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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헉죄송 Sep 21. 2019

농사일 공부, 우프(WWOOF)를 결심하기까지.. -2

먹거리, 농업, 환경에 대한 관심은  마음을 힘들게 만들기도 했지만 위로해주기도 했다. 농사를 통해 자주적인 삶, 사회와 자연환경에 적은 부담을 지우는 삶을 사는 분들의 이야기는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하잘 것 없는 나이지만 혹시나 이런 내가 무언가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이 분들과 같은 분야의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관련 활동들을 하며, 이러다가 내가 할 만한 일을 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먹거리, 농업, 환경과 관련해서 현실적으로 고려할만한 일자리는 시민단체 활동, 유통업, 기자 같은 것들이었는데, 나한테는 좀 맞지 않는 듯 했다. 


나에게는 이 일들의 본질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행동, 구매, 의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일종의 설득이라 느껴졌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능력도 없고 설득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 스스로도 좋은 먹거리, 좋은 농업, 좋은 자연환경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고, 스스로의 생활을 재구성한 것도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고 든다면 스스로가 더 싫어질 것 같았다.

이와 같은 그럴싸한 이유도 있었지만 이유 같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그냥 다 허무하고 싫었다. 어깨에 힘주고 뭐가 중요합네 뭐가 중요합네 하는 인간 행태가 세상을 더 망가뜨리는 것 같았다. 뭐가 중요한 건지 알기도 어려웠고 어려운 거 굳이 공부해가며 알기도 싫었다. 세상이 망해가는 거 같은데 그냥 콱 망해버리면 싶었다. 문명이라던지 이성이라던지 다 돈이랑 권력 가진 사람들의 방패 같고 아무 의미 없다고 느껴졌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저냥 먹고살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마음이 어떻든 간에 계속 어영부영 있을 수는 없었다. 대학생이라는 일종의 유예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시간이 없으니 묘하게 생각이 간결해졌었다. 도시에서 내가 할 만한 일은 없다, 도시에서 활동들을 할 때에 손에 굳은 살도 없는 내가 농업이 중요하니 뭐니 하는 건 좀 우스운 일이라고 스스로도 생각했었다.


공부를 하며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연구가나 활동가의 책이 아니라 농사짓는 분들이 직접 적으신 자신들의 이야기였다. 일상의 순간에서 허무함을 참 많이 느꼈었는데 농부분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농사를 짓자!'라고 생각을 했다.

1년 휴학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 이외에는 대체로 무난하게 살아왔던 내게는 큰 결심이었다. 그런데 사실 별 거 아닌 결정이기도 했다. 스스로도 이를 잘 알았기에 결정할 수 있기도 했다.

농사를 짓자고 마음을 먹긴 했어도 기술, 자본 어느 것도 없는 상태에서 당장 나의 농사를 시작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유기농 농가에 노동을 제공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WWOOF를 통해 농사를 배우자고 생각을 했었다.

실상 '농사를 짓자!' 보다는
'농사를 짓는 분들 옆에서 일 거들며 같이 살아보자! 농사짓고 사는 게 어떤 건지 현장에서 한 번 보자!'에 가까웠다.

이렇게 하면 필요한 건 시간과 몸뚱이뿐이었다. 그리고 그때에 읽었던 기사가 현재 청년층의 사회 진입 평균 연령 층이 점점 늦어진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스스로 보기에 전공인 사회학과는 취업에 좋은 전공은 아니었지만 대학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곳을 나왔고 학점도 잘 받아두었다. 농업, 먹거리, 환경 관련 외부 활동도 어느 정도 해 두었다. 감사하게도 외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 학자금 대출도 없었고 집이 크게 넉넉한 건 아니지만 내가 지금 당장 돈을 벌어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도 아니었다.
 
이런저런 것들을 고려해보았을 때 WWOOF 한 1~2년 하다가 농사가 영 아니다 싶으면 정상적인 삶의 궤도로 돌아오는 걸로 해도 괜찮겠다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도 신문기사에 나온 사회생활 진입 연령과 비슷하니!

또 나름 전략적으로도 생각해 보았을 때 도시에서 꿍시렁 거리며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뒤늦게 '농사를 짓겠어!' 하며 뛰쳐나갔다가 '이 길이 아니네..;'하며 돌아오는 것 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갔다 오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1년 반의 우프를 마치려는 지금 이 생각을 돌이켜보면 좀 잘못 생각한 부분이 있긴 하다. 내 또래 사람들이 다들 아무것도 안 하면서 시간 보냈던 게 아니고.. 다들 나름 준비를 하느라고 사회 진입이 늦어진 것이었다. 지금 도시에서의 생활에 돌아가려고 보니 내가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구나 싶다.

그렇지만 후회는 없다. 우프를 통해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해졌다. 도시에서 무엇을 했어도 이렇게 건강해질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우프를 하기로 마음먹고, 농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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