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나 아직 괜찮아요
인생의 전환기를 맞다.
눈을 떴다. 말라붙은 눈곱 때문에 실눈을 했다. 이불은 어지럽게 헝클어져 있고 나는 속옷 차림으로 누워있다. 커튼이 빛을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했는지 천정이 흐릿하게 보였다. 꽃무늬인 듯싶은 데 이름은 모르겠고 지금 보니 무늬는 반복되고 있다. 나는 몇 번이나 하품을 길게 내뱉으며 일정한 패턴을 찾느라 한동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에는 적막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서둘러 이 분위기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시지? 방안에는 벽시계도 없고, 휴대폰도 없다. 시간을 알아보려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머리가 빠개질 정도로 아프고 속이 쓰렸다. 날숨에서 진한 술 냄새가 났다. 그러고 보니 어제저녁 늦도록 건배를 외쳐댔었구나.
“선배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지금은 헤어져 아쉽지만 자주 연락하시죠”
이러저러한 말로 나를 위로해 주며 건네는 후배들의 잔을 마다하지 않고 전부 들이켰었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가 되자 그때서야 술자리는 끝났다. 빈 술병에 풍경이 출렁거리고 도로는 비틀거렸다. 후배가 택시를 잡아 태워주더니 이것저것 선물 꾸러미를 챙겨 차 안에 밀어 넣었던 것까지 기억이 났다.
오늘부터 출근 안 해도 되었다. 해방이다. 그 지긋지긋한 스트레스 구덩이에서 벗어나게 되다니 너무나 좋았다. 마음껏 게으름을 피워도 된다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어슬렁거리다가 방을 나섰다. 거실 한 편에서 뭔가를 뒤척이던 아내가 보더니 이제 일어났느냐고 말을 건넸다. 어젯밤 인사불성이 되어 기다시피 집에 왔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일어나면 주려고 준비한 꿀물이며, 전복죽을 내왔다. 속이 메슥거려 몇 수저 뜨는 둥 마는 둥 하는 동안 벽시계의 뻐꾸기가 11시임을 알렸다. 해가 중천에 뜨도록 집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하얗고 푸석한 긴 팔을 뻗어 식탁 위 손거울을 집어 들었다. 거울 속에서 낯선 모습의 중년이 보고 있었다. 중년은 반백의 헝클어진 머리에 쭈글쭈글한 이마, 축 처진 볼 살을 하고, 몇 올 남지 않은 눈썹 밑으로 세월을 축적해 두었다.
퇴직을 했는데도 담담하였다. 그저 여유롭다는 생각뿐이었다. 무던하고, 무심하기는... 습관처럼 휴대폰을 열었다. 몇 개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와 있다. 직장 동료들이 안부를 묻는 전화에 나름 꽤 잘 살았다고 스스로 위안하였다. 짧은 통화와 답장을 보내고 나니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침묵. 그 많던 전화며 E메일이 이렇게 한 순간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이후도 계속된 휴대폰의 침묵, 갑자기 내 인생에서 시간이 멈추어 버린 것 같아 씁쓸했다. 씻기가 귀찮고 게으름을 피우고도 싶어 그대로 소파에 드러누웠다. 아내가 옆에 앉더니 TV를 틀어 주었다. 전편의 줄거리도 모른 채 TV 연속극을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오후 3시, 아내의 외침에 잠이 깨었다. 누워있지만 말고 잠시 바람이라도 쐬고 오자는 말에 물 세수를 하였다. 꺼칠한 수염을 보면서 손바닥에 물을 묻혀 눌어붙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눈곱만 떼면 되지 뭐, 혼자 중얼거리며 주섬주섬 평상복을 입고 따라나서는 풍경이 몹시 낯설었다. 현관을 나서다 말고 다시 들어와 모자를 챙겼다. 행여 이웃 아주머니라도 만날까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공원 가는 길에도 사람들을 지나칠 때마다 슬쩍 돌아보았다. 수군거림에 예민해졌다. 사람들을 마주칠라 싶으면 아내에게 아무 말이고 건넸다. 주변을 의식하다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신분의 변화가 이렇게 차이 나는 것인가? 자격지심 때문에 더 이상 산책이 즐겁지 않았다.
저녁 상을 물리고 뉴스를 보면서 큰 형님에게 전화를 했다. 언젠가는 가족들도 알게 될 일이라 미리 내 입으로 말해 주는 것이 편할 것 같았다.
“형님, 저 회사 그만두었어요”
“어, 그러냐? (잠시 침묵) 넌 괜찮은 거지? ”
전화기 넘어 형님의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지며 가늘게 떨렸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 데, 왜 안쓰러워하지? 한마디의 위로와 공감이면 나는 정서적으로도 완전히 퇴직을 할 수 있는 데, 정작 다른 사람들은 걱정을 했다. 행여 실패한 인생이라거나 인생 종 쳤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퇴직했다고는 하지만 나는 나, 그대인걸...! 015년 10월, 퇴직 한 지 일주일째 되던 날엔 공교롭게도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7년 전, 병상의 어머니를 천국으로 보내드린 그 요양병원에서였다. 이렇게 나는 퇴직과 더불어 아버지를 여의는 큰 변화를 맞이하였다.
퇴직은 직장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 거치는 과정이라지만 인생에 있어서는 큰 전환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아버지란 이름으로 가장의 짐을 지고 앞만 보고 왔었다면 지금부터는 ‘나’를 위한 인생의 출발선에 서게 될 것이다. 과거의 문고리를 과감하게 내려놓고 첫발을 디딘다. 안락한 온실을 떠나 적자생존의 야생의 세계로... 칠흑 같은 바다에서 항로도 모른 채 항해를 해야 하는 한 척의 나룻배 신세, 갈 곳을 모르지만 노는 계속 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