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락의 해부> 를 보고, 스포 있음
영화의 플롯은 아주 단순하다. 부부와 아들, 세 가족만 단란하게 살고 있는 외딴 산속 별장. 별안간 남편(사뮈엘)이 추락사한다. 남편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건 강아지 산책을 나갔다 돌아온 아들(다니엘). 과연 우연한 사고일까, 우발적인 자살일까, 의도된 타살일까? 남편이 타살이라면 그 용의자는 아내(산드라)가 된다. 아내는 피의자 신분으로 계속해서 법정에 선다. 그 법정은 영화의 제목처럼 추락을 낱낱이 해부한다. 타살이라고 보는 검사도, 자살이라고 생각하는 산드라도, 사뮈엘이 '어떻게' 그랬을까에 대해 논쟁한다. 이 사건에 증거라곤 사뮈엘 두부에 가격을 당한 상흔과 녹음 두 개밖에 존재하지 않기에 검사도 증인도 피의자도 전부 추측을 이야기한다. 산드라는 결백하다 말했지만 의문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결백을 증명하라 했다. '오줌을 안 쌌다고 말하는 사람은 안 쌌기 때문에 보여줄 증거가 없다. 오줌을 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당연히 쌌다는 증거를 내보여야 하지 않는가? 본질적으로 안 했다는 것은 증명할 수가 없다' 던, 무한도전 속 법정에도 있는 논리가 산드라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작가로서 활발히 활동하며 여태껏 집필한 소설, 남편과 열렬히 사랑에 빠졌지만 소원해진 현재의 관계, 성적 지향, 부부관계의 빈도와 같은 사생활,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일, 알고 지냈던 이들의 증언까지도 전부 드러내고 낱낱이 파헤쳐 납득시켜야만 결백을 입에 담을 수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끝에 다다라서도 이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없는 것이 가장 답답하면서도 제일 무서운 지점이다. 이 세상에 과연 진실이라는 게 있을까? 우리가 기억하며 판단하는 모든 것들은 과연 옳은 것일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부터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으로, 목덜미부터 머릿속 깊숙한 곳까지 죄여오는 두통에 시달렸다. 아마도 퍽 우수하다 자부하는 기억력을 토대로 어떤 한 사건에 억울함이라는 감정을 씌워 토해냈던 가장 최근의 행동 때문일 거다. 영화는 객관적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고 믿는 자신에게 의심의 시선을 보낸다. 동시에, 나의 감정을 재판에 회부한 타인에게 온갖 근거와 이유를 들어가며 스스로를 대변해야 했던 나를 상기시킨다. 영화의 어느 지점부터는 내가 산드라인지 산드라가 나인지 모를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이들이 주고받는 심문과 증언이 전부 나를 향하고 내 가슴은 과녁으로 변해 화살 달린 말을 전부 받아낸다. 그렇게 너덜거리는 마음과 지끈거리는 머리를 싸매고 누워서야 다시금 영화를 차분히 곱씹을 수 있다. 하나를 믿어야 하는데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땐 하나를 결정해야만 한다, 던 마르쥬의 조언처럼, 수많은 추측 속에서 진실을 찾을 수 없다면 우리의 몫은 오직 하나를 선택하는 것 뿐이라고. 나는 다니엘처럼 진실마저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어쩌면 그게 인간이 가진 모순이며 본질일 수 있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