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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교감신경과의 대화

난지천에서 구루의 가르침을 얻다

10년도 더 된 얘기다.

나는 달리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 무지개를 정복하기라도 할 기세로.


오랫만의 조깅이었다.
거의 2년만의 뜀박질인데다가
그 동안 누적된 타르와 니코틴이
마야문명 유적에 끼어있는 이끼만큼의 두께로
폐부터 기도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쌓여있는 관계로
500미터도 못가서 헉헉댈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달렸다.


이봉주...는 별로 닮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황영조쯤은 모델로 삼아줄 수 있다.
몬주익의 영광이
어디 따로 있던가.


원래의 목표는
집에서 스위스그랜드호텔까지 뚫려있는
조깅 트랙을 완주하는 것.
2년전 뛰던 길이보다 1킬로 정도만 더 뛰면 되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자신감과 기백이 고루 갖춰져있었다.
요컨데 총 6킬로 정도를 뛰면 되는 것이었다.


한 1킬로쯤 뛰었을까.
가쁜 호흡도 참을 수 있었고
발의 통증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의 전주곡이 웅장하게 울려퍼졌다.


뛴다는 행위는
몸의 진동을 전제로 한다.
진동이란 모든 장기가 움직이는 것.
식사후 1시간이 채 안되었던지라
먹은 것들이 진동의 힘으로
조금씩 아래로 내려왔었나 보다.


엄습하는 욕구.
아니아니
엄습하는 고통.
완주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뛰기전의 기백을 되살려
온 몸에 기합을 넣고
다시 뛰었다.
다시 진동이 온 몸에 가해지고
다시 고통이 찾아온다.
완주는 포기.


조깅 트랙에 공중화장실이 있을 턱이 없다.
조깅 트랙에 공중화장실을 만들어놓지 않은
이명박을 원망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다리밑, 으슥한 개천가,
아아. 어디에도 마땅한 곳이 없다.
저 위에 주유소가 보이지만
계단을 올라야한다.
계단을 오르는 행위는
걷는 행위보다
발이 올라가는 각도가
압도적으로 높다.


그에 따른 장 압박의 강도도

밀어내기 파워도
걸을 때와 비교할 바 아니다.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마포구청역까지 걸어가기로 결의,
한 걸음 한 걸음 집중해서
서서히 서서히
일본 국회의원들이
좌석에서 투표소까지
30분동안 천천히
소가 걷듯 걸어나가는 것으로
투표방해를 하듯
그렇게 걸었다.
어쨌든 충격을 최소화 하는 것이
미시적으로는 고통을 참고
거시적으로는 망신을 면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건강한 땀을 흘리며 뛰거나
바람을 가르며 롤러블레이드를 타는 와중에
완보에 완보를 거듭하는 나의 모습은
마치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강남대로에서
삼보일배로써 환경파괴에 대해 침묵의 항의를 벌이는
노스님의 그것과 흡사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아무튼
삼보일배고 뭐고
다 필요없이
중력이 존재하는 한
일단 내려오기 시작한 것은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
특히나 몸속에서 내려오는 것들은
결코 올라가지 않는다.
젠장 뉴턴만 아니었던들
이런 수모는 겪지 않을텐데.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기도비닉을 유지한채
군대에서 배운
야간보행법으로
1분당 한걸음이라는 속도로
움직이던 찰나.
얼마전 여자친구에게 배운 요가법이 떠올랐다.
여기서 3주전으로 거슬러올라가보자.


자, 모두 양손을 기도하듯 모아보자.
왼손과 오른손의 길이가 거의 비슷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손을 눈앞에 펼치고
100%의 믿음을 가지고
길어져라 길어져라 길어져라 길어져라
마음속으로 읊어보자.
길어져라 길어져라 길어져라 길어져라
그리고
다시 양손을 모아보자.
어떤가
진짜 주문을 외운 손이 길어지지 않았는가.
반대로 해도 마찬가지다.
짧아져라 짧아져라 짧아져라 짧아져라
그러면 짧아진다.
가끔은 짧아지거나 길어지는 것이 실제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이 요가의 기본
신체에 대한 믿음
육체와의 대화
이런 가르침을 얻은 후
한시간동안
손늘이기와 줄이기를 반복했던 일이
불현듯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떠오른 것이다.


손을 늘이고 줄일 수 있다면
장을 거꾸로 움직이는 것도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문제는
장의 움직임이
어떤 명쾌한 단어로서 설명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
적절한 단어를 떠올릴 힘이 있다면
차라리
이미 무기력함을 느끼고 있는 괄약근을 위해
사용하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그리하여
올라가라 올라가라 올라가라 올라가라
를 외우며
보다 기합을 넣기 위해
양손을
45도 각도로 펼친 채
손목을 위로 위로 위로 꺾어주었다.
약 1분쯤 그런 추한 모습으로 걸어갔을까.
놀랍게도
고통이 멎고
유한락스에 3시간쯤 담가놓은듯 창백했던 얼굴에
다시 홍조가 도는 것이었다.


고통이 재개되면
다시
올라가라올라가라올라가라올라가라
손을 45도로 펼치고 손목을 꺾는다.
그리하여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사고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인간의 능력이란 이토록 무한한 것이다.
이런 식의 능력을 꾸준히 개발한다면
공중부양도 어려운 일이 아니며
장풍발사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어쩌면
우리야말로
뉴타입 인류여서
건담이나 에반게리온을 조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무로나 레이가
자신들의 능력을
고통스런 순간을 모면하는데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때의 깨달음은 참으로 커서

백수가 된지 얼마 안됐던 처지에

자기계발 회사를 차려서

부를 일궈볼까 하는 생각도 했더랬다.

물론

자기계발을 꿈꾸는 이들이

비싼 돈을

절체절명의 순간을 모면하는 데 사용할지는

역시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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