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Anger)는 나에겐 어려운 감정이다. 옛 회사의 사수는 화가 나면 전에 없이 침착하면서도 마치 시베리아에 온 듯 싸늘해지곤 했는데, 나와는 정 반대의 모습이라 그게 그렇게 좋아 보이는 거 있지. 갈등을 극도로 불편해하기에(갈등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최대한 일으키지 않으려 하지만, 화가 나면 마른 장작에 불 붙이듯 화르르 타오르는 터라 원치 않은 방향으로 불씨가 옮겨 붙어 곤란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한번 타기 시작하면 누가 물을 부어주기 전까지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다. 그렇게 활활 타고 남은 잔재를 보며 참 별로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의지로 아주 차갑게 꽁꽁 얼려 잠시 멈추는 사수가 부러웠으리라.
근래 들어 업무 진행을 위한 의사 전달 과정에서 내가 종종 누락된다. 해당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메인 실무자임에도 내겐 한 박자 늦게 당도하는 거다. 처음 한두 번은 실수이겠거니 넘겼지만 나도 눈치가 있지. 실수가 아니란 걸 간파했다. 이게 뭐지? 하는 분노가 단전에서부터 올라온다. 왜 내가 없지? 상대에게 뭘 잘못했길래 이러는 거지?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길래 이런 수모를 겪는지 통탄스럽다. 급기야, 나는 하찮고, 무시해도 괜찮고, 의견 따윈 중요치 않은 사람이라는 데까지 당도하고 만다.
홀로 자리에 앉아 헤드폰을 끼고 귀를 막았다. 이럴 땐 차분한 것보다 꽝꽝 때리는 음악이 훨씬 위로가 된다. 마침 재생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의 십 분 동안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곱씹는다. 내가 이만큼 타오른 데에는 홀로 넘겨짚은 데에 가장 많은 지분이 있다. 그렇담 사실과 감정을 분리해서 마음을 본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차분히 적어 내려 간다. 일련의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내가 기분 나빠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묻고 있더라. 누구든 넌 기분 나쁠 권리 없다고 하면, 그 즉시 상한 기분을 거둘 건가? 아니다. 그렇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질문을 하는 자신이 아이러니해서 웃었다. 누가 뭐래도 내가 기분이 나쁘다면 나쁜 거다. 땅땅땅. 그러고 나니 깨달은 사실. 상대는 날 어떤 의도를 가지고 배제한 것이 아니다. 그냥... 그에겐 내가 최종의 최종의 최종에서 '통보받는' 말단일 뿐, 애초부터 이 과정에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갈무리하니 타오르는 불길은 한층 차분해진다.
난 폭발하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었네. 이 불편한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조급해져 당사자에게 득달같이 달려가지 않고도 스스로 소화할 수 있는 어른이었네. 나의 버럭이는 시간이 필요한 친구다. 어리석은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이 정도로 화가 난 건 참 오랜만이라 간만에 만난 버럭이가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