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헉죄송 Nov 24. 2019

만약 귀농을 하면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 -2

우프, 한국 우프, GW_111

대학에 다닐 때에 농업과 먹거리에 대한 관심의 일환으로 도시 중심부 DDP에서 열리는 농부 직거래 장터의 스태프 활동을 했었다.


사람들의 이동이 활발해지는 10시쯤에 장터의 개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당일날 꽤 일찍, 대략 7시에는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평소에 늦게 자고 늦게 깨는 나로서는 좀 힘든 시간대였다.

그 때에도 나도 나지만 농부분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겠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나는 시내버스 타고 내 몸만 챙겨 오면 되지만 농부분들은 지방에서 서울로, 판매할 물건들과 냉장 시설 같은 장비까지 준비해서 오셔야 하니까.. 마치고 난 뒤에도 물건들 정리해서 다시 지방으로 가셔야 하고..

GW_111에서의 우핑은 귀농귀촌과 관련해 정말 공부가 많이 되었다. 호스트님 부부는 서울의 직거래 장터에도 나가셨기에

'힘들어 보인다..'라고 생각했던 일을 나도 직접 하게 되었다. 실제로도 참 힘든 일이었다.

판매할 물품들과 필요한 장비들을 전날부터 준비해서 차에 싣고,새벽에 출발해서,

서울에 도착하고 장사 시작.

마치고 나서 짐 정리를 하면 대략 8~9시,

그제서야 서울에서 철원으로 출발...


새까만 한밤 중에 돌아올 때의 기분은 참 묘했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 밖에서 일을 했구나...'

배려해 주신 덕분에 나는 그다음 날을 쉴 수 있었는데, 호스트님 부부는 그다음 날도 조금 쉬고 일하셨다. 그 고됨을 헤아리며 돕고 싶었으나.....

직거래 장터가 철원에도 있기는 있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에 가면 확실히 부담은 덜 했다. 하지만 서울에 비해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었고, 매출도 적었다.


굳이 서울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각 지역에 직거래 장터가 좀 더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대대적인 인구 이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일자리가 전국에 고르게 퍼져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장터 활동은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많이 피곤한 일이었다. 귀엽게 받아줄 수 있는 흥정도 있었지만 아주 짜증 나게 구는 흥정들이 많았다.

'비싸다고 느껴지면 그냥 저기 슈퍼마켓 가시지 왜 굳이 여기서 난리지..?' 싶었다.

이전의 경험을 통해 우프라는 제도가 그렇게까지 이상한 제도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긴 했으나 GW_111의 호스트님을 처음 만날 때에는 다시금 긴장이 되었었다.


첫날, 터미널에서 호스트님을 뵙고 차를 얻어 타 농장에 가는데 그 거리가 꽤 되었다. 그러다 보니 첫날부터 제법 많은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중 '호스트 소개에서 읽었던 김치, 두부 만드시는 일이 흥미롭다'며 꺼낸 얘기에 호스트님이 운전하면서 가볍게 답하신 내용들이 참 좋았다.

[좋은 김치와 두부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너무 비싸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많은 사람이 좋은 음식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내 마음이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라 나와 우리 가족이 좋은 음식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가격을 정한다는 게 참 쉽지 않다, 비싸게 하고 싶지 않지만 좋은 재료를 쓰다 보면 어느 정도의 가격이 나갈 수밖에 없으니까...


가끔 고민 끝에 가격을 저렴하게 했을 때 이상한 재료를 쓰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화가 나기도 했지만 많은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쓰럽기도 했다]

이러한 어느 정도의 신념, 어느 정도의 고민이 고루 섞여 있는 이야기가 참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좋은 분이다!' 싶어 첫날부터 긴장이 확 풀렸었다.

장터에서도 '이 가격이 적당한 걸까? 이 재료를 쓴 게 적당한 걸까? 이 가격에는 나의 욕심이 담겨 있는 걸까?'라는 고민을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랬기에 가격을 후려치려고 드는 사람들에 더욱 예민해지고 짜증이 많이 났다. 저 사람들에게 있어 호스트님의 고민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그냥 적당히 달달하게 싸게 많이 파는 게 서로 좋은 걸까?

농부님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농부가 좀 더 '시장적'(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제일의 목적으로 삼는 성질)이지 못하는 것이 직거래 장터의 매력이자 한계 같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상황에서의 과잉 해석일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하는 시식 권유에 마치 자신이 손님이라는 게 엄청난 계급이라도 되는 냥 도도하게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을 경험하는 것도 심적으로 힘들었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나의 시식 권유가 귀찮고 불편할 수도 있었겠지만.. 서비스업이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물론 힘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니지만 맛있다고 말씀해주시는 손님들을 보는 건 참 좋았다. 재구매하실 때에는 완전 기분 째졌다. 아주 멋진 분을 뵙기도 했다. 지금도 그분의 이미지가 선명하다. 백발의 어르신이었는데 나의 시식 권유를 아주 정중하고 고급스럽게 거절하셨다. 거절을 당하고 있음에도 제스처와 목소리가 아주 빛나게 느껴졌다. 나도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의 손님이 되어 거절하게 될 때에 저렇게 거절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좋은 일이 있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로서는 힘든 일이 더 크게 느껴졌다. 변명을 덧붙이자면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농사일이 더 재미있고 보람차다고 느껴졌다. 장사 일에도 그 나름의 보람이 있었으나 이를 위해 지불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6차 산업이라는 게, 새삼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내는 동안 어이없는 일을 보기도 했다. GW_111에서는 캠핑 및 농가 민박을 준비하고 계셨는데, (우퍼는 그중 비어있는 방을 사용했기에 아주 좋은 시설에서 머물 수 있기도 했다.) 민박 시설은 다 준비가 되어있고 정원을 꾸미고자 해서 컨설팅 업체에 의뢰를 하셨다.


그런데 업체가 받은 돈에 비해 너무도 형편없이 일을 해놓고서는 나 몰라라 했다. 나도 정원을 보고서는 '그 돈 받고 이따위로 했다고..?' 싶었다. 그 이후에 보상을 받으셨는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떻든 간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업체와의 지난한 분쟁이 있었을 것이다.

본래 자신의 영역이 아닌 2, 3차 산업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전문가와의 협업을 필요로 하는데, 제대로 된 전문가를 만나지 못하면 피해가 크겠다는 걸 생각할 수 있었다. 피해를 입더라도 '자영업'이라는 이름 아래에 책임도 본인이 질 수밖에 없고..

GW_111에서의 경험은 귀농 이후의 삶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내가 귀농귀촌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다지 현실적인 고려는 그다지 하지 않고 있을 새삼 깨닫게 해 주었다.

지금은 생계가 직접 걸려 있는 게 아니니까 '농사만 짓고 싶어!!'와 같은 무책임한 소리를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뛰어든다면 그럴 수 없을 텐데.. 다양한 일을 해야만 할 텐데..

다양한 일을 한다는 걸 굳이 따지지 않아도 GW_111의 호스트님 부부는 그냥 일하시는 양 자체가 많기도 했다. 나는 저만큼이나 성실할 수 있을까..?

GW_111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것 중 하나가 두 따님을 포함한 가족 분들 간의 사이가 굉장히 화목한 것이었다. 참 아름답게 보이면서도 내게는 또 다른 요원한 경지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엄청 열심히 일하면서도 가족 간에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애초에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에 더해 원주민이 아닌 귀농인으로서 겪는 고충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것도 참 어려운 문제였다..

'농촌에서 먹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의 고민을 안고, 내게 가능하리라고 여겨지는 답을 찾아 다른 농장으로 떠났다. 호스트님 부부께서는 신경을 써주셔서 부산 본가로 GW_111의 여러 맛있는 먹거리들을 보내주셨다. 부모님이 엄청 좋아하셨다. 내 차비를 챙겨주시기도 했다. 참 성실하고 따뜻한 분들이셨다.

작가의 이전글 만약 귀농을 하면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