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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헉죄송 Feb 04. 2020

제멋대로 자연농법 체험기 -1

우프코리아, 우프, GG_129

나는 갈등, 대립 상황에 굉장히 약하다. 싸움은 물론이거니와 토론도 잘 못한다. 상황이 격렬해지면 뭔가 꾸물 꿈틀 하는 감정이 속에서 차오르고, 가끔은 눈물도 나와버리고, 당황해버리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그보다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갈등, 대립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태도,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세우고 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을 잘 못한다.


'이 입장이 맞을까?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긴 하지만, 이 근거는 확실한 것일까? 근거로부터 전개되는 내 논리는 옳은 걸까? 다른 입장들도 옳아 보이는데... 아무것도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생각이 전개되어버린다. 조금 다른 얘기이지만, 화가 나거나 섭섭함을 느낄 때에도 '내가 이 감정을 느끼는 게 타당한 일일까? 그럴 자격이 있을까? 화나거나 섭섭해도 되는 걸까?'라는 식으로 생각해버리기도 한다.


현대의 농업은 '석유 농업'이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농기계의 사용뿐만 아니라 비닐하우스의 유지, 농약과 비료 생산, 농산물의 포장 및 운반 등 현대 농업의 전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석유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유기농 또한 '석유 농업'의 굴레로부터, 달리 말하자면 화학 연료의 사용이 초래하는 환경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후,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하단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해 무언가 행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너무 멀리(?) 가고 싶지는 않았었다. 내 삶을 너무 불편하게 영위하면서까지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싶지는 않았다. 잘 모르기도 했지만 솔직한 마음이 그랬다. 그래서 '적당히 유기농사를 지으면 환경이 보호되는 걸까..?'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 내게 석유 농업이라는 개념은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면서 살 수 있다는 거야?!'라는 짜증에 가까운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이 맥락에서 다양한 농사를 탐색하던 중 '자연 농업'이라는 것을 접하게 됐었다. '자연 농업'은 유기농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내가 관심을 가졌던 건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주창하고 발전시킨 '자연 농업'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을 통해 '자연 농업'에 대해 알아보았었는데, 사실 당시에 읽을 때에도 구체적인 농업과정에 대해서는 거의 이해를 못했었고 지금도 거의 기억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내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책은 본격적으로 자연 농업을 설명하기 이전에 현대의 기술, 에너지 과다 투입 농업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시작되는데, 특히나 저자는

'인간의 지식으로 자연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고, 인간의 기술로 자연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현대 농업의 근본적 사고방식을 비판하며 이를 "인간 제까짓 것들이 무얼 안다고"라는 매서운 한 마디로 일갈하고 있었다.


"인간 제까짓 것들이 무얼 안다고" 이 짧은 말이 너무 좋았다. 다른 내용 다 몰라도 이 문구 하나만으로도 이 책이 좋아졌었다. 독서를 하다가 특정 문구가 좋아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좀 달랐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생각보다 꽤나 권위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현대의 노자'라고도 불리고 있었으며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그의 농업, 철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인간 제까짓 것들이 무얼 안다고"는 사실 내용 상으로는 그렇게 특별한 문구는 아니었다. 나름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중고등학생 시절 일기를 찾아보면 이러한 내용의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내게 이 문구가 그렇게도 좋았던 것은, 권위가 있는 사람이 해주었기에 좋은 것이었다. 그런 말을 해'주'었다? 묘한 표현이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말을 했을 뿐이다. 말을 받은 것은 내 마음이었다.


"인간 제까짓 것들이 무얼 안다고"라는 짧은 말은 카타르시스를 낳는 동시에, 그 희열은 나 자신의 모순을 까발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아무런 입장이 없다고 스스로를 생각했지만, 그러는 중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분명히 견지하고 있는 입장이 있었다.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다면 그 어떠한 가치평가도 유보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견지하고 있는 입장이 있었다'는 표현은 사실 싸구려 포장이다. 대책 없이 그냥 띠껍게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런 사람들은 틀렸어'하는 마음이 있었다.


토론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모습들은 양면적이다. 당당함 혹은 오만함, 확신 혹은 아집, 상대 의견에 대한 반박 혹은 몰이해, 겸손 혹은 위선.

이 양면성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알지만, 가끔씩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이 후자 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들, 자신의 입장, 자신의 이성과 지식에 엄청난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 내 입장에서는 목이 참 뻣뻣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었다.


"인간 제까짓 것들이 무얼 안다고"를 그렇게나 좋아했던 마음은, 구체적으로는 우리 편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과 같은 것이었다.
무언가를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고까워했지만, 스스로의 얕음을 알기에 그냥 쭈그려있기만 했던 나에게 발화자의 권위로부터 비롯되는 든든한 이성적, 논리적(?) 버팀목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었다.


그러했다. 내게 자연농법이란 것은 그렇게만 남았었다. 아무래도 구체적인 농사 과정을 잘 모르고서는 문구 하나 만을 좋아한 것 가지고서는 자연농법에 잘 관심이 가지 않았다. 나는 자연 농법이란 개념을 그렇게만 소비하고 말았다.


한참 듸 우프를 통해서야, GG_129를 통해서야, "인간 제까짓 것들이 무얼 안다고"에서 그치지 않고, 그로부터 저자가 진정 말하고자 했던 바, 자연 농법의 진면목을 조금이나마 살필 수 있었다. 스스로의 일천함을 책망하는 게 가장 우선이어야 할 테지만, 책을 잘 못 읽는 건 안 읽는 것만 못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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