의 말이...

내게도 적용되는 것일까?

과연 나는 내가 있어야만 하는 곳에 있는 것인가?

묻고 싶은 밤... 8월 중순.. 귀뚜라미 소리 도드라지는 밤이다.


“나는 열심히 책을 읽으며 기술을 연마하고 롹실성을 얻어갔다. 나는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헤엄치는 것처럼 읽었다. 그리고 그렇게 글을 썼다. ”

메리 올리버의 말이다.

메리 올리버의 이 문구를 보면서 카렌 블릭센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지 않기 위해 헤어 치듯 읽고 썼을 그녀를

그녀가 두고 온 아프리카를...

그리고 그녀 생의 전부였으며

그녀 생의 가장 거대한 책이었을 아프리카를.../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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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 2022

2022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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