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狡)와 활(猾)

by 여노노

오래된 중국 문헌인 ‘산해경(山海經)’에는 ‘교(狡)’ ‘활(猾)’이라는 동물이 그려져 있대. 산해경, 어디서 많이 들어봤지? 맞아.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탕웨이)가 들고 다니며 돌보던 할머니에게 읽어주던 책이 바로 산해경이야.

교(狡)는, 생김새는 개인데 온몸에 표범처럼 얼룩무늬가 있고 머리에는 쇠뿔을 달고 있어. 개도 아니고 소도 아니고 표범도 아닌 요상한 동물인 거지. 근데 이 친구가 특별한 것이, 교가 나타나면 그 해는 엄청난 풍년이 든다지 뭐야. 그래서 사람들은 매년 교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랐는데 얘가 얼마나 간사한지, 나타날 듯 말 듯 온 마을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우다가 끝끝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대. ​


그런 교에게는 활(猾)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활은 꼭 사람처럼 생겼음에도 온몸에 돼지 털이 숭숭 나 있는 모습이야. 주로 동굴 속에 살면서 겨울잠을 아주 길게 자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더라고. 활은 교와 비슷하지만 교보다 훨-씬 간사하고 비열해서 다들 혀를 내두를 정도였대. 활이 소리를 한 번 지르면 도끼로 나무를 찍는 듯한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와 함께 활이 나타나면 교와는 반대로 온 천하가 뒤집히듯 큰 난리통에 빠졌다네?​


그러니 사람들은 교를 보려고 그토록 애를 쓰면서도 활은 털끝만큼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겠지. 근데 그 시절에도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었을까? 교와 활은 언제나 붙어 다녔대.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풍년을 위해 교를 보려면 반드시 활이 가져오는 큰 난리를 겪어야만 했어. 이 둘은 호랑이처럼 큰 짐승을 만나면, 살아남으려고 공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연체동물인 것처럼 변신을 할 수 있었대. 순진한 호랑이는 눈앞의 교와 활이 살코기인 줄 알고 씹지도 않고 꿀떡 삼켜버리곤 했는데 호랑이의 뱃속에 들어간 교와 활은 내장을 파먹으며 살았다는 거야. 결국 내장이 파 먹힌 호랑이가 죽으면 그제야 밖으로 유유히 나와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서로를 마주 보고 호탕하게 웃는다는군. 이 모습에서 ‘교활한 웃음’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거, 알고 있니? ​


교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개를 보고도, 소를 보고도, 표범을 보고도 “교를 봤다”고 너도나도 외치곤 했대. 지금도 똑같이 풍년을 물어오는 교는 만나고 싶어 하면서도 재앙을 불러오는 활은 피하고 싶어 하지 않니.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본능인 것 같아.

하지만 이 둘은 각각 따로가 아닌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해. 교와 활은 항상 붙어 다니기 때문에 풍년을 만나고 싶다면 난리도 함께 겪어야 한다는 말이야. 살면서 이들을 대면하더라도 분별력 있게 호로록 집어먹지 않을 혜안을 길러야 한다는 사실도 꼭꼭 유념하자. 혹여나 네가 변신한 교와 활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순진한 호랑이처럼 꿀꺽 삼켰다 할지라도, 풍년에도 난리에도 내장이 파 먹히는 고통에도 초연할 수 있다면, 자신의 내장을 내어주고 텅 빈 채로 살아가는 단련이 되었다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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