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간 곳은 강원도 제천에 있는 소나무 농원이었다. 첫 번째 양계농장도 농촌이라면 농촌이었지만 경기도 남양주다 보니 좀 느낌이 덜했었다.
농장을 갈 때에도 경의 중앙선을 타고 갔었고 동네를 걷다 보면 서울 가는 표지판들이 곧잘 보였다. 한 번은 편의점에 갔다가 버스를 잘못 탔는데 서울로 가는 버스였다. 갈아타기도 귀찮고 이대로 서울 가서 친구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올까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새마을 호를 타고 강원도 제천까지 오니 확실히 멀리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막연히 춥겠거니 하긴 했지만 4월에 내리는 눈을 직접 보는 것은 색다른 실감을 들게 하였다. 강원도구나! 싶었다.
강원도의 풍경은 예뻤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일상 중에서도 여러 풍경들을 맛볼 수 있었다. 강아지의 속내를 알 수 없지만 강아지도 나도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강원도의 사투리는 귀여웠다. 호스트님이 전화로 “여보세요”라고 할 때의 강원도 사투리 톤이 참 좋았다. 대중문화 상에서 희화화된 강원도 사투리와 비슷하긴 했지만 분명히 달랐다. 느렸지만 어눌하지 않았고 높지 않지만 산뜻했다.
그 느낌이 좋아 따라 하고 싶었지만 대중문화를 통해 익숙해져 버린 모지란 느낌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실제의 강원도 사투리 이전에 가짜 사투리를 접한 게 참 아쉽게 느껴졌었다.
강원도의 매력과 더불어 눈뜨게 된 것은 나물의 매력이었다. 지내는 동안 참 잘 먹으며 지냈다. 호스트님께서는 삼시 세 끼를 아주 정성껏 준비해주셨다. 호스트님은 요리를 잘하시는 분이셨다. 좋은 재료와 좋은 솜씨가 만나니 참 맛있었다.
강원도의 여러 초봄 산나물들을 매일 같이 맛있게 먹었다. 원래도 나물을 잘 먹긴 했지만 먹을 기회가 흔하지 않다 보니 잘 모르고 그냥 대강대강 먹었었다. 그런데 이 곳에서 매일 맛있게 먹다 보니 새삼 내가 이렇게 잘 먹으면서도 이 나물들의 이름을 잘 모른다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호스트님께 몇 번씩 설명을 들어도 까먹긴 했지만 나름대로는 나물을 좀 더 알려고 노력하면서 먹었다.
호스트님께서 강원도 장떡도 만들어주시기고 했는데 이것도 굉장히 맛있었다.
강원도의 매력, 나물의 매력은 엄청나게 특별한 건 아니었지만 내 일상을 풍성하고 즐겁게 해주는 것들이었다. 우프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인인 나는 그렇게 잘 지냈지만,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우프를 하는 건 아무래도 신기했다. 우프를 하기 전에 가졌던 의구심 중 하나가 ‘뭐 하는 사람들이 우프를 하는 걸까?’였다. 농사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우프를 알게 된 나는 우프를 농사의 관점에서만 보았었다. 이 플랫폼이 유지 가능할 정도로 농사일에 관심 있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가?
양계 농장에서 지낼 때 한 번은 점심시간에 동네 어르신이 한 분 오셔서 같이 밥을 먹었다. 평범하게 얘기를 나누던 중에 갑자기 그분이 내게
“한국말 잘하네”라고 하셨다.
무슨 말이지 싶어 순간 황당했다가 곧 “동남아인 같이 생겼다”와 같은 류의 인종차별주의적, 외모 차별주의적인 속 뜻이 담겨 있는 농담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덤벼들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었다. 이제까지 우프를 통해 이 농장에 온 사람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보니, 한국인이 거의 없었다 보니 나 또한 으레 외국인이겠거니 짐작하신 것이었다.
이상한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다른 의문이 남았다. 나는 한국 우프에는 당연히 한국인들이 많은 줄 알았다.
그런데 주로 외국인들이 우프를 온다고? 뭐 하는 외국인들이 자기들 나라 농촌 두고 한국까지 와서 굳이 농촌에 구경 오려고 하는 거지.. 이 농장만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건가?
양계농장에서 지낼 때 만난 콜롬비아에서 온 우퍼는 평창 올림픽 때문에 업무 차 한국에 왔다가 한국에 관심이 생겨서 휴가를 좀 더 받아서 우프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우프를 하러 굳이 한국까지 오는 건 좀 이상하지만 한국 온 김에 우프 하는 건 그럭저럭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지만 휴가를 받아 굳이 우프를 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이 우퍼는 ‘콜롬비아에도 달래가 나면 좋으련만…’ 싶을 정도로 달래 간장을 매우 좋아했었는데, 이런 점을 보면 잘 찾아왔구나 싶기도 했다.)
새로 도착한 소나무 농장에는 프랑스인, 한국계 스위스인으로 2명의 외국인 우퍼가 있었다. 한국계 스위스인은 자신의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의 문화를 좀 더 배우기 위해 우프를 왔다고 했다. 프랑스인은 우프를 통해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각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새로 간 곳은 한국 우프 농장 중에서도 꽤 인기가 많은 곳이었는데 호스트님께서 말씀해주시기를 이 곳 역시도 찾아오는 우퍼의 대부분이 외국인이며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더 잘 알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어 오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뭐하는 사람들이 우프를 하는 거지?’라고 궁금해했던 내 시야가 꽤 좁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프를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소위 말하는 현지인들과 가까워지는 여행, 현지의 문화를 익힐 수 있는 여행, 혹은 큰 금액을 들이지 않는 여행의 방법이 되는 것 것 같기도 했다.
이 점을 감안해도 이 곳에서 만난 프랑스인 우퍼는 참 신기했다. 한국계 스위스인은 한국과 접점이 있기도 하고 한국말을 약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프랑스인은 별 다른 접점도 없고 한국말도 전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영어조차도 못 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한국, 그중에서도 서울이나 부산도 아닌 강원도 제천까지 찾아왔었다.
문화에 대한 관심이라는 동력은 어떠한 것이길래 그로 하여금 이렇게 먼 나라의 시골까지 찾아오게 했을까? 외국 문화에 크게 관심을 가져 본일이 없는 나로서는 참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눈 앞의 이 친구뿐만 아니라 이렇게 한국의 농촌까지 찾아올 열정이 있는 외국인들이, 우프라는 플랫폼이 유지되는데 유의미하게 영향을 끼칠 정도로 있다는 게 꽤 신기하게 느껴졌다. 국뽕은 경계해야겠지만 내 생각보다도 한국에는 어느 정도의 매력이 있는 걸까?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달리 보면 호스트님 부부도 신기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우퍼를 어떻게 어떻게 잘 챙기셨다. 사실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프랑스 우퍼를 처음 보았을 때 좀 걱정 아닌 걱정이 들었다. 저렇게까지 한 마디도 못하면 무엇보다도 스스로도 답답하고 아쉽지 않을까? 무엇을 배워갈 수 있을까?
호스트님 부부께서 말씀해 주시길 이렇게 외국인 우퍼들이 이렇게 한국어를 못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대부분 잘 지냈으며 개중에는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다시 이 곳으로 찾아오거나 가끔 우편으로 선물을 보내오는 우퍼도 있다고 하셨다. 택배로 받은 선물들을 보여주시기도 했다. 따뜻해지는 얘기이기도 했지만 불가사의하기도 했다. 말이 안 통하는데 어떻게..?
내 의문들은 머릿속 의문일 뿐이었지만 실재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잘 지내고 있었다. 프랑스 우퍼도 잘 지내고 있었고 이전에 왔던 사람들도 호스트님과 좋은 관계를 맺었다.
이 곳에 오기 전에 첫 우프를 경험할 때에 과분하다고 느껴지는 호스트님의 호의를 받으며 어쩔 줄 모르다가 호스트님의 인간을 대하는 기본적인 마음이 나와는 다르다는 해답을 떠올렸었다.
이 곳에서 말이 안 통하면서도 잘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비슷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와는 관계 맺음의 양상이 다른 걸까?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에 말이 통한다는 건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닌 걸까.. 굳이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마음은 잘 전달되고 이어질 수 있는 걸까..?
이런저런 것들을 떠올리다가 농사일을 배우려고 우프를 시작한 것이었는데 참 별 간지러운 생각 다 하게 된다 싶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