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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드릭 라마, 그리고 <프로듀스 101>

주체와 대상의 풍경

지난 16일 (한국시간) 열린 그래미 어워드 최대의 화제는 테일러 스위프트, 브루노 마스 등 주요 부문 수상자가 아니었다. 힙합 부문 5개상을 휩쓴 켄드릭 라마였다. 뉴욕타임즈, 피치포크, 롤링스톤, 가디언 등 서구의 주요 매체들이 일제히 2015년 최고의 앨범으로 뽑은그의 세번째 앨범 <To Pimp Butterfly>가 ‘올해의 앨범’을 받지 못한 게 첫째다. 각종 매체의 평점을 취합, 평균점수를 내는 메타크리틱 사이트에서 이 앨범은 최근 10년간 최고의 평점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이 앨범에 담긴 ‘How Much a Dollar Cost’를 2015년 최고의 노래로 꼽았다. 그래미에서도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노래를 포함 총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팝 역사상 마이클 잭슨의 <Thriller>다음이다. 그럼에도 보수적인 그래미는 이 앨범대신 테일러 스위프트의 <1989>에 올해의 앨범 트로피를 안겼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시상식 중간에 열린 그의 공연이었다. 죄수복에 수갑을 묶고 등장한 그는 창살안에 갖힌 연주자들, 사슬에 묶인 백댄서들과 ‘The Blacker The Berry’를 불렀다. 흑인 엔터테이너를 착취하는 백인 중심의 시스템을 비난하는 노래다. 그 후 무대에 거대한 불꽃이 피어 올랐다. 마치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축제를 연상하는 군무가 펼쳐졌다. 이 불꽃 앞에서 켄드릭 라마는 (흑인 기준에서의) 공허한 아메리칸 드림을 신랄하게 묘사하는 ‘Alright’를 쏟아냈다. 신들린듯한 그의 마지막 랩이 끝났을 때, 뒤편의 LCD에는 아프리카 지도가 떠올랐다. 그의 고향이자 힙합의 성지인  ‘캄튼(compto)’이란 문구와 함께. 객석 대부분을 차지한 백인 참석자들도 기립박수를 쳤다. 흑인 참석자들의 표정은 열광 그 자체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래미 역사상 가장 날선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낸 이 공연은, 힙합의 형식을 빈 말콤 엑스의 연설이요, 랩의 옷을 입은 저항시 낭송회에 다름아니었다. 음악 취향을 떠나,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저토록 강렬한 음악이 상업적 성과를 얻고 나아가 저렇게 보수적인 시상식 무대에서 세계를 향해 띄워지는 미국 음악 시장의 건강함을 새삼 확인했다. 


다음 날, 한국에서는 엠넷 ‘프로듀스 101’ 출연자들의 계약서 내용이 보도됐다. 백한 명의 아이돌 연습생 중 열 명을 뽑아 걸그룹으로 데뷔시키는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출연료는 한 푼도 지급되지 않는다. 또한 편집 등 기타 이유로 엠넷을 ‘명예훼손 등 어떠한 사유로도 본인 및 제 3자가 ‘갑’에게 이의나 민.형사상 법적 청구를 제기할 수 없다’ 쉽게 말해 노예 계약이다. 켄드릭 라마가 대변하는, 백인 지배하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하에서의 흑인 음악가와 다를바가 없다. 아니, 사실 더하다. 그들에겐 어쨌든 음악적 자유와 막대한 성공이 보장되니까.


한국에서 금수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소년소녀들이 신분상승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길 밖에 없다. 스포츠 스타가 되거나, 아이돌이 되거나. 안정이 사라지고 계급은 고착화되었으며, 밝은 미래가 안보이는 사회의 마지막 탈출구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세상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돌이 되고자 몰린다. 백 한명이라는 엄청난 출연진을 꾸릴 수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기인한다. 


그렇게 데뷔한다치자. 매년 오십 팀 안팎의 걸그룹이 데뷔하는 이 붉디 붉은 바다에서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얼마전 A.O.A가 데뷔 3년만에 첫 정산을 받았다. 이례적으로 빠른 케이스라고 한다. 몇 년을 활동해도 통장에 땡전 한푼 안찍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반증이다. 열정 페이도 이런 열정 페이가 없다. 그 와중에 쏟아지는 스폰서 제의, 수많은 갑질을 견뎌내면서 바늘 구멍보다 좁은 터널의 끝을 향해 몸을 드러내야하고 체중을 만천하에 공개해야한다. 아이돌 시스템이라는 컨베이어 벨트안에서 구르고 구른다.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산업, 그리고 남성들의 성적 대상화 안에서 소모된다. 누가 이런 상황을 노래할 것인가. 아니, 그 노래를 누가 세상의 스포트라이트 한 복판에서 울려퍼지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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