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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주기자 Aug 28. 2020

1-3. 새 직장을 찾아서

'일단 그만두고 생각하자'

기자를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시기를 저울질했다.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간다는 두려움과 기자 생활에 대한 미련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옮길 직장이 있기는커녕 다음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일을 하는 중엔 새로운 진로를 알아본다거나 지원서를 쓸 시간 조차 없었다.

래도 새로운 업계에서 신입사원으로 경력을 다시 시작하려면 한 살이라도 어린 나이가 유리할 것 같아 일단 그만두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듬해 신입사원 채용 전 충분히 생각하고 직장을 고르기 위해 연말에 퇴사했다.


일을 그만둔 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음 진로를 고민했다.


모아둔 돈으로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무엇이 문제였는지, 내가 어떤 직장을 원하는지 고민했다. 전 직장의 나쁜 근무환경의 근본적인 원인은 업계가 성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아는 것처럼 방송과 언론 산업은 큰 어려움에 빠져있다. 미디어 패러다임이 바뀌며 구독료와 시청률로 운영될 수 없는 근본적인 어려움, 광고 수익에 의존하기 위해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며 언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 입장이라면 기자의 수를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최대한 많은 기사를 뽑아내게 해야 한다. 일하는 기자의 처우는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다음 직장은 성장하는 산업에 속해야 한다는 조건을 뽑아냈다.

그리고 평생을 대기업에서 일하신 아버지, 먼저 취업했고 행복해 보이는 다른 친구들을 벤치마킹해 대기업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스타트업과 의원실의 일자리를 제안받기도 했다. 불안한 상황에 너무 솔깃한 제안이었지만, 전 직장과 비슷한 환경에서 일을 하게 될 것 같았다. 이번 직장은 생각한 대로 더 제대로 고르기 위해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시간을 더 쓰기로 했다.


매일 올라오는 채용 공고를 보고 거르기를 반복했다. 마음에 드는 직장과 직무의 구인 공고는 거의 올라오지 않았다. 지원서도 써보지 못하고 수개월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퇴사했을 때의 패기는 희박해지고 내 기준에서 벗어난 채용 공고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업에서 기자 출신 신입사원을 좋아할지 걱정이 됐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것과 배운 것이 기업에서 원하는 것과 너무 다를 것 같아 불안했다.


그래도 앞서 언론고시를 준비하며 3년 간 수십 번 탈락한 걸 생각해보면, 이번 취업은 훨씬 쉬울 것 같았다. 그리고 이번엔 먼저 취업한 친구들도 많았다. 주변 사람들의 응원과 도움으로 불안한 시기를 견뎌내고 때를 기다렸다.


해가 지나고 대기업의 신입 채용이 시작됐다. 나는 IT 업계 위주로 서너 장의 지원서를 쓰고 서류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채용 공고는 뚝 끊겼고 진행 중인 전형을 무기한 연기한 곳도 있었다. 이미 지원한 곳에 합격하지 않으면 언제까지 일을 쉬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는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변을 일으켰다. 인적성 검사가 온라인 시험으로 대체되며 비중이 대폭 줄어들었다. 인적성 준비를 해본 적이 없는 내가 통과할 정도였다. 거기다 두 번의 면접은 모두 화상면접으로 대체됐는데, 카메라 앞에서 떠드는 건 내가 돈 받고 하던 일이다.


그렇게 나는 IT회사의 경영전략팀에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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