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점심시간, 최근 방송하는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요즘 같은 불황엔 양질(良質)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당도한다. 양질이 무엇일지 고심해 보지만 이보다 주관적인 단어가 있을 리 없다. 맡은 작품을 전반적으로 케어하고 QC(Quality Check)를 통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이 피디의 역할이라고 강조하신 팀장님 말씀을 반추한다. 새삼 나의 역할이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양질과 악질을 나누는 경계는 피디 개인의 기준과 맞닿아 있다니.
나는 어떤 기준점을 가지고 있을까. 고품질을 알아볼 수 있는 피디일까. 양질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眼目)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눈 목(目)과 그칠 간(艮)이 합쳐져 있는 눈 안(眼)과, 눈 목(目). 두 개의 시선이 함께 그칠 만큼 대단한 것. 그만큼 좋은 사물을 분별하는 견식. 사람을 보는 안목, 영화를 보는 안목, 드라마를 보는 안목, 글을 보는 안목, 아름다운 것을 보는 안목, 가치 있는 것을 보는 안목, 돈을 보는 안목.. 세상만사를 보는 미적 취향의 깊이를 두텁게 쌓고 싶다는 의미다.
가끔 전율을 일으킬 만큼 잘 만든 수작을 만나면 온몸에 질투가 스민다. <헤어질 결심>이 그랬다. 남녀의 멜로가 이토록 절절하고 세련될 수 있다니. 한 번만 들어도 뇌리에 박히는 대사와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말러의 교향곡은 또 어떻고. 영화 속 미술은, 카메라 앵글 속 구도는, 찰떡같이 들어맞는 정훈희의 '안개'라는 음악은... 종국에는 이 모든 것을 구현한 작가, 미술감독, 촬영감독, 음악감독을 알아본 박찬욱의 '사람을 보는 안목'에까지 시새움이 인다.
질(質)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방법은 경험이다. 천연 섬유 옷과 합성 섬유 옷을 모두 입어본 경험이 있어야 질 좋은 옷에 대한 자신만의 척도를 만들 수 있듯이, 기준은 폭넓은 경험을 통해 체화된다. 안목을 축적할 수 있는 일에 나의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겠다는 다짐이다. 나의 안목으로 꽉 채운 작품이 세상에 오래오래 남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