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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헉죄송 Sep 21. 2019

농사일 공부, 우프(WWOOF)를 결심하기까지.. -1

고등학생 때, 설인지 추석인지 어쨌든 명절에 친척 가족이 모여 밥을 먹었다. 갈비찜이 맛있길래 많이 먹었다. 한참을 먹고 나서 보니 밥그릇 옆에는 갈비뼈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때는 수험, 만화, 축구, 농구 외에는 별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뼈 뭉텅이를 보는 순간


'내가 지금 소를 얼마 큼이나 먹은 거지? 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 고기를 먹어도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떠올랐었다.

이를 계기로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찾아보다가 채식이란 걸 알게 되었고, 시도했고, 실패했다. 채식은 어려운 것이었다. 지금도


'고기를 너무 많이 먹지 말자-'정도로만 생각하고 채식을 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이후 먹거리, 농업, 환경에 관심을 막연하게나마 갖게 되었다.

그리고서는 여느 때와 같이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아직까지 읽지 않은 취향에 맞는 만화를 찾아 광범위하게 만화방 책장을 이리저리 살피던 어느 날, 우연히 '현미 선생의 도시락'이라는 만화를 발견했다.

대학에서 '식문화사' 수업을 강의하는 유키 겐마이(현미)라고 하는 선생님이 대학 내 빈 땅에 텃밭 농사를 짓거나, 학생들과 함께 도시락을 만들거나 하는 등 농사와 음식을 매개로 여러 사람들과 교류하며 먹거리, 농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만화였다. 따뜻한 내용이었지만 마냥 밝은 분위기는 아니었고 꽤나 진지한  만화였다.

그때에도 독특한 만화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또 생각해보아도 이상하다. 그런 만화가 기획, 출판된 것도 신기하고 동네 만화방에 들어온 것도 신기하다. 어쨌든 그 만화를 읽으며 대학에 가면 먹거리, 농업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가고 보니 만화에서 본 것과 달리 대학에는 빈 땅이 없었고 빈 땅이 있다고 해도 농사짓거나 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당연히 대학 안에서 농사짓고 있는 현미 선생님과 같은 분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현미 선생님을 찾아다닐 정도로 관심이 깊은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잊고 어영부영 학교를 다녔다. 뒤늦게 은평구에서 도시 농사를 짓고 있는 청년 모임을 알게 되어 들어가서 감자를 심었지만 수확은 전혀 못 해보고 군대에 끌려갔다.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먹거리, 농업에 관심을 갖고 관련 활동을 해보자 싶었고 마침 운이 좋게도 타이밍이 잘 맞아 여러 활동과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농업 관련 재단의 장학생이 되어 장학금과 더불어 연수도 받고, 청년 도시농업 동아리에 들어가서 도시 농업도 지어보고, 농부장터의 스태프로도 일해보았다. 전공인 사회학에서 관련 수업이 열려서 수강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관심, 활동과 더불어 이 시기에  마음 큰 부분을 차지하던 것이 있었다. 낮은 자존감이 꼬이고 꼬여 이루어진 '내 삶의 자격, 내 존재의 타당성'에 대한 고민이었다. 원래도 사람들 앞에서, 삶 앞에서 곧잘 주눅 들곤 했었지만 이 때는 이상한 논리까지 갖추어 좀 심각했었다.


관심과 고민 중 무엇이 우선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먹거리, 농업, 환경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조금씩 알아가다 보니 내 존재가 참 나쁘게 느껴졌었다. 


스스로 헤아려 보건대 특별히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지만 적어도 이 세상에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굉장히 슬프게 느껴졌었다.


내 행동 하나하나 때문에 사회적 약자 분들의 인권이 짓밟힌다거나, 사회가 부정부패로 썩어버린다거나, 미세먼지가 엄청 많이 생기거나, 산림이 민둥산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가랑비는 내린다. 스스로가 허튼짓을 했을 때, 다른 사람이 허튼 짓하는 걸 그냥 지켜보기만 했을 때, 에어컨과 보일러를 많이 틀었을 때, 다른 생명을 착취해서 만든 음식을 많이 먹었을 때, 자동차와 비행기를 많이 탔을 때, 수많은 일상생활의 순간에서 가랑비는 내린다.


나의 일상이 해충과도 같이 사회와 지구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있는 이미지가 내게는 너무도 선명하게 그려지고 자꾸 떠올랐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니 이후의 생각들도 좀 침착하지 못했다. 내가 끼치고 있는 폐는 너무도 크게 느껴졌고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너무도 작게 느껴졌다. 


이런 스스로를 존중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점점 내 삶을 쓸모, 살아있을 자격, 타당성의 관점에서 보게 되었었다. '나는 살아있을 자격이 있을까?'

이는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삶의 자격, 타당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쉽게 초조함과 불안으로 이어졌고 초조함과 불안은 여러 시도, 의욕, 동기를 금방 엎어지게 했다. 이런 과정은 삶의 쓸모, 혹은 삶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출 뿐이었다. 내가 참 쓸모없는 사람, 살아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 존재의 타당성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껴졌었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내게 한 친구가 '자의식 과잉'이라고 말을 하였다. 일리는 있을지 몰라도(없을지도 모른다) 도움은 확실히 안 되는 말이었다.


스스로의 고민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있었기에 많은 생각을 했었고,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내가 특별히 남들보다 나쁜 짓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일을 덜 하는 것도 아님을,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고만고만하게 살고 있음을, 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살 권리를 더 갖거나 덜 갖거나 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알면서도 벗어나기가 어려운게 문제였다.

지구에 폐를 끼치는 것보다도 이 지점에서야 말로 나는 삶을 살 자격이 모자라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삶의 의미, 혹은 쓸모에 대한 고민은 다들 하지만, 고민을 하면서도 묵묵히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이 고민에 완전히 붙들려버렸다. 이 고민에 사로잡혀 ''을 살지 못한다, 다른 분들과 같이 내 삶, 내게 주어진 시간을 책임감 있게 대하지 못 한다.. 조금씩 삶의 자격을 잃어 간다..

(지금도 여전히 나의 일상으로부터 비롯되는 폐해는 크고 무겁게 느껴진다. 다만 지금은 이전과 같이 대책 없이 얽매어 있지 않는다. 올바로 보고 올바로 책임을 지려고 한다.

예전의 내 고민은 낮은 자존감으로부터 비롯된 악순환 과정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사람들 앞에서, 자연환경 앞에서 주눅 들어있었고 주눅 든 마음은 관계 속에서의 작은 신호들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만들어 나를 더욱 주눅 들게 했다.


그때의 내게 필요했던 건 조금이라도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이었지만 그때의 내 일상에서, 자신으로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존감을 익히기는 어려웠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합이 안 맞았다고 생각한다. 우프를 통해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좋은 들을 많이 만났고, 이를 통해 조금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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