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부터 미드에 심취했던 탓일까. 아메리칸드림 같은 걸 꿈꿔왔던 것일까. 언젠가부터 자신을 ‘한국을 떠나서 살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어렴풋하게 그려봄직한 미래는 항상 우리나라가 아닌 영미권이 배경이다. 나는 넷플릭스 헤드쿼터에서 일하는 유수한 직원이고, 남편과는 영어로 대화하며, 토끼 같은 아이들이 뛰어놀 마당이 있는 2층 주택에 살고 있다. 일과 가정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이상적인 모습.
대학생 때는 틈날 때마다 해외를 나갈 수 있는 구실을 찾았다. 해외봉사, 교환학생, 파견학생, 워킹홀리데이, 해외취업까지. 전술한 건 모두 좌절되었고 이룬 것이라곤 약 6개월가량 떠난 영국 어학연수가 전부다. 솔직하게 말하면 좌절도 아니다. 우리 집에선 이 비용을 감당해 주지 못할 거라 여겼기에 적극적인 시도조차 부재했다. 그런데도 떠날 사람이라는 스스로의 정의는 변함없었다. 그렇기에 내 나이면 으레 가질 법한 것은 욕심내지 않았다. 나의 집, 나의 차, 나의 애인, 나의 적(籍), 내 강아지, 처럼 이주를 할 때 눈에 밟히고 발목을 잡을 만한 요소들은 냉철하게 배제했다. 비혼, 비출산이라는 동향으로 자신을 휘감았다. 기회가 몇 번 있었음에도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는 게 좀 더 정확한 말이겠다.
안정을 꿈꾸었다. 작은 것에서부터 하나씩 차곡차곡 이뤄가며 안정을 찾아가는 주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시달렸다. 나는 떠날 사람이기에 이곳에서 무언가를 이루려 애쓰지 않기로 다짐했음에도, 불안정한 마음이 일렁이면 꼼짝없이 휘둘리었다. 안정을 애타게 염원하면서 죽어도 뿌리를 내리지 않는 아이러니는 무슨 견지일까.
떠날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가족이 버겁다는 데서 시작한다. 아무도 내 것이라 한 적 없는데 가슴 한 켠에 큰 짐을 짊어진다. 멀리 있기에 가족을 면밀히 들여다보지 못하는 데에서 생기는 죄책감과, 지척에 있으므로 비롯하는 버거움을 저울질한다. 아무래도 죄책감이 훨씬 가볍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곳으로 떠나왔다는 수동형 문장에 버거움을 내치는 것이다. 짐을 내려놓는 둔탁한 소음으로 비난의 화살이 혹여나 자신에게 향할까 벌벌 떨면서.
무소유로 포장된 사무친 불안의 가장 밑바닥까지 가 보고 나서야, 이곳에 남아 육중한 짐을 내려놓는 선택지를 고민한다. 굵고 탄탄한 뿌리를 내리겠다는 용기를 낸다. 미래보다는 현재에 초점을 맞춘다. 떠날 사람은 떠날 수도 있는 사람으로 변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