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환상에 속지 않은 나이가 되니 점점 무감해지면서 일상은 걱정거리만 늘고 공허하기만 하다. 매일매일의 소중함을 느낄 새 없이 24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 월요일이 순식간에 주말이 되고 어영부영 다시 월요일이 된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톱니바퀴에 간신히 매달려 시간을 허비하는 기분이다. 망가진 우주선에서 두리번두리번 목표점을 찾으며 정처 없이 부유할 뿐이다. 생의 감각이 위험신호를 보내는 걸 인지하면서도 착지하기엔 불안정한 상태다. 그래서 나 스스로 함께 있으면 지루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 여긴다.
<글로리아 벨>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스스로에게 넉넉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던 거다. 소소한 일상에서 오는 작은 기쁨의 순간에 눈 뜬 바보였다. 아니 그 사소한 기쁨을 발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꽤 오랜 시간 단단하게 빗장을 채워두고 있었다. 다시는 고통스러운 감정에 휩싸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말이다. 관계는 어그러지고 온 우주에 나만 홀로 덩그러니 멈춰서 있다. 시간에 떠밀려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지나온 흔적은 희미하고 운신의 폭은 점점 좁아진다.
글로리아는 나와 정반대의 우주를 살아간다. 누군가와 함께 있든 그렇지 않듯 글로리아가 머무는 공간에는 생의 감각이 만개한 벚꽃처럼 흩날린다. 남편과 이혼한 지 오래고, 품안의 자녀는 성인이 되어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틀었지만, 여전히 활력이 넘친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며 살아가기. 글로리아는 단순한 명제를 사소한 순간에도 실천한다. 온화하고 진심 어린 태도로 함께 살아가는 삶을 소중하게 여긴다. 비록 관계란 게 영원히 같은 자리에 있는 건 아니지만, 일상을 채우는 다정한 관계는 글로리아를 기쁘게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꾸준히 각인시킨다. 자녀에게 메시지를 남길 때 꼭 힘주어 '엄마'라고 말하고, 퇴사하는 동료에게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글로리아는 부러울 정도로 삶의 의지가 충만하다. 일상의 틈바구니를 사소한 기쁨으로 채울 줄 안다. 운전하는 동안에는 좋아하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고, 틈나는 대로 좋아하는 춤을 추러 간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행위다. 무료하게 흘러갈 수 있는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거니까. 그래서 두려움 없이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 설령 그 사랑이 실망과 상처를 안긴다 해도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며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자신처럼 이혼한 아놀드를 만났을 때 자신을 실망스럽게 한 그에게 다시 기회를 준 까닭은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었으리라. 결국 그와 결별하기로 마음을 굳히고도 실의에 빠지지 않은 건 최선을 다해 후회가 없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다시 생긴 빈 공간은 늘 그랬듯 자신만의 기쁨과 환희로 채운다. 순간순간의 감정에 솔직하고 최선을 다히기. 글로리아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아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