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철학자가 어때서?

by 여노노

언제부턴가 지인과의 모임에서 주제로서 한 자리를 꿰차는 건 가십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함은 동의하지만, 어느 트랜스젠더의 사기 행위나 연예인 마약 스캔들의 진위 여부는 이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무관심을 넘어 피로하다. 고도화된 알고리즘 시대에 들어섰음에도 웬만한 의지로는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를 거스를 수 없다. 편중된 정보만 습득하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 해야 할까.

한동안 잘 한다는 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생각주머니에 물음표를 잔뜩 담아 다니던 때가 있었다. '잘 하는 것'에서 '잘'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동경하고 있는 자신이 표리부동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에게 틈만 나면 물었다. 마치 미운 네 살 같았다. 그때, 잘 한다는 건 좋은 질문을 한다는 거라고 일러준 선배의 조언을 듣고서야 물음표를 거두었다. 그날 이후로 '잘'은 '좋은 질문'이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상대로 하여금 고심하도록 하는 중심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반증일 테니.

음악을 팔겠다는 목표만 가지고 미국으로 넘어가 맨땅에 헤딩하며 말 그대로 '버티던' 순간에도, 일과를 마치면 시시콜콜한 주제로 시작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밤새도록 토론했다는 이들의 우정이 부럽다. 그 시절의 철학 마라톤에서 사람이 논리로 설득될까?​라는 질문을 곱씹어, 애초에 맞는 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논리로 설득할 수 없다는 친구의 대답을, 20년이 지난 지금에야 인정하게 됐다는 무용담이 서로에게 남아있다는 사실이 부럽다. 이십 년 간 자신을 관철할 핵심 질문을 던진 친구가 곁에 있다니.

경기도 김포시가 서울시 김포구가 되는 것보다, 50년 만기 주택 담보대출이 막혔다는 사실보다, 인생의 뼈대를 세울 물음을 던지는 데에 주력을 다하기로 했다. 혹여나 너무 진지하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으련다. 내가 자신에게 철학자가 되어주면 되지. 내가 친구들에게 방시혁이 되어주면 되지. 쉬이 휘발되는 가십보다 오랜 시간 묵직하게 들어앉을 진리를 탐구하기로 다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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