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없이 애틋한 관계

by 여노노

우리는 사회생활을 함께 시작했다. 그녀로 인해 드디어 '회사 동기'가 생겼다. 본격적으로 현장에 투입되기 전, 하나같이 입을 모아 업무가 엄청 고되고 거친데 버틸 수 있겠냐는 말로 겁을 주었는데, 그보다도 옆에 있는 이 동기와 잘 지낼 수 있을지가 백배는 더 걱정되는 일이었다. 주변인과 환경에 의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 탓에,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고서는 버티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음이다. 그러나 걱정이 기우로 바뀌는 건 찰나였다. 밝고 명랑한 동기의 성정 덕택에 우리는 둘도 없는 친한 친구가 됐다. 스타트 라인에 함께 서있는 처지였는데도 그녀는 동생 역할을 자처했다. 훗날 팔로워를 어색해하는 나의 성향을 간파하고 영리한 작전을 펼친 것인지 물었는데 내 앞에서는 단 한 번도 잇속을 챙기려는 계산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깜찍한 답변으로 뭉클하게 했다. 나를 진심으로, 아주 많이 좋아했고 그 마음의 크기만큼 따랐다.

나보다 세 살 어린 동기는 그즈음 사회생활을 위해 대구에서 올라와 첫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이십 대 후반이 되도록 경상도 방문은커녕 KTX 마저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서울 토박이인 나를 안타까워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나에게 대구의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겠노라는 다짐을 내뱉곤 했다. 그때마다 "언니 나랑 대구 갈 거지? 대구 오면 숙소 잡을 필요 없이 우리 집에서 자면 되고, 대구 사람들이 인정하는 찐 막창 맛집에 데려갈 거고..." 하며 언제가 될 수 있을지 모를 미래의 그날을 구체적으로 약속했다.​


동기는, 오래된 학생회 생활로 단련한 중고 신입인 내가 자신보다 능숙하다고 생각했는지 매일 칭찬을 해주었다. 언니가 너무 잘 해서 진짜 다행이야, 나는 언니가 다 해줘서 살았지 뭐, 언니한테 많이 배우고 있어, 내가 언니에게 도움이 못 되어 미안해, 언니는 정말 대단해... 진심이 전해지는 칭찬은 머쓱하면서도 뿌듯했다. 동기가 나를 좋아하는 만큼 나도 동기가 좋았는데도 그녀가 나의 완벽주의 기준에 못 미칠 땐 여과 없이 미워하는 마음을 내비쳤다. 내가 부족하다 생각하는 일을 척척 해내는 동기가 고마우면서도 시기심이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사수에게, 선배에게 칭찬받는 건 나였으면 하는 옹졸한 마음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언제나 부족한 나를 좋아했다. 언니가 최고라고 말했다. 종국에는 동기를 오롯이 좋아하지 못하고 자꾸만 다른 마음이 스며드는 자신이 너무 구려서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마지막 촬영을 보름쯤 앞둔 어느 날, 동기에게 갑작스레 어머니 부고가 날아들었다. 경상남도 사천 촬영으로 출장을 나왔다가 난데없는 소식에 헐레벌떡 대구로 떠나간 그녀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모를 만큼 바빴다.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엄마를 떠나보내는 마음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더 가슴이 아렸다. 촬영장을 비울 수 없어 장례식장에도 가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미안해서 눈물을 훔쳤다. ​


혹독하게 첫 작품을 끝낸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다. 나와 헤어지고 여기저기에서 상처를 많이 받은 그녀는 서울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대구로 내려가 가족들의 품에 있기로 결정했다. 거리가 멀어지며 간헐적으로 주고받던 연락은 뜸해졌고, 급기야는 연락이 끊기며 애틋함은 곱절이 됐다. 나에게 대구는 곧 동기였기에 대구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동기가 떠올랐다. 잘 지내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마지막 연락에선 새로운 곳 취직 준비를 하고 있다 했는데 취직은 했는지... 부산에 내려가는 길에 동대구역을 지나치기만 해도 그녀가 생각나 마음 한 켠이 쓰렸다.

그랬던 동기가, 오랜만에 연락해 근황을 전했다. 너무나 연락하고 싶었는데 일방적으로 끊어낸 게 미안해서 오래도록 고민했다고, 보고 싶고 생각나서 연락했다고, 자신을 돌볼 여유조차 없던 삶에 다 내려놓았었다고. 그 문자 한 통에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속수무책으로 흐르는 눈물에 일하다 말고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화장실로 뛰어가기까지 했더라니까. ​


반가운 마음에 우리는 금방 만났다. 꽤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도 엊그제 만났던 사이처럼 편하다. 동기는 여전히 나를 좋아한다. 언니랑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투명한 마음을 전한다. 나도 너랑 같이 있는 게 정말 좋다고. 우리 사이를 소중하게 생각해 줘서 고맙다고. 나의 처음을 함께 기억하고 있는 동기가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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