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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준성 Dec 07. 2018

예술과 문화는 무엇인가? -완-

#지식인, 대중의 취향, 그리고 문화

지식인이라는 표현은 과거에서도 많이 쓰였고 현대에서도 많이 쓰이는 단어이다. 지식인은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네이버 포털의 지식인 서비스가 수년 동안 유지되면서 인터넷을 쉽게 접한 세대들은 지식인의 뜻을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사회학에서 정의하는 지식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럼 지식인은 어떠한 사람을 지칭하며 문화에서 지식인의 위치가 중요한 까닭은 무엇일까?



지식인의 

정의


지식인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이다. 간단명료해 보이지만 정확한 기준이 없으므로 누구를 지식인이라 칭할지는 모호한 면이 있다. 철학, 사회학, 정치학, 민족학에서 정의하는 지식인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물론 지금 모든 학문에서 다루는 지식인에 대해서 공부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나는 그러한 능력도 되지 않는다) 학문마다 정의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일괄되는 이미지는 비슷하다.

"모든 사회에는 그 사회를 위하여 세계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는 것을 그 사회적 임무로 하는 사회 집단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Intelligentsia (지식인 사회계층)이라고 부른다"  


-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 1893년~1947년)-


지식인 계층들이 종사하는 직업은 학자, 예술가, 교사, 변호사, 기술자, 일반 사무직원, 의사, 저술가, 저널리스트 등 그 범위가 굉장히 다양하다. 이는 어느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만을 지식인이라 칭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문명 시대 이후 관습적인 생활지식의 범주를 넘어 학문의 원리나 이론 지식을 전담하는 신분층이 나타나고, 이들의 사회적 의무가 정립되었다. 


지식인의 임무는 현 체제를 유지하거나 현 체제를 위해 봉사하는가 하면, 사회 변동기에는 변혁을 일으키는 임무를 담당해 왔다. 아까 이야기한 대로 직업의 범주. 즉, 사회적 생산에서 독자적이기에 특별한 계급을 이루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임무와 봉사. 누군가 알아주지 않는 일을 신념처럼 해내기 위해서는 여유가 필요하기에 과거 지식인 대부분은 부르주아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당장 내 가족이 굶고 있는데 사회를 위해 움직인다는 건 일반적인 사고방식이 아닐 것이다. 


위에 열거한 것들이 지식인의 특징이다. 다소 보수적이지만, 잘못된 것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하며 인류의 안녕을 바라며 대중의 앞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 바로 지식인 아닐까 싶다. 지식인의 특징을 들으니 어떤가? 자신은 지식인의 특징에 부합한다고 생각되는가? 



취향의 

정의


Photo by Nathan Dumlao on Unsplash


취향은 어떠한 성질을 선호하는 것을 말한다. 음악 장르를 예로 들면 누군가는 트로트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힙합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더 나아가서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은 트로트가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트로트를 좋아하는 사람은 힙합이 시끄럽기만 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람의 취향을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 본다면 취향이란 "특정 분야에 대해 미적인 감별 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무슨 이야기이냐면 "힙합/트로트는 내 취향이 아니야!"라는 말은 곧 "힙합/트로트가 왜 좋은지 모르겠어"라는 말이 되고, 이는 사물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미적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누군가는 그것에 열광하고, 즐기고 있기 때문에 미적인 부분이 없다 할 수 없다. 트로트나 힙합 자체에 미적인 부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분야에 대해 미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취향은 상대적인 것이며, 존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취향이 사람마다 갈라지는 이유는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이유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호불호를 타고나는 것도 있고, 후천적으로 우리가 받은 교육과 자신이 자라온 국가의 문화와 사회적 환경, 가정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중국집 사장님 자식들이 중국 음식을 즐겨 먹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문화 취향의 심리적인 요인으로 내성적이거나 조용한 사람은 반대의 성향인 격동적인 것에 열광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육체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댄스 음악이나 격렬한 운동을 선호하고, 두뇌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조용한 음악과 조깅, 명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는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더 선호하게 되는 인간의 본능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왕성한 시기를 거쳤던 사람도 노인이 되면 점점 조용한 음악을 찾게 되는 것이다. (당신도 꽃을 좋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위에서 열거한 지식인의 특징과 취향의 특징을 이야기한 이유는 이제부터 이야기할 취향의 위계화, 문화의 위계화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취향의 위계화는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순수 예술은 고상하고 우월하며 지식인들이 접하는 문화이고, 대중예술은 순수예술보다 저급하고 쉬운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다면 취향의 위계화를 경험한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취향이 옳다고 생각하는 심리가 있다. (옳지 않은 것을 좋아할 리 없지 않은가?) 그로 인해 취향에 세대 차이가 발생한다. 힙합 문화를 광대들처럼 바라보는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이 좋아하는 포크, 민중가요 음악을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들은 음악 같지 않은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취향의 

흐름


Pierre Bourdieu(1930  ~ 2002. 1.23)


프랑스의 문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사람들이 다른 취향을 갖는다는 사실을 분석해낸 프랑스 사회학자이다. 바흐의 피아노 평균율, 거쉰의 랩소디인 블루, 슈트라우스의 푸른 도나우 강. 이 세곡을 가지고 16개 직군을 대상으로 선호도를 설문 조사하였다. 


그 결과 바흐의 피아노 평균율은 대학교수, 예술가가 선호하고, 거쉰의 랩소디인 블루는 프랑스 직업군 중 중간층에 해당하는 기술자, 사무계 관리직이 슈트라우스의 푸른 도나우 강은 공장 종사자, 상인, 사무 노동자가 선호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것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른 취향을 갖는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위와 같은 설문조사로 취향의 구별 짓기 욕망을 설명하려 하였다. 고학력, 고소득자는 자신의 취향을 정당화하고 저학력 저소득자는 상류층의 취향을 닮고 싶어 한다고 정의한다. 


그로 인해 고학력, 고소득자의 문화가 서민 대중문화로 흘러가게 되며 상류층은 서민 대중문화가 아닌 또 다른 취향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그건 이미 내가 다 즐겼던 문화고 난 이제 그것에 관심이 없어 왜냐면 난 너희와 다르니까"라고 생각하며 다른 취향을 찾아 떠날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있다. 먼저 위에 열거한 세 개의 음악을 유튜브 검색을 통해서 들어보시기 바란다. 위와 같은 결과에 대해서 수긍이 될까? 정말 바흐의 평균율은 푸른 도나우 강에 비해 높은 학력을 갖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인가? 클래식에 대한 미적 감별 능력이 없는 사람이 들었을 경우 음악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클래식에 관해서 감별능력이 있는 사람이 바흐의 평균율이 더 좋다고 하더라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니 너무 위축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나라에서 푸른 도나우 강은 상류층 사람들이 듣는 음악일 것이다. (재벌이 등장하는 드라마에는 항상 클래식이 난무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상대적으로 하층민이 선호하는 음악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문화 수준이 프랑스보다 낮아서가 아닌 우리나라에 취향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그저 상류층이 클래식을 선점하고 구분 짓기 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문화 사대주의와도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클래식은 상류층이 즐기는 문화라고 인식을 해버린 것이다. 클래식이 서민 대중문화화 된다면 아마 상류층은 다른 음악을 찾아 떠나지 않을까? 



대중의 

취향


Photo by rawpixel on Unsplash


예술은 특이하고 창의적인 영역이지만, 저마다의 관습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힙합은 힙합이기 위해 힙합에 내포되어있는 관습을 따른다. 강한 드럼, 빠른 음절의 랩, 사회 비판적이거나 자기를 과시하는 가사 내용, 특유의 과한 손짓이나 몸동작 말이다. 


또한 트로트는 트로트이기 위해 트로트의 관습을 따른다. 반짝이 의상, 음을 꺾는 발성법, 직관적인 가사, 여성의 간드러진 코러스 등등 말이다. 추리 소설이나 로맨스, 액션, 공포 등등 모든 예술적 장르는 저마다 그 장르를 나눌 수 있는 특징과 같은 양식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대중의 취향은 예술이 지닌 양식이 아닌 대중 자신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프랑스 시민들이 클래식이라는 같은 장르 안에서 서로 다른 음악을 선호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술과 문화는 대중의 취향, 계층의 갈등, 세대의 차이를 띠어놓고 설명할 수가 없는 분야이다. 희뿌옇던 예술과 문화의 정체에 대해서 이제는 조금이나마 구름이 걷힌 듯싶다. 어차피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것이 예술 아니던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낡은 것은 버리고 가치 있는 것은 보존하면서 그렇게 인간과 닮은 모습으로 흘러가는 게 예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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