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헉죄송 Sep 27. 2019

우프 첫날, 동물과 사람이 지지고 볶는 모습을 보며..

 우프, 한국 우프, GG_105

 '농사를 짓는 삶을 경험해보자!' 고 결정한 뒤 마음 같아선 곧바로 농장으로 가고 싶었지만 중요한 과제가 남아있었다. 아들에게 적지 않은 기대를 하고 계셨던 부모님께 내 결정을 말씀드려야 했다..

 부모님이 보시기에는 농업과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아온 아들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부모님은 많이 놀라셨고, 힘들어하셨고, 다시 생각해보면 안 되겠느냐고 몇 차례나 말씀하셨다. 그러다가 결국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하셨다. 부모님께 죄송하고 감사했다.


 학교 다닐 때 겉돌았었기에 참석해도 별 의미가 없는 졸업식에 원래는 가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적어도 부모님께는 좋은 추억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평범하게 졸업식은 치렀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와줘서 좀 구색은 갖출 수 있었다. 고마웠다. 졸업식 마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자취방을 정리하고, 우프를 시작하였다

 첫 농장에 도착한 날, 농장은 꽤나 소란스러웠다. 농장에서 반려동물로 기르고 있던 산양 한 쌍이 쌍둥이 새끼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새끼들이 아주, 정말, 매우 귀여웠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소란을 떨만한 일이었지만 그보다도 더 정신없는 일이 있었다.

이 사진도 좀 자란 다음 찍은 사진이다. 갓 태어났을 때는 훨씬 애기 같았다.


 갓 태어난 새끼 산양들은 다 자란 산양을 기준으로 만든 큰 나무 울타리를 작은 몸으로 쏙 빠져나왔다. 빠져나와놓고선 어미 산양한테 돌아가고 싶어 하는 듯했는데 그러면서도 새끼 산양 입장에서는 이상한 생명체인 인간을 경계하고 피하느라고 돌아가지 못하고 농장 여기저기를 막 뛰어다녔다.

 다 자란 산양들은 2~3월 날씨에도 밖에 있어도 괜찮았지만 새끼 산양들에게는 보다 따뜻하고 안전한 환경이 필요했기에 새끼 산양을 비닐하우스에 넣어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하도 작고 날쌔서 금방 잡을 수가 없었다. 춥기 때문인지 무섭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 몸이 세상 풍파에 노출되어 있는 게 어색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몸을 엄청 벌벌벌 떨면서도 잘 도망쳐 다녔다.

 겨우 새끼 산양을 붙들어 하우스에  넣어두고서도 큰일이 남아있었다. 새끼 산양을 보살필 어미 산양도 하우스에 옮겨 주어야 했는데, 그러려고 하면 아빠 산양이 난리를 피웠다. 가는 길을 막거나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냥 아빠 산양도 같이 들어가면 안 되나?' 싶었는데 아빠 산양은 새끼 산양들에게 질투 같은 것을 하기 때문에 같이 있으면 안 된다고, 예전에 같이 두었다가 한 번 큰일이 났었다고 했다. 좀 충격적이었다; 어쨌든 아빠 산양의 뿔을 쥐어 잡고 나서야 간신히 어미 산양을 옮길 수 있었다.

 농장 안에는 풀어놓고 키우는 개가 있었는데, 나는 이 소란이 벌어지는 동안 이 개가 흥분해 날뛰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역할을 맡았다. 산양을 붙잡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보다 편하다면 편한 일이었지만 사실 이때 난 좀 힘들었다. 초면인 개의 목줄을 부여잡고 강압적으로 있는 스스로가 좀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산양이 붙잡는 모습도 약간 우악스럽게 느껴져서 좀 그랬다.

 엄밀히 따지자면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새끼 산양들은 추워 죽거나, 아빠 산양한테 죽거나, 개랑 싸우거나 했을 것이다. 그런 거 다 알면서도

'인간이 이 상황을 통제하는 정당성은 어디서 오는 거지..?' 싶었다. 개를 붙들고 있을 때 개한테 미안해서

'초면에 죄송합니다.. 제가 나중에 잘해드리겠습니다..'라고 생각하다가 '내가 뭐라고 잘해드리겠느니마니 하는 거지?' 싶었다.


대학에서 막연히 책상 앞에 앉아 있었을 때의 나는 '어떻게 하면 지구 자연환경, 사회 환경에 적어도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좋은 영향도 나쁜 영향도 별로 빚어내지 않으면서, 별 영향을 안 끼치면서 살 수 있을까?'라는 무의미한 질문에 완전히 사로 잡혀있었다.

바보 같은 생각에 사로 잡혀 있긴 했었지만, 일상의 여러 순간들 속에서 내 생각이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머리는 남아있었다. 어떤 생각이든 생각이 모자란게 문제가 아니라 벗어날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사실 이 질문의 답은 죽음 혹은 수렵 채집 생활밖에 없음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다른 생명체를 대하는 적절한 마음을 알고 싶었고, 이를 위해 우프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겪는 생명체들의 격동 현장은 정말 얼떨떨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는.. 직접 닭을 상대해가며 일을 해야 했다.

작가의 이전글 농사일 공부, 우프(WWOOF)를 결심하기까지..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