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간 농장은 산란계 농장, 알을 낳는 닭을 기르며 알을 생산하는 농장이었다. 농장은 (우퍼인 내가 보았을 때) 농장 경영을 담당하는 호스트님과 농장 현장의 일을 총괄하는 양 선생님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산란계 농장의 형태는 크게 3가지로 나뉘는데 AI 관련 뉴스 등을 통해 흔히들 알고 있는 공장식 방식(케이지 사육), 이와 반대 극단에 있는 닭을 완전히 풀어놓고 기르는 방식(케이지 사육과 비교했을 때 좋아 보이긴 하지만 엄청난 노동력과 시간을 요하기에 운영이 어렵다), 그리고 각 방식의 장점을 합친 적절한 면적의 닭장에 적절한 수의 닭을 기르는 방식이 있다.
내가 갔던 농장은 세 번째 방식을 취한 곳이었다. 적절한 면적에 적절한 수의 닭이 들어가 있는 개별 닭장은 한 칸, 두 칸 할 때의 단위인 '칸'으로 불리었는데 이 농장에는 대략 25~30칸이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구조물이 닭이 알을 낳는 공간이다. GG_105에서는 닭들에게 사료 뿐만 아니라 싱싱한 풀을 주기도 했다.
각 칸에는 닭이 일상시간을 보내는 운동장 같은 공간과 별개로 안정된 곳에서 알을 낳고 싶어 하는 닭의 속성에 알맞은 어둡고 조용한 다락방과 같은 알 낳는 장소가 붙어 있었다. 우퍼인 내게 주어진 가장 주된 일이 이 다락방 같은 곳에서 알을 걷는 일이었다. 그리고 초기에는 이 일이 너무 힘들었다.
육체적으로 힘들다기보다는 진이 너무 빠졌다. 하루는 정신 차려보니 내가 농장 벤치에 뻗어있었다. 알 걷고 나서 너무 힘들어서 잠깐 쉰다는 게 그대로 잠들어 버린 것이었다. 이후 우프를 하는 동안 이 일보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들을 꽤 많이 겪었지만, 이렇게 쓰러져(?) 버렸던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대부분의 닭들은 다락방에 알을 낳고서 곧잘 닭의 운동장으로 내려갔다. 품더라도 그리 오래 품지 않았다. 그런데 오래도록 알을 품고 있는, 그래서 나로 하여금 알을 걷지 못하게 하는 닭들이 2~3칸에 한 마리씩은 꼭 있었다.
산란용 닭은 현대농업에 들어 과학 기술로 많이 개량되어버렸기에 '본성'을 논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긴 하지만 어쨌든 닭의 본성은 자신이 낳은 알을 품고 있으려고 하는 것이라고는 한다. 개량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이 본성이 유독 강하게 남아있는 닭들이, 나를 진 빠지게 했다.
농장 현장의 일을 총괄하시는 양 선생님한테서 일을 배울 때 이렇게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경우에는 번쩍 들어 올려서 옮기면 된다고 배우긴 배웠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그 간단한 일이 참 어려웠다. 닭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졌었다. 내가 번쩍 들어 올리기보다는 닭이 스스로 비켜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닭을 톡톡 건드리면서
"비켜 줄래..?? 비켜주겠어..? 비켜주라..ㅎㅎ"
하고 말을 걸었었다.
과거의 내가 헤매던 모습을 돌이켜 볼 때는 대부분의 경우에 바보 같긴 하지만 괜히 안쓰럽고, 응원해주고 싶고 하지만 이때의 순간만큼은 농촌 동네 어르신과 같이
"아니 저 도시 총각이 뭔 짓거리를 하는 겨? 도시 촌놈 티 팍팍 내고 앉아 있네"
와 같이 된다. 아주 많이 멍청했다.
닭이 내 말을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닭은 무시 아닌 무시를 하다가, 다가오는 손이 짜증이 났는지 손을 부리로 콕콕 쪼기도 했다. 못 견딜 정도로 아픈 건 아니었지만 무시 아닌 무시를 당할 수밖에 없는 배려 아닌 배려가 사라지기에는 충분한 정도의 아픔이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아 좀 비켜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그럼에도(당연하게도) 비키지 않는 닭을 그냥 번쩍 들어 올려 옮기고 알을 걷었다.
여러 칸을 걷으면서, 알을 오래 품고 있는 닭을 마주칠 때마자 이 과정을 반복했다. 안 비킬 걸 알아도 처음부터 들어 올리는 건 뭔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너무 진이 빠지고 속상했다. 그냥 들어 올리면 되는 걸 분명 아는데, 괜한 미안한 마음이 분명한 실체가 없는 막연한 마음이라는 걸 아는데도, 잘 안 됐다. '도대체 닭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 거지..?'
또 달리 속상하기도 했다. 호스트님과 양 선생님이 좋은 분들이셨는데, 그래서 나도 일 제대로 해서 베풀어주신 상냥함에 답하고 싶었는데, 일 속도가 너무 느린 것 같아 속상하고 죄송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케이지 사육을 하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는 걸까...' 싶기도 했다. 도시에 살 때는 케이지 사육 안 좋은 거라고 그렇게나 씨부렸으면서!
그러다가 어느 날, 여전히 닭들과 씨름하다가 결국은 큰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간식 먹자고 부르려고 오셨던 양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셨다. 선생님께선 허허 웃으시면서 고생이 많다고, 잠깐 쉬고 하자고 하셨다. 목소리 높이는 광경을 들킨 게 머쓱하고 부끄러웠다.
닭을 대하는 마음을 고민하면서도,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이상한 고민 같아서 이전까지는 양 선생님과 솔직히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 일을 계기로 '닭을 들어 올리는 일이 심적으로 어렵다'는 내 고민을 솔직히 말씀드렸다. 그때에 양 선생님이 해주신 답은 "닭은 닭이다"였다.
첫 우프 농장이 GG_105였다는 것, 생명체를 대하는 마음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우프를 시작한 뒤 처음 뵌 분이 양 선생님이었던 것은 정말 크나 큰 행운이었다. 나는 내 고민이 "잡생각 말고 일이나 제대로 해라"는 식으로 혼날 수도 있는 고민, "별 이상한 생각을 다 하네"라는 식으로 조롱이나 핀잔을 받을 법한 고민이라고 생각했었다. 양 선생님은 그런 분이 아니셨다. 닭을 존중하고 나를 존중해준 분이셨다.
"닭은 닭이다"는 아주 거칠고 단순하게 해석하면 닭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을 하신 양 선생님은 닭을 참 정성으로 돌보는 분이셨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매일 닭을 보면서도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는데 양 선생님은 여러 가지 단서로부터 닭들의 상태를 기민하게 파악하고 이에 필요한 조치들을 적절하게 취하셨었다. 이 과정은 농업 기술적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경제동물을 대하는 태도 이상의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하면서 참 멋졌었다. 그런 양 선생님께서 "닭은 닭이다"하는 순간 마치 돈오점수(?)와 같이 눈이 뜨이는 느낌이었다. 그 뒤로 참 신기하게도 훨씬 가벼워진 마음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닭아! 나는 너를 존중하고 싶어. 전에는 무작정 존중하려고 들었기에 적절한 존중이 무엇인지 몰랐었고, 나로서는 알 걷는데 많은 시간을 써버리고 너로서는 고함을 듣게 되었었어.. 미안해. 이제는, 너에게 알맞은 존중을 싶다고 생각을 해. 알맞은 존중, 닭을 닭으로서 존중한다는 게 무엇인지 아직 감이 잘 안 오지만 그리고 완벽한 존중은 찾을 수 없겠지만 무작정 존중하려 드는 방향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
우선은! 너라고 하는 닭을 함께 일하는 직장동료라고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부딪히는 부분에서는 조정을 하는.. 앞으로 내가 알을 걷을 때 네가 알을 품고 있다면 나는 그냥 너를 들어 올릴 거야. 우리의 공동 목표는 알을 상품화하는 거니까. 하지만 네가 알을 낳는 너무도 중요한 수고를 하는 만큼, 나 역시도 내가 할 일인 너의 밥과 물을 챙겨주는 일, 볏짚을 충분히 깔아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할게!
서로 도와서 잘해보자!'
정도의 생각을 했다. 들어 올리면서 '미안해 고마워! 수고 많았어!'라는 생각을 하면서 들어 올렸고, 일이 훨씬 쉬워졌었다. 일이 쉬워지면서 농장 생활을 좀 더 즐길 수 있었다.그리고 양 선생님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