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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들 Jan 17. 2023

외로움 대신 지근거리 말동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해

    

따르릉~ 친구 A로부터 전화가 왔다. 반가웠다. 적적했는데  갈증 끝에 마시는 한 모금의 생수와 같았다. 전화벨이 또 울리기 전에 얼른 받았다. 할 일이 없어 전화벨 울리자마자 받느냐고 힐난 하면서도 A의 목소리는 밝았다.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다가 해물파전에 막걸리나 마시자는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물었다. 퇴직하고 나서 동네 이웃처럼 지내게 된 A와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싱겁기 그지없는 얘기들, 두서없는 일들도 화젯거리가 되었다. 먼 나라, 가까운 사람을 가리지 않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10여 분이 훌쩍 지났다. 점점 아줌마들의 수다를 닮아간다.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수다가 무의미해 보여도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하버드대에서 85년간 2000여 명의 삶을 추적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의 비결은 인간관계에 있다고 한다.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은 부, 명예, 학벌도 아닌 ‘사람들과의 따뜻하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50대일 때에 인간관계에서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사람들이 80대에도 가장 건강한 사람들이었다는 연구 결과는 노년이 될수록 주위 사람들과의 질적인 관계에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2002년부터 21년째 이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월딩어 교수는 '외로움과 고립은 술과 담배만큼 건강에 해롭다. 원치 않는 고립에 빠진 이들은 중년에 신체 건강이 급격히 저하되고 뇌기능도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노후의 행복하고 건강한 삶에 필요한 따뜻하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란 어떤 관계일까? 숨기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 주는 관계 아닐까? 배우자, 형제자매, 자녀, 친구 등 어떤 관계가 되었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필요할 때 늘 곁에 있는 친구를 지근거리 친구라 하는 데, 지극히 가까이 있는 친구를 의미한다. 지근거리 친구, 즉 말벗은 거리의 근접성도 있어야 하지만 만나는 빈도도 중요하다. 외로움은 물리적, 심리적 단절로부터 오는 현상이므로 쉬우면서도 자주 만나는 것이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소통이 잘 될 때 쉽게 고립을 벗어날 수 있다. 일의 경중이 아니라 놀고 싶을 때 놀아주고 여행할 때 함께 하며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는 그래서 멀리 있는 혈육보다 소중하다.

퇴직은 곧 관계라는 질서의 붕괴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관계의 핵심 요인이 되어온 지위, 명예, 부나 학벌과 같은 장막에 가려진 삶은 견고하지 않아서, 이런 핵심요인들을 상실하는 순간 관계에 금이 가게 된다. 퇴직은 바로 그 화려한 장막들을 일시에 걷어내고 벌거숭이가 되는 일이다. 걱정할 것 없다. 새롭게 관계를 형성해 나가면 된다. 그동안 소홀했던 옛 친구들과의 교류를 늘리고, 새로운 이웃들과 만나보자. 같은 취미를 하는 동아리 활동도 하다 보면 반드시 뜻이 맞고 의기투합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누구여야 하는지, 숫자는 몇 명이어야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아내가 될 수도 있고 단 한 명의 친구여도 좋다.      

노후의 친구들은 어떻게 해야 생길까? 내 맘 같지 않게 친구들이 기피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즉, 나에게로의 접근이 쉬우면 된다. 잔소리 대신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베푸는 사람이 되고, 겸손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면 된다. 이 또한 은 쉽지만  어디 그리 술술 풀리던가? 어떻게든 과시하고 싶고, 잘 나 보이고 싶고, 아는 체, 있는 체도 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들이 내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면 친구 만들기는 애당초 틀린 일이니 시간 되는 대로 지근거리 친구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야 한다.     


퇴직은 기존에 얻은 각종 사회적 지위와 명예의 상실, 관계를 해체시키게 된다. 삶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전환기를 맞아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특히 노후 최대의 적이랄 수 있는 외로움과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벗이 절실한 시기이기도 하다. 나의 곁을 지근거리에서 지켜줄 친구들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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