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척을 하는 사람들의 말과 글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의 말과 글을 피하고, 개인적인 실천에 집중하고자 한다]
라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지만, 그렇다면 내 생각, 내 말과 글은 어떨까?
실상 한 번 더 꼬아낸 잘난 척이지 않을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것 같지 않은데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일까? 내 속에서 사유로서 존재할 때에는 담백하던 것이 외부로 표현되는 순간, 잘난 척의 요소가 생겨나 버리는 것 아닐까? 이렇게 의식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내 생각과 마음속에는 잘난 척의 요소가 잠복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런저런 식으로 생각을 하다 보니..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나의 말과 글 또한 내가 미워한 말과 글과 마찬가지 일수 있었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괜한 얘기를 하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었지만 답답하기도 한 일이었다.
말과 글이란 게 정말 어렵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별 다른 노력은 하지 못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을 유려하게 쓰거나 말을 유창하게 하고 싶은 게 아닌 건 분명했는데, 그렇다면 말과 글을 어떻게 다루고 싶은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스스로도 모르니 고민을 해도 별 진전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입 다물고만 있자~'에 정체해 있던 중 우연히 접한 강원도 영월 호스트님의 '말 잘하는 사람과 잘 말하는 사람의 차이 아니겠어?'라는 말씀은 큰 영감이 되었다. 이윽고 이어진 GG_129에서의 우핑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스스로는 가능한 한 노력하되 그것을 타인에게는 강요하지 않으려 한다'
'일상적인 선택이 만들어내는 결과에 대해 고민해보는 삶을 살고 싶다. 누군가는 귀찮고 번거롭다고 여길 행동들과 원론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조금은 재미있게 일상과 엮어가며 살고 싶다.'
'땅을 파서 펜스를 꺼냈더니 세상에! 엄청난 크기의 달팽이 녀석들이 한가득 있었다. 죽일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농부 입장에서 보자면 달팽이 녀석들은 열심히 농사지은 작물을 말끔히 먹어 치우는 나쁜 녀석들이지만, 지구라는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보자면 분명 삶의 이유가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이건 핑계고 사실은 녀석들을 밟을 때 느껴지는 익숙지 않는 감촉과 소리가 싫은 것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우리가 농부로 살 수 있을까'에서 발췌
GG_129의 호스트 부부는 원래 도시에서 살다가 귀농귀촌을 한 경우였는데,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귀농귀촌을 하기 전까지의 기간에 유럽에서 공동체, 우프 등을 경험하였고 이를 '우리가 농부로 살 수 있을까'라는 책으로 쓰기도 했다.(http://naver.me/FwFIjVzi)
'우리가 농부로 살 수 있을까'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보다도 책 전체에서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가 흥미로운 책이었다. 자연환경, 먹거리에 관해 이전에 접했던 글들과 분명히 느낌이 달랐다. 무언가 유쾌하고, 따땃했다.
우프 덕분에 저자와의 대화를 넘어서 저자와의 생활(?)까지도 할 수 있었다. 그 이질감을 온 몸으로 느껴볼 수 있었다.
함께 생활하며 내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담백함'이었다. 호스트 부부의 생각은 굳이 따지자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바에 집중한다'라는 점에서는 내 생각과 비슷하긴 했다.
하지만 표현될 때의 느낌은 전혀 달랐다. 말에 부수적으로 딸려있는 게 없었다. 의심, 걱정, 짜증, 자의식 등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내 말과는 달랐다. 아주 담백하고 솔직했다.
귀농귀촌, 자연농법이라는 어려운 길을 걷고 있기에 현실적인 고민이 여러모로 많기도 했지만, 일상의 대화에서는 이따금씩 무언가 신선 같은 아우라가 뿜어 나오기도 했다. 묘한 편안함이 있는 신기한 사람들이었다. '자연환경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이런 느낌이 들 수 있다니!'
말은 어렵기도 했지만 잘 쓰인다면 즐겁기도 한 것이었다. GG_129에서 우프를 하는 동안 호스트 부부가 자아내는 색다르지만 편안한 분위기에 기대어 신나게 떠들었다. 자연환경에 대한 넓고 막연한 의문, 구체적인 실천에서 대한 생각,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 단순한 푸념 등 이전까지 다른 사람들과 잘 얘기 나누지 못했던 것을 열 내가며 떠들었다.
많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또한 인상 깊었던 것은 잘 듣는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리액션이 좋은 것과는 달리 말하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듣기였다.
재치라는 양념을 잘 쓰기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었다. 재치야 대화에서 흔히 발휘되는 것이지만 이 재치가 특히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중요한 얘기를 재미있게 하면서도 가볍게 하지 않는 재치였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는 나로서는 참 신기하고도 즐거운 것이었기에, 이런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호스트 부부의 언변(?)을 꼭 익히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이 점에서 우프는 참 유용했다. 담백함, 솔직함, 잘 듣는 것, 재치 등은 아주 중요하지만 우프를 통해 함께 생활하며 느낀 것은 좋은 말은 좋은 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호스트부부는자연환경과 관련해 그렇게 가볍지도무겁지도 않게 얘기를 했지만, 일상생활과 농사에서는 엄청 열심히 본인들이 할 수 있는 바를 실천하고 있었다. 이런(?)사람들을 실제로 접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좀 신기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런 실천들이 내가 느끼는 말의 아우라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았다. 잘 말하기 위해서는 말 이상의 것이 필요한 듯했다.
이렇게 말하면 분명 부담스러워할 테지만, GG_129에서의 우핑은 내게 있어 딱 알맞은 화술학원을 다닌 것과도 같았다. 많은 얘기를 나눈 것, 자연환경과 관련된 여러 실천들을 곁에서 지켜본 것, 함께 지낸 것은 막연하기만 했던 말과 글에 대한 마음, 잘 말한다는 것을 아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귀찮지만 해야지..!' 했던 이전에 비해 좀 더 순수한 마음으로 일상의 작은 실천들 -전등 끄고 스위치 뽑고-을 할 수 있었고, 죄책감으로 점철된 마음이 아닌,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이상을 바라볼 수 있는 자연환경을 대하는 새로운 마음을 익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