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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어

오감의 맛

맛있다는 건 무엇인가. 달고 짜고 시고 쓰고 맵고, 이 오미(五味)의 강약과 조화일 것이다. 지방의 고소함, 아미노산염의 감칠맛 역시 맛의 요소다. 그 외에도 담백한 맛, 진한 맛 등등... 대부분이 공감하는 맛들이 있다. 공감대의 영역을 벗어났을 때 맛은 사라진다. 단어의 기의가 기표에 부합하지 않거나 혹은 과도하게 넘쳐났을 때, 우리는 맛없다는 말을 쓴다. 이걸로 충분한가. 물론 그럴 리가. 세상에는 맛있음과 맛없음의 어느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 맛이 존재한다. 그 맛은 취향을 탄다. 부합하는 자에게는 그 맛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침샘을 활성화시키고 부합하지 않는 자에게는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다.


단어를 던진다. 홍어. 침이 고이는가? 아님 고개가 저어지는가? 나는 전자다. 한 개의 히읗, 두 개의 이응, ㅗ와 ㅓ. 총 다섯 개의 자음과 모음이 결합할 때 나는 아득해진다. 넓을 홍(洪)을 써서 홍어다. 살점의 색때문에 붉을 홍(紅)을 쓸거라 생각했는데 몸통이 가오리처럼 넓직하다 보니 그렇게 불렀나 보다. 어원은 아무래도 좋다. 난 그저 그 두 글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으로 내뱉기도 전에 침이 용천수처럼 샘솟는다. 이제 글을 시작했는데 모든 걸 작파하고 먹으러 가고 싶어진다. 홍어의 맛을 뭐라 한 단어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호불호가 강한 맛. 타협이란 없다. 


가을과 겨울의 어느 틈바구니, 나는 안양에 있었다. 홍대 사는 사람이 안양까지 갈 일은 전혀 없다고 해도 좋다. 영업사원도 아니고 전도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페스티벌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안양같은 수도권 도시에 제철 해산물이 날리도 만무하고 가르침을 청할 스승이 있을…수는 있겠다. (그렇다고 안양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안양시민 여러분은 때리지 말아주세요.) 홍대에서 안양까지는 물경 한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것도 퇴근길의 1호선을 타고 가야한다. 왠만한 맛집이라면 서울에서의 대안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홍어라면 말이 달라진다. 


나로 말하자면, 오직 홍어를 먹겠다는 이유로 목포까지의 길고 긴 발걸음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다. 목인주점, 금메달식당 등 목포의 흑산 홍어 명가를 정복했을 때의 기분은 에베레스트와 K2를 정복한 알피니스트의 심정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제보가 들어왔다. 안양에 죽여주는 홍어집이 있다고. 설마 안양에? 다른 홍어 매니아도 비슷한 첩보를 날렸다. 수도권에서는 역대급이라고. 그래서 갔다. 원래 같이 다니는 홍어 매니아 친구들이 있지만 죄다 공연 준비 하느라 꾸리질 못했다. 때마침 안양에서 급모임이 생겨서 메뉴를 홍어로 바꿨다. 홍어를 경험해보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다. 


몇 번인가, 홍어 미경험자들을 데리고 먹으러 간 적이 있다. 홍어는 단호한 음식이다. 체험의 시간, 표정의 변화가 그만큼 확실한 음식도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불행하다. 그 몇 번의 경험 중 나로 인해 홍어의 세계에 개화를 했다는 이를 만난 적이 없다. 늘, 히말라야 정상에서 하품이나 하는 알피니스트를 보는 셰르파의 기분을 느껴야 했다.  검증된 집도 그러할 진데 나조차 가본 적 없는 곳을 홍어 초행자들과 함께 한다는 건 모험이다. 홍어 연대의 제보자들을 믿을 수 밖에. 국내산 삼합을 시켰다. 홍어를 닮았으며, 스스로를 홍어 연구소장으로 일컫는 사장님이 접시를 네왔다. 반찬은 단촐했다. 콩나물과 미나리가 전부였다. 그리고 홍어와 삼겹살, 5년된 묵은지의 등장. 때깔이, 때깔이 남달랐다. 洪魚가 아니라 紅魚라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빛이었다. 


사장님의 인도에 따라 한 점을 소금에 살짝 찍어 50번을 씹었다. 향기롭게(반어법이 아니다) 삭힌 홍어에서 암모니아를 머금은 입자가 안개처럼 퍼져나갔다. 우흡, 기침 비슷한 것을 한 후 찌그러진 양은잔의 막걸리를 쫙 들이켰다. “이게 진짜 홍어 먹는 법이지라” 사장님은 말했다. 그 후 본격적으로 홍어를 탐했다. 묵은지와 수육에 삼합으로도 먹고, 홍어회만 먹기도 했다. 뿌듯했다. 배를 어느 정도 채웠을 때 초행자들의 표정은 마치 시나이산에서 석판을 득템한 모세의 그것과 같았다. 홍어는 커녕 아직 제대로 된 평양냉면도 못먹어본 이십대 초반 친구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때 나는 한겨울의 에베레스트 북벽 통해 알피니스트를 정상에 올리고 만 쉐르파의 기분이었다. 홍어계의 텐징 노르게이가 된 것이다. 이 날의 피크는 홍어애였다. 어지간한 홍어애는 왠만한 푸아그라의 뺨을 때리고도 남는다. 이 집의 홍어애는, 왠만한 푸아그라의 뺨을 때리는 어지간한 홍어애의 뺨을 난타하고 말았다. 이런 홍어를 맛봤다는 것만으로도 아직 친하지 않았던 우리는 기꺼이 친구라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릴 땐 홍어의 맛을 몰랐다. 주변에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자연히 접할 기회가 없었다. 혹여 그 전에 먹어봤나 기억을 짜봐도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최소한 아무런 인상이 없었던 건 분명하다. 선플도 악플도 아닌 무플이었다니, 안타깝지 않은가. 만약 그 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미래에서 온 내가 아닌 척 하고 그 때의 나를 안양으로 데리고 가고 싶었다. 과거로 돌아가서 하고 싶은 일이 고작 홍어세계로의 인도라니 한심하다 생각하겠지만. 주변에 몇몇 홍어 매니아들이 있다. 가히 고수라 부를 수 있는 형도 있다. 그 언젠가, 전주에서 목포로 그 형과 훌쩍 떠났었다. 덕진 주점, 금메달 식당에서 먹었던 홍어가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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