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하루를 꼭 커피와 함께 시작했다. 엄마의 커피는 항상 Taster's Choice 세 스푼과 프리마 한 스푼. 한 겨울이고 한 여름이고 상관없이 항상 뜨거운 물을 부었다. 냉온기능이 없는 정수기 탓에 우리 집엔 아주 오래전부터 물을 끓이는 커피포트가 있었다. 그래서인가 모든 가정에 커피포트 하나씩은 꼭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닌 집이 더 많았다는 걸 안 건 한참 뒤의 일이다. 그 커피는 하늘색 혹은 진한 초록색 머그에 번갈아가며 담겼다.
아침에 눈을 떠 엄마를 찾으면 꼭 부엌 바닥에 앉아 빤빤하게 펼쳐놓은 신문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엄마가 있었다. 그 옆에 자리 잡으며 말갛고 뽀얀 갈색의 커피를 종종 탐낼 때마다 엄마는 한 모금씩 내어주곤 했다. 많이 먹으면 이따 밤에 잠이 안 오니까 조금만 마시라면서. 설탕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엄마의 커피는 쓰고, 텁텁했다. 입맛에 맞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꼭 엉덩이를 들이밀고 커피를 얻어 마신 건 얼른 어른이 되고 싶은 어린이의 소망이었으리라.
학원 수업과 자습을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이 자정이던 중학생이 되며 본격적으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익숙해서 그랬는지 엄마가 우려했던 각성효과 같은 건 그닥 없었지만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셨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방문한 스타벅스 매장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가 있는 따뜻한 카페모카를, 친구는 에스프레소 프라푸치노를 마시며 벌써 어른이 된 것 같아 서로가 대견하고 머쓱해서 몽글거리던 기분이 매우 강렬했다. 이 비싼 커피를 사 먹었다고 하면 엄마에게 한 소리 듣겠지, 하는 우려가 섞인 뿌듯함이었다.
여느 현대인이 그렇듯 커피는 기호식품이라기보단 필수 요소다. 엄마처럼 나도 눈을 뜨면 무조건 커피를 마셔야 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특히나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오전 내내 두통으로 괴로웠다. 모카포트, 네스프레소 머신, 프렌치프레스, 드립 커피 머신, 핸드드립, 드립 백 등 방법도 다양했는데 종국에는 카누로 정착했다. 익숙이란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 결국 엄마가 마시던 인스턴트커피의 친숙함을 택한 것이다. 아무리 커피를 마셔도 잠드는 데엔 전혀 어려움이 없었기에 커피는 일상 속 초깃값과 같았다.
일상에서 벗어난 어느 날, 종일 커피를 챙기지 못한 하루의 끝에 쓰러지듯 잠들고 나서야 카페인으로부터 해방된 몸이 얼마나 가벼운지 그 윤택함을 알았다. 그러자 단숨에 졸업해 버렸다. 여러 번의 졸업 시도에도 번번이 실패하다 지금은 되는 이유를 들여다본다. 커피 생활을 마치며 그동안을 돌이켰다. 비범에 대한 갈망, 평범한 자신을 향한 채찍, 1인분의 몫을 오롯이 짊어진 독립한 인간으로서의 증명,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커피'라는 두 글자로 치환하여 삼키고 있었다. 단단히 응축된 불안과 외로움을 달이면, 여지없이 까만 물이 나왔다. 제게서 기인한 시커먼 액체를 매일 들이붓지 않으면 금세 두려워지고 말았던 것이다.
구린 나를 인정하고 환대하자 비로소 커피가 떠나갈 용기를 얻었다. 어쩌면 종종 그리워지는 때가 있을 테지. 그런 특별한 날에는 두 팔 벌려 열렬히 환영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