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어떤 사실이나 말을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그렇다고 여김. 믿는다는 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담대한 선택이겠다. 세상은 상수가 아닌 변수라는 걸 이해한 어른일수록, 기대와 희망이 스러지는 순간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새어드는 의심은 마땅할 테니까. 그러므로 믿음은, 당연한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하는 일이다.
불안을 동력으로 삼아 성장한 부모님은 어린아이를 대하는 시선에도 의심이 서려있었다. 한 번 해 봐! 할 수 있어! 보다 네가? 괜찮겠어? 가 훨씬 익숙했다. 그렇게 가능과 불가능의 선이 분명했다. 엄마가 정한 바운더리 안에서의 확실한 성취 경험은 큰 장점이었지만 울타리 밖을 나가려면 그 너머에 발을 디뎌도 괜찮다는 잠재력을 근면, 성실, 제3자의 평가 따위를 통해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선배는 나를 검증하지도 않은 채 큰 프로젝트를 덜컥 맡겼다. 그를 처음 만난 지 단 한 시간 만의 일이다. 한참 뒤에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 물었더니 선배와 나를 연결해 준 동료가 연호 잘한다고 했으니 그렇겠지 뭐, 하는 생각이었단다. 혹시라도 제가 못 했으면요? 그의 태평한 처사에 의심이 스며 집요하게 질문한다. 그럼 그냥 X됐네 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근데 너 잘하고 있잖아. 이런 쓸데없는 질문은 왜 하는 거야. 한껏 귀찮은 표정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처음이었다. 선배 덕분에 나도 아무런 조건 없이 믿을 사람이 되었다.
마음의 아우성은 신뢰를 갈망한다. 그렇지만 타인에게 신뢰를 주기엔 능력이 부족하다 여긴다. 그러자 손쉽게 자질 함양이라는 목표에 가닿았다. 자신을 향한 시선의 기본값이 의심이어야 부족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일평생을 자기 증명 속에 살아온 아이는 풀어짐을 모른다. 당신이 나를 믿을만한 자격을 지니기 위해 애쓰기보다, 내가 나를 믿으면 되는데. 지름길을 알고도 왜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가진 게 쥐뿔도 없을 때
가능성만 보고 믿어주는 게 진짜 믿는 거지,
믿을 만한 조건을 갖춘 사람을 믿는 건
믿음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에요.
근거 없는 믿음은 판타지에 불과한 일이라는, 스스로의 고정관념에 균열을 일으켜 본다. 허황된 꿈이면 어떠랴. 아무리 못 해도 낙심밖에 더 하겠나. 믿음 속엔 실망할 용기가 내포되어 있단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나를 믿는다는 건 내게 실망해도 개의치 않다는 뜻이다.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나는 괜찮다. 밑바닥의 나도 결국 나인 것을.. 어렵지만 이해해 보기로 했다.