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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주기자 Aug 16. 2020

1-2.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기자는 누구에게나 잘 맞는 직업이 아니다.


시작하기 앞서 이 이야기는 전적으로 나의 견해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즐겁게 일을 하는 누군가의 기분을 망치고 싶은 게 아니다. 현재 직업에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면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

이 이야기는 새 진로를 정하려는 사람, 꿈이 없다고 불안해하는 사람, 이직할 용기가 나지 않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



다음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 기자로 일했던 경험을 먼저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기자를 10년 간 꿈꿨다. 졸업을 미뤄가며 공부했고 방송국에서 인턴 생활을 했으며 수많은 언론사에서 시험을 본 후 결국 기자가 됐다.


기자를 꿈꾼 이유는 단순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일하는 걸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돈 쓰는 시간보다 돈 버는 시간이 많으니 일에서 재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영향력이니, 사명감이니 하는 것들은 이미 진로를 정한 후에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해 따라붙은 이유였다.


실제로 기자 일은 재미있다. 기자라는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이 재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경우엔 직업에서 얻는 재미는 다른 모든 것을 상쇄할만한 보상이 되지 못했다. 기자가 누구에게나 잘 맞는 직업이 아니라고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의 재미를 제외한다면 기자의 근무 조건은 상당히 나쁘다. 그것도 훨씬 나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긴 시간 노력을 한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직업이기에 더욱 비교된다.


신문기자, 방송기자, 사진기자, 영상기자 모두 다른 생활을 하겠지만 방송기자였을 당시 나의 생활은 아래와 같았다.

 


출입처를 이동하며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 물론 핸드폰은 꼭 쥐고 있어야 한다.


오전 7시 30분까지 기자실로 출근한다. 나는 경제부와 산업부 기자였기 때문에 대부분 관련 기관이나 기업 기자실로 출근했다. 기자실은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배정되면 좋겠지만 주로 데스크의 판단에 따라 배치되기 때문에 출근까지 2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다른 매체에서 어떤 보도를 하는지 민감하게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새벽에 뉴스 체크를 하는 일이 잦은데, 이 경우 수면 시간은 더욱 줄어든다.


업무 지시는 전화와 카톡에 의존한다. 늦은 밤과 새벽 시간을 제외하곤 항상 연락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방송 3~4시간 전에 기사 아이템이 정해진다면 다행이지만 방송 시간에 임박해서 배정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루 방송이 끝난 시간에도 급하게 온라인 뉴스를 쓰거나 다음날 아이템을 논의하는 일이 잦아 핸드폰을 꼭 쥐고 상시 확인해야 한다.


기사 아이템은 전날 발제한 내용이나 그날 발생한 주요 사건을 참고해 데스크가 선정한다. (발제에 대해선 아래에서 다루겠다.) 매체마다 다르지만 데스크의 편집회의는 하루에 3번 정도 있는데, 이때 아이템이 추가되거나 쓰고 있던 기사가 취소되는 과정이 반복된다.


나에게 기사 아이템이 배정됐다면, 러프한 구성안을 30분 내에 쓰고 관련 인터뷰, 현장 촬영 등을 준비한다. 몇 시간 뒤 방송이기 때문에 인터뷰이를 구하는 시간은 한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어떤 기사든 전문가로 이름을 올리는 척척박사님이나 인터뷰이 조작 같은 일이 발생하는 건 이런 환경의 영향이다.


발제가 엉망이거나 데스크에서 이해를 하지 못했다면 쓴소리를 좀 듣고 대기 상태가 된다. 이때 개인적으로 취재를 할 수 있지만, 보통은 당일 발생한 사건에 대한 기사나 다른 매체에서 다뤘기 때문에 따라가야 하는 기사, 혹은 다른 부서의 일손이 모자라 도와줘야 하는 기사를 배정받게 된다. (이걸 흔히 총 맞았다고 말한다) 어떻게든 데드라인을 맞춰서 기사를 쓰고 데스킹을 받은 후 편집팀과 영상 제작까지 마친다. 저녁 7시 30분까지 방송을 보고 나면 퇴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발제가 시작된다. 발제는 어떤 아이템으로 기사를 쓸지 데스크에 보고하는 것이다. 취재한 내용이나 이미 예정된 일정을 챙겨서 발제를 하는데, 하루 일과에서 볼 수 있다시피 근무시간에 취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음날 내가 담당한 분야에서 예정된 이벤트가 있다면 발제가 좀 쉬워지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국 취재원과 저녁을 먹으며 취재를 하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기사거리를 찾는데 시간을 쏟아야 한다. 다음날 뉴스가 될 일을 전날 미리 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기자라면 매일 해야 할 기본 업무다. 데스크의 첫 편집회의는 출근 시간보다 이른 새벽에 시작되기 때문에 그전에 발제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잠들기 전에 발제를 마치거나 쪽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 편집회의보다 먼저 발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발제는 다음날 기사를 쓰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휴가 마지막 날이나 일요일 밤에도 준비한다.  



잠은 모자라고 발제 압박은 일하는 내내 계속된다. 핸드폰을 병적으로 자주 확인하게 되고 평일엔 내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아는 취재원은 늘어나지만 주변 사람들은 점점 멀어져 간다. 이렇게 일해도 한 손에 꼽을 정도의 주요 매체 몇 군데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대기업의 초봉보다 낮은 급여를 받는다.


기자 일엔 분명 다른 직업이 주지 못하는 매력이 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카메라 앞에서 내 목소리를 내는 것, 내 이름을 걸고 단독기사를 내는 일은 재밌다. 이런 일을 즐기는 사람에게 기자는 대체 불가능한 직업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새로운 직업을 찾아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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