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리멘탈>을 보고
일상의 권태 속 미처 보살필 겨를이 없어 한 겹 아래로 덮어두었던 마음을 토닥이고 싶은 날에, 어김없이 찾게 되는 건 픽사 애니메이션이다. 지지고 볶는 예사로운 날 속 어쩌다 작고 투명한 아가를 품에 안는 순간 콧 속을 간질이는 순수한 아가 냄새에 치유되는 것처럼. <인사이드 아웃>과 <코코>, <소울>이 그랬고, 최근 개봉한 <엘리멘탈>도 그 뒤를 이었다.
삼십 년이 넘는 인생에서 여태껏 난제로 남아있는 화두는 사랑이다. 다들 쉽게 쉽게 잘하는 것 같은데, 유독 사랑이 어렵다. 연인과의 사랑이 그랬고 부모와의 사랑도 그렇다. 친구의 애인이 두세 번씩 바뀌는 동안 쉬이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는 나를 타인과 비교한다. 아빠를 정말 사랑한 나머지 꼭 아빠 같은 사람이 아니면 결혼은 생각도 하지 않겠다는 친구의 결심을 들으며 아빠에 대한 사랑은커녕 미움이 가득 찬 내 마음을 번뇌한다. 이렇게 젊고 예쁜 나이가 아깝게 왜 연애를 하지 않느냐는 선배의 염려에 사랑이 힘겨운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반추한다.
<엘리멘탈>의 웨이드는 자신이 보고 느낀 그대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낸다. 앰버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예쁘다고 말하고, 앰버의 편이 되어준다. 전혀 다른 속성의 원소는 이루어질 수 없다며 웨이드의 사랑을 일축하는 앰버를 더 큰 사랑과 용기로 품어 안는다. 불쑥불쑥 보랏빛이 되도록 분노하는 앰버의 심연을 따스함으로 어루만진다. 그의 감정을 가만히 바라보다, 있는 힘껏 사랑을 말하는 웨이드에게 기백을 배운다. 마침내 사랑이 어려워 불안했던 마음 한 켠이 웨이드의 용기로 누그러진다. 그렇게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을 여유를 얻는다.
픽사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엔딩 크레딧에서도 사랑을 말한다. 영화를 만드는 기간 동안 태어난 스태프의 아이들(production babies)과 고인이 되신 분들(In loving memories)에 풍성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 엔딩 크레딧 속 이름에 담긴 공력을 알기에 지나칠 수 없게 된 직업병에서 발견한 사랑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