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여운 수능

by 여노노

수능은 선명히 기억나는 인생의 순간 중 하나다. 수험생의 덕목 중 하나가 예민함인 만큼 한껏 날카롭고 까칠해진 나는 조금만 건드려도 수도꼭지가 열린 듯 눈물이 흐르곤 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도합 십이 년의 시간을 이 하루를 위해 달려온 셈이니 그 무게는 엄청났으리라.

정시로 승부를 보겠다고 내신에 일희일비하지 않다가 정시건 수시건 어차피 같은 맥락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꽤 늦어버린 뒤였다. 수능을 약 백일 남겨놓고 수시에 올인하겠다며 닥치는 대로 논술학원을 알아보다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왜 나는 이걸 혼자 다 알아서 해야 하지? 왜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지? 억울하기만 했다. 누구에게라도 기대고 싶었지만 혼자였다. 아니, 나조차도 자신을 믿지 못하였으니 혈혈단신 낭떠러지에 서있는 꼴이었다.

수시모집을 공략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더라도 수능이 중요했다. 수능 최저등급을 맞추기 위해 논술을 준비하던 시점부터는 최저등급을 맞출 가능성이 높은 과목에만 온 힘을 다했다. 수리(가)형 or 과학탐구영역 중 최소 1개를 포함한 2개 영역 2등급 이상이어야 했기에 언어, 외국어, 생물 1, 생물 2만 무작정 팠다. 언제나 숙원사업이었던 수리와 물리, 화학은 과감히 내려놓았다(이공계 호소인). 수능을 일주일 남겨두고 성당에서 고3 수험생들을 위한 신부님의 안수기도가 있었는데, 이때 흐르던 눈물은 아마 불안이었을 테다. 혹시라도 정시모집까지 가게 되면 어떡하지. 수포자의 길이 잘못된 선택이었으면 어떡하지. 약간의 바람에도 쉬이 흔들리었다.

수리(가)형과 과탐을 선택한 여자 수험생이 몇 없어서인지, 집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학교에서 수능을 보게 됐다. 예비소집일을 다녀오니 오히려 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잠들기 전엔 내일 준비해 갈 도시락 메뉴를 정해야 했는데 인터넷에 '수능 점심 도시락 메뉴' 따위를 검색하며 가득 들어차는 눈물을 꾹 참아내었다. 중3의 어린 수험생활에 엄마가 싸주던 도시락에 비교해서 내가 준비한 도시락은 너무 초라했다. 분명 똑같은 보온 도시락에 담았는데도 내 도시락에선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들어찬 교실에 앉아 도시락을 펼쳐 놓고 졸리지 않을 만큼만 먹던 수능 당일 점심시간의 싸늘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시험이 다 끝나고 형용할 수 없는 공허함에 휩싸였다. 시험장을 나오며 가장 처음으로 목도한 깜깜한 하늘이, 머릿속을 뒤덮은 '뭐야, 이게 끝이야?'라는 한 문장이 허무함을 더했다. 수능이 끝나면 후련한 마음에 방방 뛸 줄 알았는데, 여태까지의 피 땀 눈물은 고작 오늘 하루를 위한 것이었다니 참으로 허탈하고 쓸쓸했다. 수능은 신기루 같은 것. 수능이란 단어에 부여했던 하중이 덧없어지던 마음으로 수능을 바라보았다.

참 신기하게도 수능 당일이 되면 갑자기 한파가 찾아온다. 한껏 옷깃을 여미고 수능의 공허함을 복기하며 퇴근하던 작년 수능날엔 유독 아름다운 사랑을 보았다. 시험 치르느라 고생했다고 꽃다발과 따뜻한 커피를 사서 마중 나오는 예쁜 아빠를 가진 친구의 마음은 꽉 들어차 있을 테지. 수능은 따스함으로 기억될 테지.

여러 가지로 미숙했던 나의 수능이 가엾다. 가엾어서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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