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정말, 진짜, 그냥

by 여노노

“혜진아 너 너무 예쁘다.”

“선배님, '너무'는 부정어라서 예쁘다 앞에는 '정말'이라는 긍정 부사를 써야 해요.”


중간고사가 끝나고 떠난 총학생회 엠티에서, 본인을 예쁘다고 칭찬하는 나의 말에 국문과 신입생 후배가 거나하게 취해 열변을 토했다. 분명 그때의 나도 취했었을 텐데 거의 십 년이 지나도록 이 한 문장이 뇌리에 박혀있는 것을 보니 꽤 인상적이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면 신경 쓰는 부사가 '너무'와 '정말'이다. (cf. 이후 2015년 국립국어원에서 용례를 확대하여 '너무 예쁘다'도 옳은 문법이라고 수정하였다)

친구가 수줍게 청첩장을 보내왔다. 밝은 모습 뒤 서로의 아픈 가족사까지 전부 헤아리고 있는 친구의 청첩장은 받자마자 눈물이 차오른다. 힘든 시간을 온몸으로 겪어 내고 마침내 행복한 친구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안도의 마음이다. 고생했다는 응원이다. 그저 축하한다고 하기엔 친구를 향한 나의 마음이 다 담기지 않아 섭섭하고, 이유를 덧붙이기엔 신기하리만큼 형용할 수 없어 그냥, 진짜, 너무 축하한다고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넘치게 벅찬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담기 위해 고르고 골라 겨우 내뱉는 단어의 견식이 이렇게나 좁았다니. 적재적소에 꼭 맞는 부사를 선택하여 감정의 까닭을 소명하는 건 퍽 어려운 일이다.

거진 2년 만에 이모를 만난 점심 식사 자리에서 입사 사실을 전했다. 이모는 단박에 "너무 잘 됐다. 진짜 잘 했다."라고 말했다.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도 너무진짜에 이모의 진심이 담겨 있다. 그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 고작 너무, 정말, 진짜, 그냥 속에 온갖 감정을 다 담아야 했던 나의 축하를 받는 친구의 마음도, 이모의 축하를 받는 나의 마음과 같았을까. 비록 흔하디 흔한 부사일지라도 가벼이 쓰지 않으리라 서맹한다. 너무, 정말, 진짜의 마음을 담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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