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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헉죄송 Sep 30. 2019

강아지를 사랑하는 일, 강아지한테 삐져버리는 나.

우프, 한국 우프 GG_105

처음에는 GG_105에 2주간 머무는 것으로 신청을 했었다. 우프 제도에 대한 의심도 있었고, 농사일의 시간 감각을 잘 모르기도 했다. 그리고 2주가 다 되어 갈 때쯤, 3주 더 있기로 결정했다.

실제로 지내고 보니 GG_105는 너무 좋은 곳이었고, 2주라는 시간을 통해서는 농사일을 배우기는커녕 계란걷을 때의 마음을 약간 익혔을 뿐이었다. 손과 발은 여전히 형편없었다.

손과 발로 알 걷는 속도가 양 선생님에 비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렸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양 선생님도 나도 각각 육신은 하나인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지..?'

어쨌든, 이때의 나는 정말 진지하게 농사일을 익히고 싶었기에, 농사일은 철학과 마음뿐만 아니라 '몸'을 쓰는 '생산' 활동의 측면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일을 좀 더 몸으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더 지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지내기로 결정하는 데 중요했던 요소는 일 욕심뿐만이 아니었다. 농장의 사람들한테도, 농장 주변의 풍경에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아지들한테 많이 정이 들어있었다. 길산이, 콩이랑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다.

도시에 살 때 자취방 근처에 성북천이라는 잘 정비되어있는 산책로가 있었다. 여기서 산책을 하다 보면 주인 분과 함께 산책 나온 귀여운 강아지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귀여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었다.

지금은 정확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사랑은 불타오르는 감정이 아니라 관심, 관심으로부터 비롯된 지식, 관심과 지식을 기반으로 둔 책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는 내용을 인상 깊게 읽었었다. 그러다 보니 귀여운 강아지들을 보아도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 강아지를 귀여워할 수 있겠는가? 단순히 더 크고 힘센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 한 가지? 나는 이 강아지에게 아무런 지식, 관심, 책임이 없다. 함부로 귀여워해서는 안 될 일이다.. 강아지들도 자신을 함부로 귀여워하면 인간처럼 티를 내지 못할 뿐 기분 더럽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하였었다.

계속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귀여운 강아지들을 보면 잠깐 눈이 가긴 해도 그 이상의 관심이 들지는 않았었다. 강아지를 대하는 마음이 무덤덤했었다. 강아지와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 강아지들한테 말을 거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마음이 많이 있겠거니 싶으면서도 좀 엉뚱하게 느껴졌었다.

그랬던 내가, GG_105에 와서는 강아지들에게 말을 걸고, 나아가서는 강아지들이 긁어달라고 배를 내밀면 배를 키보드 삼아 메시지를 입력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농장에는 3마리의 강아지가 있었다. 그중 '길산'이라는 강아지는 머리가 굉장히 좋아서 농장의 경계를 확실히 알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며, 닭을 괴롭히지도 않고 뒷산에서 오는 야생 동물을 경계하기도 했기에 풀어놓고 길렀다. 까만 강아지 '콩'이와 지금은 이름을 까먹은 하얀 강아지 두 마리는 닭을 괴롭히거나 농장 밖으로 뛰쳐나가 버리기에 묶어놓고 길렀다.

처음에는 얘들을 보면서 별 생각을 안 했었다. 다만 매일 밥을 챙겨주고, 묶여 있는 강아지들을 산책시켜주면 좋아하기에 산책을 시켜주었다. 그러다 보니 얘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관계 맺음에 있어서 아주 근심 걱정 많은 성격이었기에 처음에는

'좋아해 주는 게 맞을까..? 얘들은 그냥 밥 주고 산책해주는 사람한테 적당히 만족할 뿐인데 내가 착각하는 건가..? 아니 근데 길산이는 나한테 왜 다가오는 거지..? 쓰다듬어도 되겠니? 쓰다듬으면 기분 나쁜데 억지로 참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했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약간 다르지만 사람 앞에서 곧잘 위축되었을 때와 비슷한 종류의 생각이었다. 오랫동안 깊어져 온 낮은 자존감의 발현이었다.

나에게 잘 다가와주었던 길산이



같이 지낸다는 것, 잘 표현한다는 것 참 대단한 일인 것 같다. 도시에서 살 때는 사람들 앞에서 위축되고 그럴 때는 그냥 집 안에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쾌적한 일이었다. 그런데 농장에서 매일 같이 있다 보니, 매일 밥 주고 산책하고, 길산이가 나한테 계속 다가와주고 하다 보니 특별한 계기 없이도 자연스럽게 소심한 생각을 줄여나갈 수 있었다. 좋은 마음으로 시간을 함께 지낼 수 있었다. 그냥 내가 좋은가보다, 적어도 거슬리지는 않나보다라고 편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물론 어려운 일도 많았다. 길산이랑은 잘 지냈지만 콩이랑 잘 지내는 건 꽤 힘들었다. 닭이랑은 완전 다른 어려움이었다.


나는 모르는 것도 너무 많았고 속도 좁았다. 콩이와 산책을 하다 보면 콩이가 갑자기 흥분해서 방향을 틀어 달려 나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예전에 운동을 하다가 팔꿈치를 심하게 다친 적이 있었기에, 이럴 때에는 목줄을 잡고 있던 팔의 팔꿈치가 많이 아팠다. 그리고 너무 흥분해서 달려 나갈 때는 낡은 목끈이 풀려버리는 때도 있었다. 그러면 농장 밖으로까지 나가버렸기에 아주 큰 일이었다. 엄청 쫓아가고 나서야 간신히 잡아 올 수 있었다.

 

팔꿈치도 아프고, 몸도 피곤하다 보면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콩이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다가도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았고, 묶여 있느라 너무도 답답했을  강아지한테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싶었다. 길산이만큼 머리가 좋으면 편했을 텐데 싶다가도 이런 식으로 비교를 하는 건 너무 나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삐짐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속상하긴 속상했다. 사실 누가 나한테 하라고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힘들면 안 하면 되는 건데 왜 스스로가 이렇게 유난을 떨고 있는가 싶기도 했다.

괴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묶여 있던 콩이가 산책할 때 흥분해서 달리는 걸 보면 '얼마나 달리고 싶었으면...' 해서 마음이 안 좋았다. 그래서 목줄 잡은 채로 나도 가끔은 같이 막 달렸다. 그렇게 달리다가도 '콩이가 운동을 많이 달려서 점점 건강해지고 활발해지면 묶여 있는 게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내가 계속 여기 지내면서 산책시켜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싶었다. 그러다가 '얘는 왜 길산이처럼 영리하지 못해서 농장 밖을 뛰쳐나가는 건지..'의 생각은 어쩔 수 없이 떠올라버렸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삐짐, 체념, 힘듦이 섞여서 가끔은 하루 산책을 빼먹기도 했다. 그러면 다음 날은 너무 미안해져서, 묶여 있는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안 좋아서 꼭 산책을 했다. 그러다가 이게 사랑과 책임감인지 아니면 막연한 죄책감인지 고민하기도 했다.

 콩이랑 잘 지내고 싶어서 유튜브로 강아지 훈련 영상도 엄청 봤었다. 볼 때는 콩이가 말을 엄청 잘 듣게 되면 어떡하지 하면서 두근두근 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잘 안 됐다. 많이 속상하고 또 훈련시키고 있는 내 모습이 바보 같아서 인간이 다른 동물을 훈련시키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했다.



 

별의별 생각을 다 떠올렸지만, 그럼에도 계속 잘 지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는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감상적인 이유도 떠오르지만 그뿐만은 아닌 것 같다. 농장에서 다른 심적으로 힘든 일이 없었으니까 강아지에 좀 더 신경 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결국 떠난다는 생각에 좀 체념한 것 같기도 하고.. 강아지들을 좋아했던 마음을 결코 평가절하하고 싶지 않지만 여러 원인이 합쳐져서 잘 지낼 수 있었던 듯하다.



여러 원인이 있었다고할 수 있지만, 어쨌든 콩이는 나한테 너무 예뻐 보였다. 스스로도 이 마음이 신기했었다. 가끔 콩이가 '앉아'를 알아듣거나 할 때는 너무너무 예뻐서 행복하기도 했다. 복종을 기뻐한다는 게 기분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라는 의미도 있기도 하니까..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맞춰가야 하니까..



한 번 괜히 기분이 이상했던 날
'강아지들은 맨날 나를 올려다보는데 내가 강아지를 올려다보면 어떨까' 싶어서 강아지 턱 밑에 누워보았다. 그리고는 얼굴을 밟혔다. 안 다치면서 같이 지내려면 나는 직립 보행하는 인간으로 있긴 있어야겠다 싶었다.



강아지들이랑 놀다가 인터넷으로 강아지 장난감을 구매하기도 했다. 강아지한테 말을 걸게 되었을 때, 강아지 훈련 영상을 찾아볼 때 스스로가 낯설었었는데 강아지 장난감까지 구매하게 되니 참 헛웃음이 났었다. 애들 잘 노는 거 보니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지금 이렇게 돌이켜보면 강아지로 인해서 참 별 생각을 다 했구나 싶다. 지금이라면 좀 더 생각 없이 강아지들이랑 놀 수 있을 것 같다. 삐지면 삐졌다고 제대로 말하고 강아지가 못 알아들으면 못 알아들은 거 제대로 받아들이면서.

이상한 성격을 받아준 강아지들이 새삼 고맙다고 생각이 든다. 다만 그 강아지들 역시도 나로 인해서 기쁜 순간이 있었으리라고도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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