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막역한 고등학교 동창인 이모는 잠원동에 있는 아주 오래된 아파트에 살았다. 80년대 초반에 결혼하며 새 집에 둥지를 틀어 같은 곳에 쭈욱 살고 있다 했던가. 엄마는 나를 데리고 종종 잠원동 이모네에 놀러 가곤 했다. 이모네 집은 잠원역 근처, 우리 집은 화정역 근처. 같은 3호선에 위치한다. 비록 남북으로 끝과 끝에 위치해 있지만 중간에 갈아타지 않고 목적지까지 한 번에 당도한다는 사실이 엄마로 하여금 어린 나를 데리고 친구네 집을 방문할 용기를 가지게 했나 보다. 스크린도어도 없는 지하철 승강장에선 떨어질세라 내 손을 꼭 잡고 서서, 우리 엄청 멀리 가야 하니까 자리 보이면 꼭 앉아. 하고 여러 번 신신당부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꽤 오래도록 잠원동이 대전쯤 되는, 아주 먼 곳이라 여겼다.
잠원역에 내려 이모네 아파트까지 걸어가던, 햇살이 뜨거운 여름날을 기억한다. 실눈을 떠야 할 만큼 눈부신 볕. 온 사방을 메운 우렁찬 매미의 울음소리. 타는 듯한 더위는 빼곡한 나무 그림자 속으로 파고들게 했다. 목적지에 도착해 찬물을 마시며 땀을 식히면서도 씩씩한 매미 울음소리는 귀에 적확하게 들렸다. 이렇게 씩씩한 매미 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이모는 한가득 푸념을 늘어놓았다. 더운 여름엔 온 집안 창문을 다 열어놓을 수밖에 없는데 오래된 아파트라 매미 소리가 많이 난다고. 집이 오래된 거랑 매미랑 무슨 상관이냐 물으니 매미 유충은 땅속에서 십 년을 살아야 날개를 달고 나올 수 있어 그 동네에 매미가 많다는 건 낡았다는 뜻이라 했다.
이모는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새 아파트는 참 좋다고 했었다. 지금 집에 살게 된 지 벌써 이십 년째. 이모가 새거라 일컫던 우리 집도 이모네 집처럼 꼼꼼히 나이를 먹었다. 여름이면 이제는 우리 집에서도 힘찬 매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직도 매미 소리를 들을 때면 상상 속에선 잠시 잠원동에 다녀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