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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안의 밤

이래저래 작게나마 방송 활동을 한다. TV는 종종, 라디오는 꾸준히 나간다. TV보다는 라디오가 좋다. 물론  TV의 무시못할 장점들이 있다. 그 중 으뜸은 가족, 특히 부모님의 체면을 세워드리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나조차도 이 쪽의 문외한에게 나의 직업을 설명하라고 하면 난감할 때가 종종 있다. 본인도 그럴진데 부모님 입장에서는 어떻겠는가. 한량, 백수 등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TV란 확실히 편하다. 아들, 혹은 손자가 TV에 나온다고 하면 실체와는 상관없이 어깨에 힘을 주시며 남들에게 자랑하기 편해지니 말이다. 여기에 남들이 그 집 아들을 TV에서 봤다는 전화라도 받으신다면 당신들이 보다 의기양양해지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요즘 얼마 버니"라는 울적한 질문과 "언제 TV에 나오니"라는 막연한 질문이근황을 묻는 질문의 전부니 대충 사정이 짐작될 것이다. 


어쨌든, 누구나 그 일이 뭔지 아는 직업을 가지는 건 효도를 위한 쉬운 방법중의 하나임을 나는 이 일을 10여년째 하면서 깨닫고 있다. 그 외에 TV의 장점은 출연료가 라디오에 비해 높다는 것 정도 말고는 없다. 이해타산이 빠른 사람들은 TV출연 경력을 바탕으로 다른 ‘부가가치’를 쉽게 잘 만든다고 하는데, 그런 쪽으로는 영 머리가 돌지 않아 부가가치를 생산해본 적이 없다. 사실 원채 무심한 편인데다가, 나 자신을 포함한 친한 친구들이 모두 TV를 전혀 안 보기 때문에 얼굴이 팔린다는 걸 잘 의식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그런 스스로의 무심함을 질타하게 된 계기는 2013년 봄 미국과 캐나다 투어를 했을 때 였다. 


미국의 짜고 기름진 음식에 질려 있을 무렵, 한인 식당에 갔다. 눈물을 흘리며 김치찌개와 곱창전골을 먹고 계산을 하는데 갑자기 사장님이 종이 한장을 내미는 것이었다. 사인을 해달라는 것이다. 카드 사인 말고, 식당 벽에 붙여놓는 그 사인. 실로 당혹스러웠다. 일행이 다 뮤지션들이라 그들이 사인 요청을 받는게 당연한데 왜 나에게… 이유는 간단했다. 일행 중 노 브레인을 제외하면 TV에 얼굴을 비치는 인사들이 아니니까.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교민들은 왠만한 한국인들보다 훨씬 한국 방송을 더 열심히 본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인 마트에서 카트를 끌고 다니다가 엄마 또래의 교민에게 사진 촬영을 하자는 부탁을 받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테니까. 한국에서 마트나 식당에서 누가 알아보는 일은 없었으니까. 기분이 안 좋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신기한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굳이 느끼지 않아도 되는 부담역시 생겼다. 그 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이역만리 타향에서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이를 알아보게 하는 TV의 위력이란 걸 처음으로 실감했다. 


하지만 라디오는, 그런 불편을 겪어 본 적 없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방송을 하는 이유는 보다 쉽게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에 비해 품도 훨씬 덜 든다는 잇점도 있다. TV에서는 고작 몇 십 초로 줄여서 해야할 이야기를, 라디오에서는 30분씩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불필요한 유명세는 겪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청취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건 라디오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일개 출연자인 나도 청취자들의 반응에서 따뜻함을 느끼는데 하물며 디제이들은 어떻겠는가. 라디오 디제이를 맡게 된 뮤지션들이 하나같이 방송을 하면서 우울증이나 무료함을 많이 극복할 수 있었다 말하는 건 빈말이 아니다. 

꼭 11년전 이 맘때, 처음으로 라디오 게스트를 시작했다. 이런 저런 프로그램들을 거쳤다.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할 말을 대본처럼 일일히 적어서 나갔던 첫 방송, 녹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긴장했는지 바들바들 떨었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아침 생방송에 늦어 입구에서 스튜디오까지 뛰어갔다가 경련이 일어나 오히려 말을 거의 못했던 일도 있었다. 촛불 집회 정국 당시, 연행을 당하자 함께 방송을 하던 디제이와 프로듀서가 분개하여 ‘개념 멘트’를 날리고 U2의 ‘Sunday Bloody Sunday’ 를 틀었던 건 살짝 머쓱한 기억이기도 하다. 간혹 연애를 하게 되면, 방송을 통해 사심이 깃든 선곡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한 10년, 라디오 근처를 배회하며 많은 것들에 익숙해졌다. 그래도 개편만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일’을 그만한다는 느낌보다는, ‘사람들’과 멀어진다는 느낌 때문이다. 재작년 가을, 3년간 나가던 프로그램이 개편이 됐다. 김창완 아저씨가 진행하는 방송이다. 피디와 담배를 피우며 개편을 통보받았을 때는 그런가보다, 했다. 그 후 어느 날 우연히 이태원의 한 술집에서 아저씨와 마주쳤다. 보드카 한 병을 사주시며 아저씨는 말했다. “섭섭하지?” 의연함을 연기할 수 있는 나이에 충분히 달했지만, 그 땐 그럴 수 없었다. “섭섭하네요.” 최장기간 출연했다는 이유였는지, 혼자 인생의 롤 모델로 생각하고 있는 분을 매주 볼 수 없다는 이유였는지, 오랜 시간 쌓아온 청취자들과의 정 때문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규정된 관계의 틈 사이에는 다른 많은 관계들이 존재한다. 이름을 갖지 않은, 괄호속의 관계에는 역시 괄호속의 감정이 존재한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의외로 많은 것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 날 밤, 나는 여느 개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괄호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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