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어공주>를 보고
어릴 적 나는 디즈니 공주에 푹 빠져 매일을 공주로 살았다. 공주의 삶이라 함은 공주 애니메이션 비디오를 틀어 두고 온 집안에 있는 비슷한 옷과 소품을 가지고 공주들의 모습을 재연하는 거다. 하도 돌려보아서 장면은 물론 대사도 노래도 달달 외웠겠다, 공주에 푹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게 하루의 일과였다.
내가 가장 많이 분했던 공주는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다.
만화 속 캐릭터들을 따라 하는 게 어찌나 즐거웠는지 어릴 적 나의 최애 음식은 우동이었을 정도다.
신데렐라가 무도회에 갈 수 있게 생쥐 친구들이 신데렐라에게 드레스를 만들어 줄 때, 앞니로 실을 까득 잘라내는데 우동 면을 앞니로 자르면 내가 신데렐라 친구 생쥐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면 인어공주를 매우 좋아했지만 만화를 보면서 동시에 따라 하기는 조금 어려웠다. 엄마에게 똑같이 재현해 달라고 꽤 자주 썽을 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엄마라도 물속에 있는 공주를 물 밖에서 만들어주기는 쉽지 않았을 터다. 욕조에 물을 한가득 받아놓고 누워 애써 기른 머리를 물미역처럼 흔들어대는 게 인어공주 놀이의 전부였지 아마.
이렇게 귀여운 추억을 가지고 있는 <인어공주>가 30년이 훨씬 지나 실사화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공주가 새롭게 만들어져 개봉한다니, 나는 이 실사화를 누구보다 반겼었다. 그러나 주인공을 흑인으로 캐스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제작이 시작되자마자 잡음에 휩싸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디즈니의 PC주의에 찬성하는 사람으로서 흑인 에리얼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인어공주가 처음 개봉했던 1989년과 2023년 현재는 아주 많이 변했고, 그에 맞춰 어린이들에게도 새로운 가치 - 다양성 - 를 심어줄 필요가 있지 않은가! 그저 에리얼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어릴 적 추억을 살려 <인어공주>를 IMAX로 관람했다. 개봉 후 평이 썩 좋지 않았지만 워낙 제작 전부터 잡음이 많았던 작품이라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무려 아이맥스로! 이끌었다. 바닷속을 어떻게 CG로 구현해 냈을지 기대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원래의 <인어공주>의 스토리라인과 장면을 그대로 가져온다. 그러나 묘하게 재미가 없다. 왜일까?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내내 고민했다. PC 함을 살리기 위해 왕자에게 ’첫눈에 반한‘ 여성의 모습을 걷어내어 트라이탄(아빠)이 에리얼에게 극대노하고 벌하는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것은 둘째 문제다. 2023년 <인어공주>에는 표정과 감정이 부족하다. 에리얼을 연기한 할리 베일리는 물론 CG로 만들어낸 세바스찬(꽃게)과 플라운더(물고기), 스커틀(갈매기)마저도 표정이 전혀 없다. 에리얼은 그 누구보다 자기 목표와 열망에 솔직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마녀와 거래까지 하는 인물이다. 심지어 에리얼은 다리와 목소리를 교환하고 육지에서 벙어리의 삶을 선택하는데, 그토록 염원하던 다리를 처음 발견한 에리얼의 얼굴은 ’언더더 씨‘를 부르던 때와 별 다름이 없다.
바닷속이 너무 어두웠다, 바닷속 CG가 너무 어색했다 등등 몰입을 해친 기술적인 요소들도 많다. 그렇지만 가장 기본 중 기본인 주인공에 이입하고 러닝타임 내내 호흡하며 ‘올라탈 수 있는 명분’을 주지 못했다. 디즈니가 흥행 실패의 원인을 섣불리 PC주의 때문이었다고 내리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