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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들 Jul 28. 2022

나도 어반 스케쳐가 될 수 있을까?

드로잉, 꿈을 다시 꾸다.

꽤 오래전 붓을 들었던 적이 있다. 집 앞 백화점 문화센터에 등록하려는 아내를 따라왔다가 그리된 것인 데, 백화점 문화센터는 주 고객이 여성(주부)으로 평소 금남의 공간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던 터였다. 가장들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주부들은 한가하게 이런 곳에서 문화생활이나 한다고 생각하니 약간의 부아도 났는지도 모르겠다. 강좌를 신청하는 아내 곁에서 "문화센터에는 주부들뿐이야"라고 퉁명스럽게 한 마디 뱉었는데, 그걸 접수원이 듣고선 바로 응대하였다. "아녜요, 남성분들도 많아요" 그 말 한마디에 나도 엉겁결에 신청했던 강좌가 수채화반.


비록 청일점이었지만 참으로 열심히 배웠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취미로 시작한 그림은 7년이란 세월 동안 계속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진일보했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기초 없이 시작한 취미반의 실력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 그 벽을 넘지 못하자 나는 거기서 과감하게 붓을 꺾어 버렸다. 허무하게도 지난 시간을 내 기억에서 전부 지워버린 것이다. 


여행을 몹시 좋아하는 나의 오랜 꿈 중의 하나는 여행 중 현지의 생생한 소식을 지인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글을 쓰고 대략의 스케치를 해서 보내는 그림엽서가 될까? 현지의 풍경에 나의 감성, 느낌, 생각을 담아서 전하는 일은 상상만 해도 즐거웠으니 오래전부터 이미 나는 어반 스케쳐를 꿈꾸고 있었던 셈이다. 꿈을 꾸면 그때부터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가슴에 깊이 품어두고 버리지 않은 덕에 나는 올해 초 그 기회를 만날 수 있었다.


서대문 50+센터의 '내가 그리는 여행 저널 만들기' 강좌가 눈에 들어온 것은 2월이었다. 관심 분야라서 눈에 띄었을 테지만 내겐 운명의 순간이었다. 뜻밖의 행운인 세렌디피티를 만난 것이다. 첫 수업의 떨림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선생님을 주목하던 시니어들 틈에서 강좌 내내 설레어 어쩔 줄 모르던....


자그마한 스케치북과 드로잉 펜 한 자루를 앞에 두니 수년 전 열정적이었던 그림쟁이 시절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세월이 흐를 만큼 흘렀는데도 가슴이 떨릴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첫 시간은 선 긋기 연습. 그림이나 서예 강좌의 첫 시간은 수강생의 실력을 알 수 없으니 필수적으로 밟는 과정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능수능란했을 선 긋기도 이제 쉽지 않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아니 손이 떨리는 게 아니라 이것은 필시 마음 떨림임이 분명했다.


땀 흘리며 선 긋기 연습을 마칠 때쯤 선생님은 과제를 하나 주었다. 예시 그림을 보고 모작을 해 오라는 숙제인데 이렇게 나이 들어 과제물을 받아보기도 참 오랜만이다. 단순한 그림이지만 기초가 될 포인트가 있다. 구도와 명암 처리, 사물을 보는 시야 등 보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작업이다.

강좌가 거듭되면서 자유 과제를 제출하게 되었는데, 나는 휴대폰에 저장해 둔 오래된 사진들을 소환해 그중 하나를 점지했다. 나의 간택을 받은 사진은 북촌 안동교회의 부속 건물인 소허당. 매주 오가는 길에서 유독 주목을 끌었던 건물이다. 배경이 되는 안동교회의 근대적 건축물은 제외하고 한옥인 소허당만 그려보았다. 펜으로 직접 그리려다 보니 손 떨림이 심해지고 혹시나 잘못 그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일보 후퇴하여 연필로 구도를 잡고 스케치를 한 후, 초벌 스케치 위에 펜으로 윤곽을 그리고 칼라 펜으로 명암을 구분하였다. 색을 칠하지 않으니 사물의 표현이 쉽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작품 치고는 제법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했다. 부족한 것은 차차 배워가리라, 다짐을 하고 서둘러 마칠 생각부터 하였다. 사인을 하면 끝이다. 어떻게 마무리를 할까 고민하다가 서예작품용으로 새겨놓은 낙관을 찍기로 하였다. 청야, 대학시절 호기심으로 지은 이 아호를 여기서 쓰게 될 줄이야. 이것도 운명이런가?



이렇게 해서 나는 오래전 접었던 드로잉에 재입문 하였던 것인데, 후에 어반 스케쳐의 첫발이 될 줄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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