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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그리고 음악

음악의 미래와 인공지능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인류와 인공지능’이란 오래된 화두를 다시 꺼내게 한다. 자연의 세계에서 인간의 육체는 결코 강하지 않다. 근력은 침팬지보다도 약하고 빠르기는 토끼보다 못하다. 그런 인간이 자연을 재패하게 된 건 도구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바퀴와 수레를 개발하여 코끼리보다 많은 화물을 나를 수 있었고, 투창을 개발하여 매머드를 사냥했다.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압도적인 힘을 가진 기계 근육을, 엔진의 개발로 미증유의 속도를 얻을 수 있었다. 단순하게 말하여 그 동기는 편리함의 추구였다. 즉, 인간의 근육 노동을 대체하기 위함이였다. 


1937년, 영국의 앨런 튜링은 계산기의 모형이 되는 튜링 머신을 개발했다. 나치의 암호 체계인 ‘이니그마’를 파훼하기 위해 개발된 이 장치는 오늘날 인공 지능의 원형이 된다. 1949년에는 2진법을 채택한 에드삭이 개발되며 현대 컴퓨터의 개념이 확립됐다. 이 때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인간의 연산 기능을 대체하는데 불과했다. 그 후 PC가 개발, 보급되고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활용되었지만 지금까지도 보편적인 용도는 연산이다. 연산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수행이다. 즉, 인간이 내린 명령을 수행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인간과 컴퓨터의 관계는 디렉터(directer)와 오퍼레이터(operator)다. 


이 관계속에서 인간은 컴퓨터를 창작의 영역에 활용해왔고, 비약적인 성과를 얻어 왔다. 1982년 설립된 어도비는 컴퓨터 그래픽을 통하여 미술에 디지털의 개념을 입혔다. 음악은 더욱 빨랐다. 1962년 로버트 모그 박사에 의해 최초의 기계식 신시사이저 모그가 양산됐다. 즉, 아날로그 악기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소리가 ‘기계음’이라는 형태로 인간의 귀와 처음 만난 것이다. 그리고 50여년, 짧다면 짧은 시간에 컴퓨터는 오늘의 대중음악과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미디 프로그램은 누구나 집에서, 아니 스마트폰을 들고 나갈 수 있는 어느 곳에서나 작곡 및 녹음을 가능하게 했다. 심지어 실제 악기를 연주하지 못하더라도 마우스 클릭만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다. 오직 프로그래밍으로만 작업되는 EDM은 가장 인기있고 영향력이 큰 장르다. 음악 파일이 담긴 USB하나만 들고 월드 투어를 다니는 스타 DJ들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공연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도 낳고 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광하는 팬들또한 늘리고 있다. 여기까지는 어쨌든 인간의 디렉팅, 컴퓨터의 오퍼레이팅이라는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래의 컴퓨터는 인간의 창작력, 즉 디렉팅을 대체할 수 있을까. 


다시 알파고로 돌아가자. 알파고의 원리는 딥 러닝이라는 개념을 활용, 수많은 바둑의 기보를 분석하여 경우의 수를 체득하고 실전에서 ‘판단’을 통해 한 수 한 수를 두는 데 있다. 이 원리를 음악에 적용한다면? 2007년 발매된 음반 한 장이 이 물음의 답에 대한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엄밀히 말하자면 글렌 굴드가 ‘직접' 연주한 게 아니다. 이야기는 이렇다. 


프로그램이 글렌 굴드의 1955년 레코딩을 분석했다. 그래서 당시의 레코딩 기술로 녹음된 ‘음원’을 배제하고 스튜디오에서 울리는 그의 연주만을 남겼다. 이를 데이터로 만들어 이 데이터에 의해 작동되는 피아노가 오리지널 연주를 ‘재현’했다. 어떤 건반을 얼마나 길게 눌렀는지는 물론이고, 건반을 누르고 페달을 밟는 물리적 과정까지 모두 고스란히 이 피아노는 연주했다. 따라서 1955년 뉴욕 CBS 스튜디오에서 울리던 글렌 굴드의 피아노가 2006년 토론토의 CBC 스튜디오에서 ‘원음’ 그대로 되살아났다. 그 연주를 녹음한 게 이 음반이다. 말하자면 이 음악에서 글렌 굴드는 일종의 설계도 역할을 한 것이다. 


이 설계도가 쌓이고 쌓인다면? 즉, 슈퍼 컴퓨터를 통해 인간이 만든 모든 악보와 음반을 ‘딥 러닝’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음악적 이론 뿐만 아니라 연주자들의 습관, 위대한 창작자들의 패턴 등 ‘이론 바깥의 영역’까지 습득해낸다면? 결국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첫 승을 거뒀듯, 최상위급 음악 재능을 가진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음악 이상을 ‘창작’해낸다면? 그 음악이 인류를 열광하게 한다면? 답은 하나다. 예술, 영감, 감성같은 ‘숭고한’ 개념은 뿌리채 흔들릴 거다. 그런 세계가 <터미네이터>일지 <바이센테니얼 맨>일지는 알 수 없을지라도, 상위 000.1프로의 재능을 인공지능이 위협하는 현실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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